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 인사동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하던 당시의 일이다. 마침 미술관이 있던 건물의 지하1층에는 몇 개의 화랑들이 모여 있었다. 1층에 자리한 가나화랑 사무실도 마침 같은 층에 있어서 그 직원들과는 눈인사를 나눌 정도로 자주 스쳤으며 나무화랑, 도올갤러리, 한선갤러리 등 여러 화랑들이 운집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사동의 대표적인 화랑 타운이었다. 일주일마다 전시가 바뀌는 관계로 나는 그곳에서 여러 전시를 보았고 수많은 작가들을 접했다. 그야말로 지리적 여건, 장소적 이점을 톡톡히 활용한 셈이다. 특히나 인접한 나무화랑을 자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 역시 빈번하게 감상하곤 했다.

나무아트갤러리 공간
나무아트갤러리 공간
나무아트갤러리 공간

명확하고 비판적인 성격의 전시들  

당시 나무화랑이 보여주는 전시의 성격은 비교적 명확했다. 이른바 형상성이 강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고 주제가 선명한 편이었으며 민중미술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나 삶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작업의 중심적 언어로 삼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아니 그들의 아지트였다는 인상이었다. 해서 나는 즐겨 그들의 작품을 보러 다녔다. 특히 나무화랑을 운영하던 이들은 모두 작가 출신의 남자들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인간적으로 좋은 이들이었다. 김진하, 이섭, 장익화 이렇게 세 명의 친구, 지인들이 모여 만든 화랑이자 대안공간이고 이들과 인간적으로 얽혀있던 작가들의 거점이었다. 나는 그 전시공간에서 좋은 전시, 작가들을 많이 접했다. 그 모든 것들이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손꼽아 보면 김산하, 최경태, 김진열, 김주호, 송창, 김재홍, 김보중, 이흥덕, 정복수, 손기환, 이명복, 이상국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지난 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주역들이자 형상 미술의 핵심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을 현재의 나무아트에서도 다시 보고 있다. 

돌이켜보면 대안적 전시기획을 위해 나무기획을 결성한 해가 1989년이다.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것이다. 이후 1993년 최초의 대안적 전시공간인 <나무화랑>을 설립했는데 지금의 인사동, 관훈갤러리 앞 성화빌딩의 지하 1층 자리다. 지금 이곳 지하 1층에는 지난 80년대 후반기와 90년대를 주도했던 화랑들은 죄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 전시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전시들, 작품들, 그곳에서 행해졌던 말들과 그것이 이른바 뒷풀이로 이어져 번성해나갔던 무수한 시간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머물러있다. 

상업 화랑을 내세우기보다는 성격 있는 전시공간, 자신들이 선호하는 작가들만을 선별해서 전시를 하다 보니 늘 경영난에 힘들어하다 결국 2000년에 폐관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후 김진하 개인이 다시 2009년에 <나무아트>로 재개관했다. 그의 의지와 소명의식이 없이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현재 나무아트는 인사동의 노화랑 옆 건물 4층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거쳐 그곳까지 가기가 만만치는 않지만 매 전시가 기획전으로 열리며 앞서 거론한 것처럼 나무화랑에서 했던 작가들의 연장선에서 성격 있는 작가들만의 작품을 엄선하고 있다. 인사동에서 이렇게 성격이 확고한 화랑은 오로지 나무아트뿐이다. 본격적인 상업화랑도 아니고 대관화랑도 아니며 전적으로 기획전에 의존하지만 사실상 작품판매를 통해 화랑을 운영해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는 않아서 고민이다. 

나무아트갤러리 전시공간과 김진하
나무아트갤러리 전시공간과 김진하

나무아트 역할의 의미

현재는 김진하 주도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전천후 미술인이다. 본래 목판화가였지만 이후 전시기획자, 미술비평, 화랑운영자, 미술운동가 등의 여러 일들을 그야말로 ‘멀티’로 해내고 있는 능력자이다. 매번 전시장을 갈 때마다 혼자 전시장을 지키면서 모든 일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사실 직원을 둘 형편이 안되는 것이다. 그는 전시기획, 작가섭외, 서문, 보도자료, 홍보, 도록디자인, 디스플레이 등을 완벽하게 도맡아 해낸다. 나무화랑의 뒤를 이은 나무아트는 미술이 사회화 하는 과정을 주목하며, 대중들과의 작품 소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획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의 소통을 통해서 대중들과 함께 정치적 자각의 프로세스를 꿈꾸며, 그 결과로 발생한 시민들과의 연대로 미술이 동시대 현실정치에 수평적인 파급력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철저하게 현실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작가적 태도로부터 발생하는 미술언어와 형식을 통해서 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무아트로 이름과 장소가 바뀐 지도 꽤 되었다. 애초에 나무화랑이 지향했던 성격, 그리고 그것을 계승하고 있는 나무아트의 지향점은 지난 198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의 특정한 상황 속에서 불거진 측면을 반영하는 흐름이었다. 현재 그 성격들은 일정 부분 퇴색했고 그만큼 시대가 바뀌고 미술계의 지형도도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이 당대 사회와 현실에 개입하고 작가들이 미술적 언어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오늘날 그러한 미술의 전통은 매우 약화되었고 급속히 사라지는 중이다. 나무아트의 김진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의미 있는 형상작업, 정치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탄탄한 작업들을 선별하고 그 의미를 드러내고, 이들에게 전시공간의 기회를 부단히 마련해주고 있다.

그러한 작가들을 지속해서 후원하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아트라는 공간, 역할이 더욱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니 그러한 전시기획자, 화랑운영자가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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