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쉘보드 전경 (출처: 쉘보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쉘보드 전경 (출처: 쉘보드)

최근 단열재 화재 사건이 일어나면서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화재 발생 시 불길보다 더 위험한 건 유독가스다. 유독가스를 3분 이상 마시면 심정지가 올 수 있어 초기 대응이 무척 중요하다. 쉘보드 이승희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 ‘쉘보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30대 젊은 여성 창업가 이 대표의 파란만장한 사연에 귀 기울여보자.

쉘보드 이승희 대표 (출처: 스타트업4)
쉘보드 이승희 대표 (출처: 스타트업4)

“아버지 회사에서 일한 4년, 도움 많이 됐어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쉘보드 이 대표. 이 대표가 전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열재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대학을 막 졸업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화셔터 회사에서 제조 건설업을 처음 접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이쪽 관련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

25살의 이 대표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그렇듯 인력난을 겪던 아버지 회사를 도우며, 경험을 쌓기 위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먼저 건설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부족한 인력 탓에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맡겨지는 대로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캐드, 설계, 마케팅 등 전부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이 대표는 아버지 회사에서 배운 4년이 지금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직접 경험한 바가 있기에 직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다시 도전한다 하면 솔직히 힘들 것 같아요”

이 대표는 29살 때 아버지 회사에서 나와 창업했다. 그는 만약 사회생활을 더 했다면 방해물에 대한 고민이 컸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20대의 젊은 패기를 가지고 도전한 창업. 2015년 7월 ‘불에 타지 않는 스티로폼’을 제조하는 회사 ‘쉘보드’가 탄생하기까지 힘든 여정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창업 당시 실패가 당연(?)했기 때문에 ‘실패를 극복하는 것이 재밌다’라고 생각했다.

바닥에서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문제로 여러 번 좌절을 맛봤다. 건설자재 업종에다가 나이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선뜻 자금을 건네는 곳이 없었다. 특히 공장 설립은 실행이 큼직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몇 십 억의 자금을 얻기란 기적과도 같았다.

1년 가까이 그렇게 거절만 당한 이 대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은 이유도 절실해서였다. 신용보증기금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서는 뭐라도 해주겠지’하고 여겼다. 이 대표도 ‘되면 기적이다’라고 할 정도로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쉘보드는 직원들이 따라와줘서 만들어진 것”

결국 이 대표의 절실함이 통했다. 은행에서도, 신용보증기금에서도 전례 없던 사례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찾은 한 은행에서 기술금융 지원을 받은 덕분에 이 대표는 포천에 공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자금 마련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미래 운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이 대표. 다른 사례를 보며 앞으로 회사에 적용할 점을 찾아나갔다.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자금이 없어 사람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그는 ‘실패해도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을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과거 아버지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아르바이트생 영입에 직접 나섰다. 이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3~4명의 인원이 꾸려졌다. 이들은 6개월~1년 간 실패 과정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이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비전문가에 나이 어린 대표가 비전 이야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전원이 의견에 따라준 것이 무척 고마웠다”라며 “쉘보드는 직원들이 따라와 줬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 구하기는 여전히 힘든 문제예요”

쉘보드만의 문화를 조성하는 데 집중한 이 대표. 아버지 회사에서 일반 제조업의 경직된 분위기를 겪었던 그는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직원들도 그의 의견에 동참하면서 권위적이지 않은 문화가 생겼다. 쉘보드가 가진 문화 때문에 방송사에 노출되기도 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건설 현장에 상주하다 보니 대기업들의 상하 조직을 적나라하게 봤다”라며, “우리 회사는 그런 문화가 없고 이제는 그러려니 여기는 걸 봤을 때 ‘갑은 을이 만드는 거다’는 걸 느꼈다”라고 언급했다.

예전에 ‘이 사람들 데리고 뭐하냐’, ‘1년 안에 회사가 망할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대표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힘들게 사내 문화를 만들어 오긴 했으나, 여전히 ‘사람 구하기’는 힘들었다. 전문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경기도의 작은 도시인 포천에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기숙사 제도가 있음에도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단지 채용을 위해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지 않았다. 뜻이 맞는다면 어떤 여건이든 함께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직원 단합, 외부적으로는 거래처와 협업이 성장 요인”

이 대표는 “직원들과 ‘같은’ 비전을 가지고 ‘함께’ 하는 관계가 가장 큰 성장 요인”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다음 성장 요인으로는 ‘거래처와의 협업’이라고.

이와 관련해 이 대표가 경쟁사 제품보다 나은 점을 물어보는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경쟁사와 비교하는 고객에게 쉘보드는 ‘단점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찾아드릴 필요가 없고, 우리 장점만 말하겠다’라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이로써 굳이 남을 깎아내리지 않고 ‘같이’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쉘보드는 지금까지 ‘기술이전-협업-계약’의 흐름으로 성장해왔다. 이는 스스로 요청하는 게 아니라 협업자들이 먼저 와서 교육이나 도움을 주게 됐다. 쉘보드는 한 번도 라이벌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고 전부 협업을 통해 성장이 이뤄진 상황이었다. 제품 필요 시 거기에 맞게 매칭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형태가 됐다. 이로 인해 쉘보드가 큰 회사들과 연결되는 등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열경화 성형 프로세스를 적용해 2차 화재를 방지하는 쉘보드 (출처: 쉘보드)
열경화 성형 프로세스를 적용해 2차 화재를 방지하는 쉘보드 (출처: 쉘보드)

“쉘보드는 불에 타지 않고 유독가스가 나지 않아요”

쉘보드 제품 자체가 시장에서 처음 나오는 제품이었다. 쉘보드는 쉽게 말하면 ‘불에 타지 않는 단열재’로, 바람을 막아주고 단열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단열재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가 많이 일어나는데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서 만든 제품이 쉘보드다.

쉘보드는 불에 타는 속도를 지연시켜 유독가스 방출이 거의 없고, 화재 시 대피 시간을 벌어준다. 쥐 실험에서 유독가스를 맡은 쥐가 약 9분 간 살아남아야 테스트에 통과하는데 쉘보드의 경우 12분 이상 살아있었다. 이러한 테스트를 통해 쉘보드의 성능을 입증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타지 않게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자 한 이 대표. 그는 타지 않으며, 유독가스 방출을 억제해주는 쉘보드로 처음 목표를 이루게 됐다.

 

“’정직하게 한다’ 직원들이 알아줬으면 했어요”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대표가 가짜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대표의 자질’을 보여줘야 했다. 자질은 계약과 연계되기 때문에 이 대표는 제품이 나오기 전 시제품으로 건설사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제품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부스 방문자들에게 메일로 연락을 하고 피드백을 통해 다시 미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계약이 조금 더 수월하게 진행됐고, 직접 제품을 써본 사람이 지인에게 소개를 해주면서 결국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전화가 오게 됐다.

무엇보다 쉘보드를 돋보이게 한 건 ‘정직함’이었다. 이 대표는 고객이 아닌 우리 회사 직원들이 ‘정직’의 가치를 알아주길 원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쉘보드가 갖춰야 할 건 ‘정직’이었고, ‘존중’이었다.

원가, 판매단가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 품질을 속이지 않고 애초에 잡았던 기준대로 나아가고 있는 쉘보드. 직원들에게 이를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 회사의 장점이 됐다. 이런 쉘보드를 보고 주위에서는 손해를 본다고 걱정했지만,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다. 이 대표가 가는 방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인 것이다.

 

“미국, 우즈베키스탄 현지화 공장 설립 추진 중이에요”

2015년 매출이 거의 없었던 쉘보드는 2016년 매출 약 2억, 지난해 55억 매출을 기록하는 등 2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런 성장을 ‘변하지 않는 직원과 똑 같은 방식으로 계속 해온 결실’이라고 생각했다.

해외는 국내와 달리 서로 경쟁하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물류비다. 그는 과거 미국에 한 번 수출했는데 물건값보다 물류비가 더 나온 적이 있다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즉, 비싼 물류비로 인해 현지화 공장 설립밖에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쉘보드는 현재 미국과 개발도상국 우즈베키스탄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쉘보드는 우즈베키스탄 건설부 장관과 합작기업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지원 혜택을 받게 됐다.

특히 일본은 쉘보드와 계약하기까지 1년이 걸린 만큼 ‘실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업체 선정까지만 8개월 정도가 걸렸다. 까다로운 일본 계약을 성사시킨 쉘보드는 꾸준히 수출을 진행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을 통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외로 연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잘 돼있는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쉘보드가 개발하고 싶은 부분이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부분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쉘보드가 개발하고 싶었던 부분이 나라 계약이나 업체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쉘보드로서는 직접적인 개발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 분야 사람을 찾아가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실제로 다른 제품 개발에 있어서 한 교수님이 답을 못 찾는 제 모습에 쉘보드 이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준 일화를 소개했다. 제품 개발, 특허 등 쉘보드 이름이 나오니 많은 인력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렇듯 쉘보드 품질 향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국내외로 연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는 환경이 한몫 했다. 이 대표가 자기 이익만 챙겼다면 이런 네트워크 형성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협업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간 이 대표. 그는 올해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매출을 일으킨다는 계획이다. 또, 국내에서 외단열재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아울러, 그는 우즈베키스탄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난연액을 혼합하는 과정 (출처: 쉘보드)
난연액을 혼합하는 과정 (출처: 쉘보드)

“추구하는 가치에서 벗어나면 훈계하고 혼내거든요”

오뚝이 같은 쉘보드는 열정과 도전으로 똘똘 뭉친 회사다. 회사 설립부터 역경이 많았지만,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악바리 정신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런 쉘보드에서 소통, 가치 공유는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가치가 통일이 안 되면 결국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쉘보드가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가치는 고객에게 주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무척 당연하면서도 간단하다. 쉘보드는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인격적으로 무시하거나 정직하지 못했을 때 회사 차원에서 정리한다. 이는 고객한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또한, 쉘보드는 일주일 한 번 예배,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독서 토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지식 토크, 매일 감사일기 작성, 오케이 운동 등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직원들 간 신뢰가 끈끈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사람만 찾아 다니게 만드는 정부 지원 구조 아쉬워요”

이 대표는 인맥을 통해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인맥을 이용해 시작하는 건 결국 끈들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자기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년 자금, 영업 등 필요한 부분에서 자신만의 지원책을 만든 다음, 인맥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이다.

열정만으로는 힘들다. 자금은 어디서든 지원받게 되지만 소스나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창업을 시작하면 제 능력을 100% 발휘하기 쉽지 않다. 창업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영업, 자금, 마케팅 등을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받는다.

이 대표는 매출을 만들기 위한 정부 지원이지만, 매출을 만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매출이 있어야 지원을 받기 때문에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매출이 없는 사람들이 지원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방법이 ‘인맥’이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가니 사업이 이상한 쪽으로 빠지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하는 이 대표.

이에 그는 정부가 지원을 하려면 홍보를 많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 성과를 가져오라는 부분도 위험하다고 언급했다. 차라리 조건을 까다롭게 하더라도 지원을 할 때 제대로 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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