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음성 앱 시대를 개척하다

2014년 11월 아마존은 인공지능(AI) 기반의 개인비서인 ‘알렉사(Alexa)’와 이를 탑재한 원통형의 가정용 스피커 ‘에코(Echo)’를 발표했다. 아마존의 자체 스마트폰이었던 ‘파이어폰(Fire Phone)’과 마찬가지로 아마존의 연구개발 조직인 ‘랩(Lab) 126’이 개발한 알렉사와 에코는 파이어폰의 처참한 실패가 예상되는 시점에 등장한 아마존의 새로운 자체 제작 단말이라는 점 이외도 자연어처리와 음성인식, 그리고 음성합성과 같은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키보드나 터치스크린이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형태로서 기기를 조작하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음성인식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기능은 아마존이 처음 선보인 것은 아니다. 이미 구글의 ‘구글나우(Google Now)’와 애플의 시리(Siri)처럼 이미 음성인식 기능은 구현된 상태였다. 구글이나 애플과의 차별화를 위해 아마존은 알렉사와 에코의 음성 UI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스마트폰이 없어도 이용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마존은 2015년 6월 외부 개발자들이 알렉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알렉사 스킬 킷(ASK: Alexa Skill Kit)’을 발표했다. 아마존은 이 같은 음성 앱을 ‘알렉사 스킬’이라 부르는데, 이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알렉사 스킬을 검색해 설치할 수 있도록 스킬 스토어를 개설함으로써 이용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외부 개발자들의 참여도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즉, 아마존이 알렉사 스킬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음성 앱(Voice App)의 시대가 개화된 것이다. 

이후 알렉사 스킬은 불과 2년 반 만인 지난 2017년 12월 2만 5,000개를 돌파할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으며, 이는 AI 개인비서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ce)’와 스마트 스피커 ‘구글 홈(Google Home)’를 앞세워 아마존을 추격하고 있는 구글에 대한 아마존의 최대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글 역시 음성 앱인 ‘액션(Actions)’ 개발을 위한 툴을 공개하고 있으며, 전 세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지원정책을 발표하면서 음성 앱 시장에서의 새로운 플랫폼 경쟁을 예고 중이다. 비록 2017년 1월 기준 구글 어시스턴트 앱의 수가 1,719개로서 아마존의 1/10에도 못 미치지만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OS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수많은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존을 따라 잡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같은 아마존과 구글의 경쟁은 AI 개인비서와 스마트 스피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양 사가 경쟁적으로 에코와 구글 홈의 가격인하 프로모션을 진행함에 따라 관련 제품 판매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IRP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아마존 에코는 3,100만 대가 판매되어 전체 스마트 스피커 시장의 69%를 차지했으며, 구글 홈은 31%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커머스와 게임으로 확대되는 음성 앱

에코나 구글 홈의 이용방식은 간단하다. ‘알렉사’나 ‘오케이 구글’과 같은 호출어(Wakeup Word)을 말하면 각 단말은 이를 인식하고 추가의 음성 질문을 들을 준비를 한다. 이후 이용자가 사람과 대화하듯 말을 하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가 이용자의 요청사항을 분석해 적절한 대답을 하거나 다른 연동 기기들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 같은 AI 비서 탑재 단말은 스피커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음성으로 이용자와 상호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음악이나 뉴스 청취, 그리고 날씨나 교통정보와 같은 간단한 정보 검색에 최적화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스마트 스피커 보유자들이 이용하는 음성 앱이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정보검색과 음악에서부터 스마트 홈 단말 제어나 커머스, 그리고 게임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스마트 홈의 경우 주로 가전기기나 스마트 온도계 등의 단말 제조사들이 AI 비서와 연관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음성 앱을 통해 제어하도록 한 것으로서, 지난 1월 개최된 CES 2018 행사에서도 다양한 업체들 이 관련 제품들을 공개했다. 

커머스는 아마존이 알렉사와 에코 사업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 다. 어디서라도 알렉사를 이용할 수 있는 환 경이라면 음성으로 손쉽게 상품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시장조사업체 에디슨리 서치가 2018년 1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스마트 스피커 이용자 중 22%는 이를 통해 기존에 구입했던 상품을 재주문한 경험이 있 으며, 전에 구입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상품 을 구입한 이용자 역시 22%에 달했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앱 중 가장 큰 시장규 모를 형성하고 있는 게임은 스마트 스피커 의 경우 아직은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되지 는 않았다. 그러나 스무고개나 퀴즈쇼와 같 은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게임이 점차 증가 하고 있으며, 이를 즐기는 이용자들도 늘어 나는 추세다. 그리고 오디오 게임 자체도 점 차 발전하고 있는데, 헌터워크닷넷이라는 업체는 단순한 질문과 답변 형태의 게임에 서 벗어나 이용자가 음성으로 설명을 들으 면서 요정의 세계를 여행하고 이용자의 답 변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며 수수께끼를 풀 고 아이템을 얻어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마 법문(The Magic Door)’라는 오디오 게임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용자와 소통하는 양방향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오디오 드라마도 등장하고 있다. 영 국의 공영방송인 BBC는 에코 및 구글 홈 에서 이용 가능한 ‘검사실(The Inspection Chamber)’이라는 오디오 드라마를 선보였는 데, 이는 일반적인 라디오 드라마처럼 이야기 가 진행되다가 특정 장면에서 이용자에게 선 택을 요구한다. 여기서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의 진행이 달라지는 형태다. 

한편, 아마존은 오디오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에코용 액세서리인 ‘에코 버튼(Echo Button)’도 발표했다. 이는 버튼 모양으로 생 긴 기기로서, 에코에 연결해 이용하는데 오 디오 퀴즈 앱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아마존은 지난 1월 초 향후 더 많은 액세서 리를 발표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이미 알렉사 용 게임 개발자들과 협력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앞으로 다양한 장르의 더 많은 오 디오 게임이 등장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보 여준다. 

알렉사 스킬 수 증가 추이
알렉사 스킬 수 증가 추이

아마존, 개발자를 위한 수익모델도 점차 확대 

단순히 음성 앱의 수가 늘어난다고 앱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음성 앱 분 석 전문업체인 Voicebot.ai가 2017년 9월 미 국에서 이용 가능한 1만 2,000여 개의 알렉 사 스킬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62%에 해당 하는 음성 앱은 단 하나의 이용자 평가도 존 재하지 않았다. 즉, 실질적인 이용률이 매우 적은 음성 앱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마존은 보다 고품질의 음성 앱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이용률 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등장한 대표적인 것이 구글의 플레 이스토어(Playstore)나 애플의 앱스토어(App Store)처럼 유료화 모델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앱스토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유료화 방안이 지원되는 것은 아니며, 월정액 기반의 가입형(Subscription) 모델만 지원되고 있다.

아마존이 유료 가입형 모델을 도입한 2017년 10월 이전에 알렉사 스킬을 개발하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음성앱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아마존은 이용자경험 훼손을 이유로 알렉사 스킬에서 음성광고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유료 앱의 판매도 불가능했기에 스마트폰이나 PC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이용자의 편의성 증대를 위해 알렉사 스킬을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음성 앱의 수익화 모델이 없어 본 사업의 강화를 위해 알렉사 스킬을 활용하려는 업체들이 주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개발자들이 직접적으로 음성 앱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점차 더 많은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아마존의 발표 이후 여러 퀴즈 앱들이 유료화를 시도한다고 발표했다. 앱의 품질이 점차 높아지고 유료 앱을 구입하려는 이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유료 앱 구매(Purchase)나 인앱구매(In-app Purchase) 등의 수익모델도 순차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편, 구글은 아직은 써드파티 음성 앱에 대한 수익모델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글과 아마존이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각 사가 제공하는 차별화된 기능을 서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글 역시 유료 음성 앱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아마존과 구글 모두 음성 앱에서의 광고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용자의 이용행태와 취향에 따른 맞춤형 상품 추천과 같은 제한적인 광고 사업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스마트 스피커 보유자의 주요 기능별 이용률
스마트 스피커 보유자의 주요 기능별 이용률

새로운 골드러시 시대의 도래

음성 앱 시장이 아직은 초기 단계로서 스마트폰 모바일 앱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시장규모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바일 앱 분석 업체인 앱애니(App Annie)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소비자들의 모바일 앱에 대한 지출은 약 860억 달러에 달했으며, 2018년에는 1,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과 구글이 음성 앱 개발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과 수익모델을 선보이면서 음성 앱 시장은 기존 모바일 앱 시장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점차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AI 비서를 도입한 단말의 더 많은 판매를 유발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아이폰이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7년 6월이었지만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7월 써드파티가 개발한 모바일 앱이 유통되는 앱스토어가 등장한 이후이다. 앱스토어로 인해 진정한 스마트 혁명이 시작됐다.

음성 앱 시장 역시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앱이 등장하고 이를 구매해 설치할 수 있는 앱스토어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성장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새로운 플랫폼 경쟁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향후 아마존과 구글, 그리고 애플에 이르기까지 음성인식 기반의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개발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생태계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앱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등장했던 ‘모바일 골드러시(Gold-Rush)’ 시대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마존의 에코닷과 에코 버튼 (자료: 아마존)
아마존의 에코닷과 에코 버튼 (자료: 아마존)

 

한편, 국내의 경우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의 통신사업자, 그리고 네이버와 카카오가 AI 개인비서와 스마트 홈단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음성 앱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업체들 모두 새로운 생태계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음성 앱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 개방을 약속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연내에 누구나 자사의 AI 플랫폼인 ‘누구(NUGU)’를 적용해 만든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AI 마켓플레이스 ‘누구몰(가칭)’을 개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SK텔레콤 역시 개발자들이 음성 앱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수익모델을 지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국내에서도 2018년이 음성 앱 경쟁의 원년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수많은 개인개발자와 스타트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음성 앱 시장에서 ‘카카오’와 같은 새로운 스타 기업이 등장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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