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최근 하루가 멀다시피 많은 뉴스가 올라오는 키워드이다. 지난 대선기간 각 정당 대표가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들고 나왔고, 현재 새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육성 및 시행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그리고 실효성에 대한 의심의 여론이 존재해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자칫 국가 및 기업 전략의 실패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2016년 1월 다보스에서 World Economic Forum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사실 슈밥 회장이 말한 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다보스의 이웃에 위치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으로부터 차용해 온 것이다. 독일은 2011년부터 정부차원의 장기 산업발전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아 제조업분야 4차 산업혁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주요 골자는 제조업 경쟁력 향상을 목적으로 IT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창출을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MIT의 디지털 경제 전문가 브린 욜프슨은 제2의 기계시대를, 유명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제3차 산업혁명을 들고 나왔다. 브린 욜프슨은 제1의 기계시대에는 기계가 사람의 근력을 대체했던 반면, 제2의 기계시대에는 기계가 인간의 지능과 의사결정능력을 대체해가면서 다시 한 번 비약적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주로 에너지원의 변화, 즉 석탄-석유-재생에너지로 이어지는 변화에 의한 사회적 파급효과를 통해 산업 혁명기를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교차하고 있어 현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재정의가 필요한 시대다.

 

독일의 정의에 따르면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에 의한 노동생산성 향상의 촉발, 2차 산업혁명은 컨베이어 벨트와 전기도입을 통한 자동화, 3차 산업혁명은 로봇과 컴퓨터 등 IT기술이 현장과 접목되면서 또 한 번의 생산성 향상을 이룬 시기를 지칭한다.
4차 산업혁명은 현실의 물리적 공간을 사이버 세계에 동일하게 하나의 쌍둥이처럼 투영하는 사이버 물리시스템에 의한 혁신적 제조방식을 일컫는다. 소비자 개인의 개별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전달하는 극단적인 소비자 중심의 생산과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소비자 분석에서부터 제품의 기획, 생산, 물류, 서비스까지 하나로 연결해줄 수 있는 End-to-End 엔지니어링과 표준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 현장 중심의 독일식 4차 산업혁명 모델에는 몇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우선, 분야를 제조업으로만 한정하다 보니 시장과 소비자, 서비스에 대한 개념정의가 부족했다. 완벽한 표준의 추구는 시장의 반응을 살피거나 발 빠른 혁신을 일으키기에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제약이 있다.
또한, 제조업 부문의 수직계열화에 치중하다 보니 바이오, 가전, 모빌리티 등 여타 분야의 표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다. 이러한 독일 4차 산업혁명의 빈 공간을 보다 완전하게 메워 주는 것이 미국의 사물인터넷 표준과 벤처 생태계이다. 전 도메인에 걸친 인터넷 표준화와 빠른 혁신속도, 시장접근성과 서비스 산업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미국의 표준이 최근 독일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상호보완적 발전을 이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국내 업계와 정부기관에서는 이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벤치마킹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제조업 3.0, 스마트공장 확산사업 등 정부의 노력과 스마트 팩토리와 벤처 생태계 육성 등 업계의 노력이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4차 산업혁명을 이루기보다는 기존의 산업자동화, 창업지원에 머무르는 한계점을 드러냈다. 실제 국내의 많은 기업의 의견을 들어봤을 때 여전히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현장에서도 아직 독일에서 정의하는 3차 산업혁명의 단계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여전히 자동화나 정보화를 이루지 못하고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대기업 또한 많은 IT인프라 투자에 비해 혁신적 가치 창출을 할 수 있는 기업문화나 조직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 IT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인프라에 대한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제자리 걸음하는 ‘생산성의 역설’을 겪은 바 있다. 이는 기업의 성장이 단순히 기술투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이 함께 바뀌어야  달성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4차 산업혁명 또한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IT기술의 발전 속도를 기업이 따라가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잘 타고 폭발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최근의 신흥기업으로부터 그들만의 성공 방정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실리콘 밸리의 혁신기업을 잘 살핀 살림 이스마일은 그의 책 Exponential Organization(이하 ExO)에서 이들의 성공비결을 잘 소개했다. 이들 ExO는 말 그대로 사람과 기업의 장기 지속적 변화를 일으킬 만한 철학을 담은 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또한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제품과 서비스의 실현까지 내부의 자원을 최소화하고 크라우드 소싱, 협력 플랫폼을 통해 외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알고리즘 등 핵심 IT기술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로 IT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들 ExO는 최근 강력한 인공지능기술 등을 통해 자율 주행차, 지능형 가전, 스마트 팩토리 등 기존의 제조업 분야까지 진출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기업들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 기업이 미국의 GE와 독일의 지멘스다. GE는 인프라와 회전기기 생산으로 전통적 제조업 강자로 분류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IT기업 리더십을 표방할 정도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제트엔진, 터빈, 에너지 인프라 등 전 세계에 공급한 자신들의 제품 정보를 수집해 실시간으로 최적 관리방안을 제시하고 분석을 통한 수익성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해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 또한 설비 하드웨어 등 대표적 제조업 강자로 분류되어 왔는데 이미 3만 연구인력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채워질 정도로 디지털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미 2000년 대 시작한 공격적 M&A전략으로 설계 및 생산관리 소프트웨어인 PLM(Product Lifecycle) 분야 강자들을 흡수해왔다. 이를 통해 설계, 시뮬레이션, 생산관리에 이르는 통합소프트웨어 제공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하나의 번들로 제조업 전반의 프로세스를 운영할 수 있는 강력한 툴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활발하게 벤처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혁신과 아이디어를 흡수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기술의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물론, 벤처기업 인수나 협력, 투자를 과감하게 진행 중이다. 삼성의 최근 카 인포테인먼트 기업 인수나, 현대자동차의 자율주행차 기술개발, LG, 포스코의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등이 이러한 반증이 되겠다. 과거의 경직된 수직계열화 조직문화에서는 창의성이 피어나기 어렵고 상호 협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수평적 조직문화를 장려하거나 외부와의 협력을 위해 높았던 소통의 장벽을 걷어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시기를 2035년쯤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국가 차원의 계획에 의해 10년 이상의 장기적 프로젝트로 표준을 완결한 후 시장에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소개해 반응을 살피고 지속적인 개선을 통한 표준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 또한 단순한 4차 산업혁명 따라잡기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업종별, 수준별 내용에 맞추어 자신만의 4차 산업혁명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 인프라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으며, 설령 구축이 되어 있더라도 부서간 소통단절, 보안을 이유로 외부 정보공개 등을 꺼리고 기업간 협력에 적극적이지 않아 4차 산업혁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연결과 소통’을 위한 인프라(Backbone)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은 과연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기 위한 3차 산업혁명의 단계를 완결했는지 확인하는 우선이다. 오늘 아침 사장님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가장 첫 질문은 ‘나는 과연 우리 회사 막내 사원과도 격의 없이 소통하고 있는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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