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 로봇 위한 규제 개선 시급
로봇을 학습시키는 과정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인간이 감정, 취향, 습관, 성격 등 정보를 입력하고 알아가는 것처럼, 최근의 로봇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하고 학습해 나가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새 공장 자동화의 새로운 물결로 다가오는 협동 로봇의 등장은 인간과 기계의 진정한 협업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1월 초, 한국GM이 공장에 설치한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 Cobot)을 해외공장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GM의 부평공장에서 시범 가동까지 완료했지만, 내부 규정 상 로봇 주변에 안전 펜스를 설치해야 해서 인간과 로봇간의 협업이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국내 환경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협동로봇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전통적인 로봇 강국인 일본, 미국, 독일, 심지어 중국까지도 협동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공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협동로봇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근접해 작업하는 만큼 안전도는 높이고 속도와 크기는 줄여서 설계된다. 사용 범위 역시 폭 넓어 소규모 공장부터 대형 공장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는 공장자동화(FA: Factory Automation) 추세에 힘입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요구가 증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협동로봇을 안전 펜스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법규를 개정했으며, 일본 역시 2015년에 ISO 내용을 반영해 법규를 개정, 공장에서 협동로봇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장징빙(Dr. Jing Bing Jang) IDC 로봇 부문 리서치 디렉터는 “로봇은 제조 산업에서 미래의 공장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핵심 기술 중 하나로, 로봇은 전통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사용되어 왔지만, 전자, 소매, 헬스케어, 물류, 농업, 서비스, 교육, 정부 등 분야에서도 도입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어 “로봇 도입은 인건비 상승, 숙련된 노동자 부족, 로봇 시스템의 가격 하락과 국가 전략 사업의 결합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품질이 강조됨에 따라 광범위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루프벤처스(Loup Ventures)는 2022년까지 협동로봇 시장 규모가 연평균 68% 성장해 2022년에는 6조 5,66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보고서를 통해 협동로봇 시장이 2017년에서 2023년까지 연평균 56.94%의 성장률을 보여 2023년에는 42억 8,000만 달러(약 4조 5,364억 원)의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최근 협동로봇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의 진화를 지원하기 위해 산업별로 자동화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로봇 중에서는 가용하중이 10kg 이상인 협동로봇이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동차 부품, 산업용 장비, 금속 및 기계가공 등 무게가 많이 나가는 부품을 제조하거나 이동해야 하는 기업에서의 수요 증가가 예측되고 있어서다. 이 분야의 협동로봇은 일본의 화낙(FANUC), 중국에서 인수한 독일의 쿠카(KUKA), 스위스의 마비(MABI)와 같은 몇몇의 전문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협동로봇이 지휘까지?
협동로봇은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리싱크로보틱스가 개발한 협동로봇은 GE를 비롯한 다양한 생산현장에 투입돼 부품을 조립하고 물건을 포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리싱크로보틱스는 초기 모델인 백스터(Basxter)의 단점을 보완해 민첩성과 유연성을 갖춰 정밀 작업에 특화된 한팔 로봇인 소여(Sawyer)를 개발했다. 소여는 백스터보다 차지하는 면적이 적고, 회로기판 검사, 기계 관리 등과 같은 정밀작업 수행에 용이한 모터와 기어 부품이 장착되어 있다. 특히 0.1mm의 오차 허용범위를 요구하는 정밀 작업에 적합하고 팔은 최대 1,260m까지 뻗을 수 있으며, 4kg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 또한 하모닉 드라이브 서보를 채택하고 있으며 티타늄 소재의 스프링을 갖춰 탄성 액추에이터 작동이 가능하다.
2017년 5월, 세계적인 물류회사인 DHL은 공급망에 UKI 로보틱스 배치 프로그램의 첫 단계로 리싱크로보틱스의 소여 로봇 4대를 구입했다고 발표했다. DHL에서 구입한 4대의 협동로봇은 애완동물 사료, 제과, 캔음료 포장 등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밖에 DHL은 독일 우나(Unna)에서 창고를 이동하는 피커(Picker)를 따라다니면서 푸싱 카트의 하중을 덜어주는 트롤리 로봇인 에피봇(EffiBot)을 활용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한편, 홈시어터 시스템을 위한 고품질 라우드 스피커를 제조하는 패러다임(Paradigm)은 2015년 유니버설 로봇의 UR10 협동로봇을 생산라인에 적용한 이후 생산량이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7년 9월 13일, 이탈리아 피사 콘서트장에서는 색다른 오페라가 공연됐다. 전력 및 자동화 기술 기업인 ABB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산업용 협동 양팔로봇인 ABB ‘유미(Yumi)’가 루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이탈리아의 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것이다. 이는 산업용 로봇인 유미가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할 정도로 동작이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안드레아 콜롬비니(Andrea Colombini) 상임 지휘자의 움직임은 리드 스루 프로그래밍(Lead-through Programming)을 통해 유미에게 인지돼 두 팔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유도됐다. 이어 ABB에서 개발한 로봇 스튜디오(Robot Studio)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행동의 미세함을 가미했다. 이 모든 작업이 단 이틀 만에 완료됐다.

일본과 중국, 협동로봇 시장 키운다
일본에서 협동로봇은 단순히 생산현장의 안전 확보나 사람과의 협업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세가와 요시유키 코트라 일본 도쿄무역관은 보고서를 통해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협동로봇 도입에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며,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다.
덮밥 체인점인 ‘요시노야’는 식기세척 로봇을 도입해 인건비 절감을 도모했는데, 요시노야 측은 한 점포에서만 하루에 약 1,300개의 식기를 세척하는 데 걸리는 2.3시간을 로봇 도입으로 1.8시간까지 20% 정도 단축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력 감축은 하루당 600시간으로, 연간 약 2억 엔(약 19억 1,798만 원)의 인건비 절감이 가능해 기업의 효율성 제고에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시노야가 도입한 식기세척 로봇은 카메라로 젖은 상태에서 나온 식기를 인식해 식기 저장소로 반송하고 종류별로 쌓아 놓은 식기를 직원에게 통지하게 된다. 작동 중 사람이 접근하면 센서로 감지해 작동이 정지되고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면 다시 작동한다.
요시노야가 도입한 로봇은 라이프로보틱스(Liferobotics)의 다관절형 로봇인 코로(CORO)로, 2016년 경제산업성의 로봇도입 실증사업에 의해 적용됐다. 코로는 하나의 팔과 구동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팔은 최대 86.5cm까지 늘어날 수 있으며, 팔 끝은 물건을 집는 손가락이나 진공흡착기 등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코로는 출시 1년이 되지 않아 식품제조회사인 로얄, 도요타, 오므론 등 다양한 기업에 도입됐다.
또한 미쓰비시전기(Mitsubishi Electric)는 2018년 협동로봇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에서 개발한 협동로봇은 인간이 다양한 위치로 안내하는 동작을 통해 움직임을 학습하게 된다. 다른 협동로봇과 마찬가지로 작동 중 팔이 작업자와 접촉하면 자동으로 멈춰 안정성을 확보했다.
중국의 경우는 산업혁신계획에 의해 협동로봇 시장 규모가 2020년까지 13억 위안(약 2,146억 400만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2017 코봇 인더스트리 블루페이퍼, 차이나데일리). 차이나데일리는 2016년에만 협동로봇은 중국시장에서 약 2,300대가 판매(전년 대비 109% 증가)됐으며 시장 규모는 3억 6,000만 위안(약 594억 6,480만 원)으로 전년 대비 83.8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협동로봇 개발
국내 협동로봇 시장은 일단 대기업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분위기다. 한화테크윈은 2017년 3월, 협동로봇인 HCR-5를 출시하면서 로봇사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어 5월에는 국내 협동로봇 안전규정인 ISO 13849-1 PL 등급 중 4단계에 해당하는 D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2015년에 설립된 두산로보틱스는 2017년 12월, 수원산업단지에 연간 최대 생산량 2만여 대의 협동로봇 공장을 준공하고 앞서 개발한 4종의 협동로봇을 양산한다고 밝혔다.
두산로보틱스에서 개발한 협동로봇은 오차 범위 0.1mm의 반복 정밀도와 각 축에 탑재된 고성능 토크센서를 통해 사람의 손재주가 필요한 정밀한 작업도 가능하다. 또한 모델에 따라 최대 15kg까지 들어 올릴 수 있다.
2013년에 설립된 뉴로메카는 필드버스에 기반한 실시간 로봇 제어기, 제어 소프트웨어, IoT 센서 및 게이트웨이 등을 개발해 왔다. 뉴로메카는 축적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협동로봇인 인디(Indy)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2017년 3월 산업용 플랫폼인 인디3·5·10 모델에 이어 9월에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2.0을 적용한 인디7을 출시했다. 인디 프레임워크 2.0은 제어 알고리즘의 향상으로 안정성이 좋아진 3차원 공간 임피던스 제어, 기구학적 특이점 근처의 강력한 작업공간 제어, 학습 알고리즘 기반 충돌 감지 및 중력 봇아 파라미터 측정 등이 가능해졌다.
2012년부터 로봇사업을 추진한 푸른기술은 고려대 지능로봇연구소로부터 로봇팔 기술을 이전 받은 후 산업용 7축 로봇용 다중관절 및 시각 지능을 이용한 응용 시스템을 개발하고 취약 공정 로봇 보급사업에 적용했다. 푸른기술에서 개발한 PRM7-05I는 동작 유연성 및 효율성을 위해 인간의 팔과 유사한 7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절마다 토크 센서를 내장해 손쉽게 토크를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협동로봇 분야는 산업용 로봇에서 그야말로 만개(滿開)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활용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특히 펜스 설치나 로봇 설치 공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지금껏 로봇을 설치하기 어려웠던 장소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협동로봇이 시스템을 얼마나 자동화해나갈 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인력의 대체재가 아닌, 사람과 협업하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로봇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