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는 4차 산업혁명의 재정의로부터 출발해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이 국내에서 가장 핫(Hot)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른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 실체나 특성에 대해 여전히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급속히 발전한 신기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경제-사회의 대변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해외 주요국가나 선도기업은 그와 같은 ‘대변혁’(이하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도 지칭함)에 대응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Fast Follower 전략으로 산업화 시대를 돌파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된 우리나라! 스위스 UBS가 4차 산업혁명 준비도 측면에서 25위로 평가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정부의 대응전략과 추진방법 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 생각한다. 그 원인으로 첫째, 애당초 4차 산업혁명을 잘못 정의했고 둘째,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잘못 설정하고 있으며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부족하고 넷째, 정부와 민간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미흡하다는 점을 꼽고자 한다. 흔히 얘기하듯,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 잘못된 ‘정의’에서 비롯돼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즉, 디지털 혁명)의 기반 위에서 다양한 기술융합의 결과로 물질계, 가상계, 생명계 사이의 경계가 낮아지는 (인류)사회 전반의 변혁”으로 정의하였다. 반면,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 산업 뿐만 아니라 국가시스템, 사회, 삶 전반의 혁신적 변화”(출처: 사람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 2017. 11.) 또는 “AI와 ICBM(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5G통신)을 결합한 지능정보기술이 만드는 지능정보사회의 도래”(출처: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 2016. 12.)로 정의하였다.

 

슈밥이 정의한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 팩토리를 추구하는 독일의 ‘Industry 4.0’, 미국의 학계/산업계가 제시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우리나라 정부가 그리고 있는 ‘지능정보사회’나 ‘초연결사회’ 등을 포괄하는, 그 너머에 있는 대변혁이다. 3차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ICT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또 더욱 더 중요한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즉, 종래의 ICT보다 훨씬 더 고도화 된 디지털 기술은 경제•사회 전반의 인프라를 혁신하는 범용기술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ICT는 그와 같은 범용기술일 뿐만 아니라 물질계 기술(예: 나노기술/NT), 생명계 기술(예: 바이오기술/BT) 등과의 융합을 통해 인간/인류 차원의 과제(예: 건강, 에너지/환경, 자원, 안전)를 해결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3차 산업혁명의 고도화 단계에 해당된다. 그러다보니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AI & ICBM’에 가두고 있고, R&D와 산업혁신 양쪽에서 IT, NT, BT, 뇌과학 등과의 기술융합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있다.

 

또한,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초연결/초지능 사회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다수 일반국민들은 4차 산업혁명을 그저 ‘우리 앞에 닥쳐 올 5~10년 후 (희망적 또는 절망적) 미래사회로의 대변혁’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를 한 것으로 봐야 하는 슈밥과 WEF의 정의와는 거리가 있는 우리나라 정부의 정의, 그리고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4차 산업혁명 간의 차이를 좁히거나 바로잡는 일 즉, 올바른 ‘문제 정의’가 여전히 절실한 상태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잘못 설정해

 

2016년에 출간된 ‘제4차 산업혁명’에서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기술로 ① 물질계 기술(예: 무인 운송수단, 3D 프린팅, 첨단 로봇공학, 신소재 등), ② 생명계 기술 (예: 유전자 분석/활성화/편집, 합성생물학, 유전자 마커, 바이오 프린팅 등), ③ 가상계 기술 (예: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온디맨드 경제 등) 등을 꼽았다. 2018년 1월에 출간된 ‘Shap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국내 번역: 제4차 산업혁명 The Next')에서 슈밥은 4가지 영역의 12가지 기술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꼽았다. (참고로, 아래는 12가지 기술의 의미를 국내 어느 일간지에서 잘못 해석한 것을 발견하고 필자가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이다.)

 

(1) 확장된 디지털 기술: 뉴 컴퓨팅 기술(예: 양자/광학 컴퓨팅, 신경망 처리),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기술, 사물인터넷(IoT)

(2) 물질계 재구성 기술: 인공지능(AI) & 로봇, 첨단소재 & 나노기술(NT), 적층 제조와 다차원 프린팅

(3) 인간변형 기술: 바이오기술, 뇌/신경기술,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4) 환경통합 기술: 에너지 포집/저장/전송 기술, 지구공학/기후제어, 우주기술.

 

위 기술들은 2010년대에 급격하게 부상한 AI (딥러닝)나 블록체인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미국과 EU가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 온 NBIC 융합기술(Converging Tech.)에 해당된다. NBIC는 NT, BT, IT, CS(Cognitive Science, 인지과학)를 가리키며 융합을 통해 인간/인류가 당면하고 있거나 당면하게 될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잘못 정의하고 그 핵심기술을 디지털 기술 위주인 AI와 ICBM으로 잡다 보니 슈밥이 꼽은 기술들은 4차 산업혁명과는 무관한 것처럼 다뤄지고 있다.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1994년 이후, 현재 3차: 2017~2026),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2001년 이후, 현재 4기: 2016~2025), 국가융합기술발전 기본계획(2008. 11.),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융합기술발전전략(2014. 2.), 뇌과학발전전략(2016. 5.), 미래성장동력 육성 사업 (2003년 이후, 10대/17대/19대 사업) 등은 범 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정책과 전략에 통합되거나 최소한 연계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4차 산업혁명 대응정책과 전략에는 정부 및 민간 부문의 R&D, 기술사업화, 제품/서비스 혁신, 산업융합, 사회혁신 또는 사회융합 등을 감안한 기술구조, 산업전략, 추진체제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전략적 접근 미흡해

 

정부든 기업이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기간 측면에서는 장기 또는 단기, 성격에 따라서는 공격 또는 수비 등으로 나누어야 한다. R&D 전략도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 및 상업화 등 단계별로 적합한 역할분담과 협력 방식이 설정되어야 한다. 각 전략의 유효성 여부는 과제별로 적합한 성과지표로 측정, 관리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학 중심의 기초연구는 단기가 아닌 장기로, 과제보다는 연구자에 대한 투자로 추진되는 반면, 기업 주도의 개발연구는 단기, 과제 내지 제품•서비스에 대한 투자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기술경쟁력이든 시장경쟁력이든 단기간 내에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없는 기술에 대해서는 장기-수비 전략이, 반대 경우라면 오히려 단기-공격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정한 AI와 ICBM은 대부분 선진국과 글로벌 선도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레드오션에 속한 기술이다. 미국은 적어도 지난 20~30년 동안, 길게는 50년 이상을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은 결과 이제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 중국은 후발주자지만, 정부-민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격적 투자, 거대한 내수시장 기반, 상대적으로 쉽게 축적가능한 데이터,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기술인력 등을 갖고 있는 점을 가볍게 볼 수 없다. AI와 ICBM이 미래 국가와 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끼칠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5~10년 이내에 경쟁자들을 넘어설 수 없는 기술이라면 보다 지혜로운 ‘수단 선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략측면에서 한 가지 더 짚을 점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책은 기술, 산업•경제, 사회 등을 균형있게 감안한 가운데 보다 장기적 관점과 큰 그림을 갖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밥은 2018년도 저서에서 “4차 산업혁명은 줌인(zoom-in)과 줌아웃(zoom-out) 접근이 모두 필요하며, 그 중에서 줌아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기술측면에서 줌인은 개별기술에 대한 R&D를, 줌아웃은 특정문제(예: 미세먼지, 고령화, 저출산, 고용감소, 성장침체)를 염두에 두고 필요한 기술을 찾아 연결하는 융합 R&D를 가리킨다. 슈밥은 AI, 로봇, 블록체인, 3D 프린팅, IoT,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 개별기술이 융합되면 각 기술에 내재된 위협은 줄이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더 키울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산업•사회 측면에서 줌아웃은 신기술이 산업경제와 인간생활에 끼치게 될 영향을 분석해서 적절한 촉진책이나 법•제도•사회 측면의 규제를 설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줌아웃 접근’이 턱없이 부족하다. 개별기술 전문가들은 물론, 특정 산업이나 특정 사회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전문가, 각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고 보면, 오히려 최종 소비자로서 4차 산업혁명 정책의 이득을 누리거나 손해를 감수하게 될 일반국민들이 4차 산업혁명 전략수립을 주도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협력적 거버넌스 미성숙

 

슈밥은 속도, 범위, 영향력 측면에서 과거 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지휘통제 방식의 수직적 거버넌스가 아니라 보다 기민한(agile) 수평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라고 하였다. 즉, “21세기 신기술을 20세기의 마인드와 19세기의 제도로는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술개발로부터 제품개발 및 판매,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을 함께 논의, 결정하는 식의 협력적(collaborative)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처럼 정부 주도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학계 및 연구계는 물론, 기업, 일반국민 등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몇 가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면 첫째, R&D와 사업화 측면에서 정부와 기업이 역할을 분담하고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 R&D 투자의 1/4을 정부가, 3/4을 민간이 담당하고 있고, 민간의 3/4 (즉, 국가 R&D의 절반 이상, 정부 R&D의 두 배 이상)을 국내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이나 해외 선도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선택과 집중’이 한 방향으로 합력(合力)되어야 한다. 둘째, 정부 R&D와 기업 R&D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 R&D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방어적, 장기적 R&D가 된다면, 기업 R&D는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한 공격적, 단기적 R&D가 되어야 한다. 정부 R&D가 단기적 성과를 추구함으로써 기업 R&D를 위축시키거나 훼방하는 결과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정부 R&D 결과물은 시차를 두고라도 혁신적 기업(가)에 의해 상업화 되는 식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로,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정부 R&D 중에서 개발연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꼽히고 있다. ‘개발연구’는 상업화를 목표로 한 것이기에 기업이 죽기 살기로 해 내야 하는 연구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기업을 제대로 돕지 못하고, 기업이 제대로 된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 개발과 산업적용에 대한 규제•촉진 전문기구를 육성해야 한다. 그 동안의 관행대로 유연성이 낮고 사일로(silo)처럼 운영되는 정부 부처가, 전문화가 어려운 공무원•관료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알맞은 규제•촉진을 주도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한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범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촉진 업무를 통합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외 전문가들과 교류•협력을 통해 정부를 대신해서 합리적 제도와 기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중립적 기구를 설립, 운영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2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국가 차원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데 그 원인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지능정보사회 내지 초연결-초지능 사회건설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로 보고 있고, 융합기술보다는 개별기술, 그것도 기술•산업경쟁력 측면에서 승산이 작은 AI와 ICBM에 치중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 내부는 물론 정부-민간(특히, 대기업) 간 협력 내지 역할분담이 원활하지 않다는 데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4차 산업혁명의 원조격인 슈밥과 WEF가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해서 우리나라 상황에 알맞은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해결에 필요한 융합기술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서 정부-민간이 함께, 집중 투자함으로써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것을 제안한다.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정부만의 과업은 아니다. 기업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기술개발은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가운데 기존 재직자의 직무전환과 함께 새로이 필요한 인재의 육성과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일반국민들도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