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화랑 역사와 함께한 갤러리 현대
유근택, 기관념적 인식에 대한 대항

상업화랑 역사와 함께한 갤러리 현대 

한국에서 본격적인 상업화랑의 시작은 1970년대다. 그 첫 화랑이 바로 현대화랑이다. 지금은 사간동에 갤러리 현 대란 이름으로 신관, 본관, 두가헌 이렇게 세 군데의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케이옥션도 거느리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화랑의 대표적인 존재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갤러리 현대는 1970년 4월 4일, 종로구 인사동에 ‘현대화 랑’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해 지난 30여 년간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변관식, 천경자, 이응로, 남관, 백남준, 유영국, 김기창, 김창열 등 그야말로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또한 현대화랑은 1973년 9월 전문 미술잡지인 ‘화랑’지를 창간해 20여 년간 발행하기도 했다. 기억 속의 ‘화랑’지는 세련되고 수준높은 잡지였다. 오광수 미술평론가가 편집장이었고 황인이 기자로 활동하기도 한 ‘화랑’이었기에, 폐간을 매우 아쉬워했다. 지금 책꽂이에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지난 과월호들이 상당수 남아있기도 하다.

갤러리 화랑은 1980년대에 들어 후앙 미로전(1981)을 시작으로 마르크 샤갈(1981), 헨리 무어(1983)의 작품을 국내에 선보여 본격적인 외국 작가의 전시를 국내에 소개하고, 소토(1988), 크리스토(1992), 플럭서스의 정신 (1993) 등의 전시를 비롯해 1997년 바스키아 전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외국 작가의 전시를 열었다. 지금도 외국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거의 반씩 나누어서 전시되고 있다.

또한 현대화랑은 국내 화랑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87 시카고 엑스포(Chicago International Art Exposition)’에 참가하고, 이후 바젤 아트 페어, 쾰른 아트페어, 파리의 FIAC, L.A 아트페어, 일본의 NICAF 등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다. 한국 화랑으로서는 선구적으로 해외 미술시장에 진출한 경우였다. 

1987년에는 인사동에서 사간동으로 옮겼다. 이름도 현 대화랑에서 ‘갤러리 현대’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가 배병길의 작품이다. 지하1층, 지상4층, 연건평 300평 규모의 갤러리 현대의 지하 전시장은 젊은 작가를 위한 실험적 공간으로 좀 더 개방적인 성격을 취하고 있다. 1, 2층 전시공간은 중견 이상의 원로화가의 기획 전시를 위해 설계되며, 3층은 상설전시관으로 공간의 성격을 구분했다. 맨 위층에는 벽면 전체가 유리창으로 된 카페 Pavilion을 두어 관람 후 경복궁과 인왕산, 북악산을 보며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래 전 이곳에서 갤러리 현대 큐레이터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복궁의 전경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1995년에는 건물을 신축하면서 화랑 앞 쇼윈도를 본 전시장과는 별도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윈도우 갤러리 (Window Gallery)’를 새로 만들어 주로 신진작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친 상태다. 사실 이런 전시는 미국 등 해외에서는 흔한 전시기법이다. 이 윈도우 갤러리는 건물 외부에 만들어진 관람객과 만나는 전시공간으로, 전시장이 폐장한 이후에도 밤늦게까지 쇼윈도의 불빛은 행인들과의 만남을 유도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Keum-Chon Station, 104x63, Black-ink and gofun on korean paper, 2005
Keum-Chon Station, 104x63, Black-ink and gofun on korean paper, 2005

유근택, 기관념적 인식에 대한 대항 

갤러리 현대에서 본 전시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에 본 유근택의 근작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갤러리 현대는 현재 원로작가와 비교적 젊은 작가(그래야 40~50대)들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유근택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출신으로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마도 지금 동양화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일 것이다. 그만큼 그림이 좋고 매력적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쉼없이 자신을 둘러 싼 외부세계를 상당히 민감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응시 하면서 눅눅하고 질펀하게, 빠르고 느리게 혹은 흐리고 아련하게 모필과 물감, 종이의 물성 등을 비벼내면서 회화만의 독특한 감각을 매력적으로 안겨주는 그림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뭇 감성적으로 건드리는 편이다. 그는 스승인 남천 송수남의 수묵과 모필이 지닌 전통성과 그것으로 인한 모종의 정신성의 고양이란 유산을 한 축으로 하면서도 과도한 관념성의 세계를 지향하거나 실험적인 차원에 저당 잡힌 수묵화/동양화의 한계를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그림의 차원으로 잡아 당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되고 있고 그 소재는 다름아닌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고 자신의 몸을 둘러싼 환경이고 응시의 대상이자 느닷없이 그 무언가를 건드려주는 장소들이다. 동시에 시간이 덧없이 흐르고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현기증 나는 세계이며 순간순간 변화를 거듭하는 그래서 좀처럼 고정시킬 수 없는, 눈과 마음을 문지르 고 사라져버리는 자취들이다.

작가는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추적한다. 결국 유근택의 그림은 자신의 몸이 반응한 세 게, 공간과의 접촉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 물질화하느냐 하는 가장 본질적이라고 할까, 아니면 가장 근원적인 회화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로 보인다. 몸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동양화는 어떠면 매우 구체적이고 유물론적이고 현상학적인 체험에 근거한다. 그것은 다분히 의도된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관념적인 동양화 인식에 대항하는 제스처로 보인다. 

최근 갤러리 현대에서 ‘어떤 산책’이란 제목으로 도서관 과방(모기장), 창문과 분수, 그리고 숲속을 산책하는 남자와 목욕하는 남자를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이전 작에 비해 형태는 모호해지고 추상화되어가며 종이와 물감은 구분없이 뒤섞여 격렬한 상처처럼 들러붙어 있으며 좀 더 잘 게 쪼개진 점, 터치들로 자욱한 화면을 안겨준다.

그로 인해 표면이 발생시키는 감각이 이전과 좀 생소하다. 종이와 호분, 먹 등의 재료들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화면의 떨림, 흐림, 지워짐 그리고 호분과 먹의 층위를 조절해서 축적시킨 화면이 발생시키는 묘한 심리적 동요나 정서의 긴장감 등이 그것이다. 특히 근작에는 호분, 템페라, 철솔 등을 이용해 두드러진 질감과 그로 인한 촉각적 화면을 구사하고자 했단다.

물론 여전히 먹이 지닌 정신성 또한 놓치지 않고(이는 여전히 먹에 부여한 정신성이란 남천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식적으로 방증한다) 아울러 시간과 공간을 그림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욕구도 지속되고 있다. 하여간 이 그림은 유근택의 숙련된 기량, 감성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는 매순간 자기 몸의 감각, 온갖 생각들이 뒤섞이는 체험, 그 느낌을 제대로 그림으로 끌어 내려고 하고 있고 종이/화면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편 기존의 그리기의 방식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지속해서 고민하고 있음을 근작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물성 자체에 보다 기울어져 있고 시간을 쌓아나가는 작업이자 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기묘한 층차나 사건들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모색 등이 그것이다. 갤러리 현대는 한편으로는 원로작가들의 회고전을 통해 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또 다른 한축으로는 새로운 작가들을 찾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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