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유리병은 왜 평면위에 올려놓아야만 하나? 벽에 붙어 있으면 안 되나? 책은 꼭 책장에만 있지 않다. 화장실에도 있고 가방 안에도 있고 그 어디에 있어도 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한 범주 내에서 안주하려는 의식이 있다. 커피숍에서 구두를 팔면 어디가 덧나나? 모든 고정관념을 깨야 새로운 것에 도전 할 수 있다. 특히 제품을 디자인하여 생산하는 모든 기업체의 디자이너들은 꼭 무중력주의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탁자는 바닥에만 있지 않고 벽에 붙어서 존재 할 수도 있다.

 

2017 New infiniti_s sries [fishbowl _ vase series 1] 162.2x112.1cm oil on canvas
2017 New infiniti_s sries [fishbowl _ vase series 1] 162.2x112.1cm oil on canvas

 

고정관념은 무너뜨리고 나면 이제는 정신적 자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은 너무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게 마련. 가족의 틀에서 친구, 연인의 틀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정신적 자유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무중력은 인간의 감정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 날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무중력 정신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덕과 윤리 속에서 일어나는 기쁘고 슬픈 감정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어서 괴로운 일을 당해도 무덤덤하거나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다. 또한 무중력의 가벼움은 또 다른 상상력으로 맘껏 헤엄칠 수 있다. 

무중력의 흐름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말자. 그 옛날부터 지금도 무중력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 지구도 지금 무중력 상태의 우주 속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중력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White play series [The beginning of freedom 2]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7
White play series [The beginning of freedom 2]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7

 

나의 신작 ‘white & black’에서 무중력의 상태 속에 자유롭지만 질서로 이루어져 떠다니는 사물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얇고 가냘프게 선으로만 남고 싶었던 뉴욕의 그 겨울처럼 앙상하게 남은 선들은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그 자리에는 넓게만 번져가는 색, 면이 조금씩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그건 분명 역으로 되돌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파리의 강렬한 색, 면 뒤에 분명 선과 면이 뉴욕의 그 작업실에서 같이 공존해야 한다, 하지만 선과 면이 같이 있어야 할 화면위에는 선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었고 그때부터 나의 회화론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작업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결국에는 단 하나의 간결한 선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2004년에는 본격적 화이트 play시리즈가 탄생됐지만 여전히 의문의 벽 앞에서 서성거려야만 했다.

2006년에 본격적으로 black 시리즈가 탄생 되었지만 간결한 선 작업에만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2008년 가을에는 그동안 그렸던 모든 그림들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상 중에 하나를 타인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끝까지 파 해치려고 하는 집념이 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닌 것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Primitif 즉 원시주의를 남 몰래 나의 그림에 투영 시키며 인정받기를 꿈꿔왔다.

그러면서도 현대문명의 달콤함을 몰래 탐닉하며 그림에서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순된 삶은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한계와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구의 원시림 아마존과 아프리카는 현대문명의 잠식으로 점점 더 황폐해 가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으로 뿜어내는 열기는 지구를 점점 더 붉게 물들게 하고 나 역시 그 문명 속에 하나의 작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존재하고 있기에 그 모순됨을 간과할 수 없다.

섞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의 색감, 그리고 이 지구상의 모든 색의 출발과 끝인 black 과 white 위에 분리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엄격한 단색과 선을 올려놓음으로써 이 시대의 인간들이 정신적으로 얻고자하는 자유로움을 표현해 본능으로 느끼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화면에서의 자유로움을 맘껏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심볼은 네 귀퉁이에 미니멀적인 조형이 프리미티브한 소재들이 맘껏 놀 수 있게 지켜주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스러움과 엄격함은 어쩌면 극과 극일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 됨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짊어지고 먼 길을 가고 있는 작가 자신이 거울에 비치는 본인의 행위를 항상 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문제점을 볼 수 없다면 그것으로서 작가의 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시대의 현대미술은 그 시작과 끝이 모호한 상태이다. 어떤 행위를 누가 어떻게 표현하고 문제를 제기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인간이 있기에 모든 예술이 필요하고 또 만들어져 우리를 기대나 관심의 초점으로 끌어들인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어떻게 한 작가의 작품을 가늠하고 판단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것만이 그의 예술성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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