스타트업4-잡플래닛 공동기획: 취업 내비게이터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은퇴한 70세의 벤 휘태커(Ben Whitaker,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 분)가 시니어 인턴십을 통해 창업 성공 신화를 이룬 30세 CEO 줄스 오스틴(Jules Austin,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분)과 일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픽션이긴 하지만 시니어 인턴십, 제 2의 인생, 젊은 CEO 등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정년퇴직을 커리어의 종착역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으며, 수많은 벤처의 탄생으로 최고경영자의 연령대 역시 상당히 낮아진 편이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과거에는 은퇴/퇴직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커리어 종료 이후의 삶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가 제공됐다면, 최근에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라는 지원 활동이 대세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은퇴 컨설팅과 달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전직, 즉 생애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는 시기는 은퇴 즈음보다 더 빠른 편이다. 기업들의 희망퇴직 등이 40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자발적 퇴사자의 연령대가 낮아진 영향도 있으나, 은퇴까지 기다리며 나이를 먹는 것보다는 좀 더 활동적일 때 새로운 도전과 학습을 시작하려는 자발적 시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을 고민하는 4060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잡플래닛의 이용자 추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40세 이상 이용자 수는 2016년 168만 명이었지만, 2017년 10월 말 기준 173만 명으로 이미 전년도 숫자를 넘어섰다. 40세 이상 신규 회원 역시 2016년 81만 명에서 2017년 10월 말 기준 89만 명으로 증가했다. 서비스를 런칭(2014년)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잡플래닛은 이직에 관심이 없으면 이용하지 않는 사이트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40세 이상의 유저들이 가입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시니어들에게서 제 2의 커리어 준비가 필수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니어의 만족도는‘복지 및 급여’에 좌우

시니어들은 잡플래닛에 들어와 어떤 정보를 볼까? 이용률이 가장 많은 콘텐츠는 기업에 대한 평가가 담긴 리뷰 콘텐츠(45%)다. 이는 잡플래닛 전체 유저의 이용 패턴과도 같다. 다만 이직을 준비하는 유저들의 리뷰 이용 비율이 높은 것은 더 이상 ‘잘 아는 산업’ 내에서의 이직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기업 리뷰는 내가 모르는 기업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다. 이직자들, 특히 시니어들은 업계 네트워크가 풍부하기 때문에 익숙한 산업 안에서는 기업 리뷰가 아니더라도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지인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리뷰를 찾아본다는 것은 채용 시장이나 자발적 의지 등에 의해 다른 산업, 생소한 기업으로의 이동을 고민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기업 리뷰 다음으로는 연봉 데이터(29%)를 많이 이용한다. 이는 전체 유저의 이용 패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40세 이하 유저들은 리뷰 다음으로 면접 정보를 많이 이용한다. 취업준비생과 이직 준비자 모두 마찬가지다. 이는 연령대에 따라 면접 정보의 필요성이 다르기보다 직무와 회사 이동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40세 이상 시니어들의 직장 만족도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요소는 다름 아닌 ‘복지 및 급여’이기 때문이다. 즉 처우 조건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직장으로서 회사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전체 유저의 만족도 평가 결과를 분석하면 가장 높은 상관 지수를 보이는 요소가 ‘사내문화’인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다만, 시니어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에서 두 번째로 상관 지수가 높은 요소는 ‘업무와 삶의 균형’이었다. 소위 말하는 ‘워라벨’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시니어 유저들은 복지 및 급여, 업무와 삶의 균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요소인 사내문화, 경영진, 승진기회 및 가능성 모두 직장 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직을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 경험이 이러한 요소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제공하는 승진 기회 및 가능성은 시간이 지나면 제공되는 공평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직을 고민하면서 기대하는 요소는 아니다. 경영진이나 사내문화 같은 기업 환경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환경이 점차 좋아지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20여 년의 직장 경험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직을 고려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가는 것이 이해가 된다.

 

40세 이상을 찾는 채용공고 64%가 중소·벤처기업 

40세 이상 시니어를 찾는 기업은 어떤 곳일까? 하반기 채용 공고 중 시니어를 채용하거나 연령 제한이 없는 공고를 분석했다. 연령 제한의 경우, 채용 공고와 담당자의 의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별도의 확인을 거쳤다.

40세 이상의 시니어가 지원 가능한 채용 공고 중 64% 가량이 중소기업과 벤처였다. 의외로 업력이 긴 중소기업만큼이나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벤처에서의 니즈도 큰 편이다. 한 예로, 수학 교육 스타트업인 셈웨어의 김광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르신 인턴을 모집하고 있다. 나이 불문이라고 하지만 유관 분야 20년 이상을 우대하고 있다.

중견기업과 비영리 기관에서의 니즈도 존재한다. 특히 비영리 기관에서는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에 비해 민간 영역과 비교할 때 매력적인 처우 조건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지와 사명감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생계가 중요한 사람보다는 커리어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면서도 높은 역량을 기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니어 채용에 눈을 돌리는 추세다.

공기업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면서 지원자 연령대가 올라갔고 실제로 은퇴 후 신입사원으로 공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업무능력과 무관한 성별, 나이, 학벌 등을 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자격을 갖췄다면 편견 없이 채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공기업들은 이후 감사 과정에서 합격자 연령대가 지나치게 어리거나 특정 나이에 몰려 있으면 면접 과정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시니어 채용의 문을 활짝 열어 둔 경향이 있다.

직무로 보면 영업직(43%) 채용이 압도적이다. 경영지원(32%), 전문직(20%)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다만, 어떤 직급에서 시니어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직급을 폐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등 많은 IT 기업들만 하더라도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직급 호칭제가 아닌 ‘영어 별명’ 호칭제나 ‘님’ 호칭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평균 연령대가 낮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나,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의 근로자 연령대를 보면 40세 이상 근로자도 25%를 훌쩍 넘는다.

또 이러한 경향은 대기업에게서도 빈번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직원에 대한 호칭을 프로, 담당 등으로 통일시키는 작업을 진행했고 SKT 역시 오래전부터 매니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호칭뿐 아니라 처우 및 승진을 결정하는 직급 체계 역시 단순화되는 추세다. LG전자는 부장, 차장 같은 호칭을 없애고 선임, 책임 등으로 부르는 인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존 5단계였던 직급 체계를 3단계로 단순화했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능력중심 성과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직급을 폐지하는 경향이 있어, 시니어를 채용함에 있어서도 능력에 따라 처우를 맞추는 방식으로 기존의 사회 경험을 인정하고 있다.

 

시니어, 벤처기업의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기업들이 시니어 채용을 희망하는 이유는, 주니어는 갖고 있지 못한 시니어가 쌓아온 직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높이 사기 때문이다. 업계 경험이나 관련 경력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시니어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을 20년 이상 해온 시니어 입장에서는 가장 많이 해온 일 중 하나가 조직 관리일텐데, 의외로 시니어를 채용하려는 기업 중 이러한 역량을 기대하는 곳은 없다.

이는 시니어 채용 시 기업의 우려와 맞닿아 있다. 가장 큰 우려 사항은 ‘자기 주장’과 ‘조직 적응’이다. 어르신 인턴을 채용하고 있는 김광진 셈웨어 대표도 채용 공고 말미에 “나이가 계급이신 분들(반말 금지), 내가 해봤는데…(부정적인 사고), 아재, 꼰대, 훈계조, 술, 담배 등을 즐기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사절”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젊은 기업들은 사내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금껏 쌓아온 문화적 요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한 업무 능력에는 기대가 크지만, 우리 회사를 경험한 적이 없고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는 시니어에게 리더십을 기대하지는 않는 셈이다.

다시 영화 ‘인턴’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게 된 70세 은퇴자는 분명 우리 사회에 있을 법한 일이지만, 주인공인 벤은 환상적이라는 것이 벤처 창업자들의 평이다. 40살이나 어린, 게다가 여자인 CEO를 무시하지 않고 늘 지켜봐주며 자신을 낮추면서도 핵심적인 조언을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를 계기로 많은 벤처들이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기 위해 공고를 올렸었다. 결과적으로 채용된 곳은 거의 없었다. 다양한 사건이 회자되고 있지만 이는 편견을 만들 수 있으니 설명하지 않겠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인턴’처럼 여전히 많은 줄스들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을 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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