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하는 장애인 예술가를 위한 <잠실창작스튜디오>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함성이 뒤섞이는 곳. 매일 밤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인파가 모여 각자의 팀을 응원한다. 이곳은 한국의 대표 스포츠인 야구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잠실이다. 잠실에 오로지 야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스포츠 용품매장들이 늘어선 길목에 알록달록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국내 유일의 장애인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창작공간이다.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입주해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펼치고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는 ‘잠실창작스튜디오’다.
지난해 12월 7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8기 입주작가 기획전시 <기항지 : a Port of Call>이 열렸다. 항해 중인 배가 잠시 머무를 수 있는 항구를 뜻하는 ‘기항지’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시 거치는 곳이라는 의미다.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항해의 과정과 경험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이 전시의 타이틀처럼 잠실창작스튜디오를 거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실력을 다듬고 있는 장애인 예술가 12명이 참여했다.
전시의 개막을 맞아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가 이곳을 찾았다. 작품을 둘러보는 도중, 낯익은 초상화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JTBC <뉴스룸>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의 얼굴이다. (손석희 앵커는 주철환 대표의 처남이다.) 그림 앞에 모여 있는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은 한 젊은 남자는 주 대표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 등 뒤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는 자폐를 앓고 있는 잠실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정도운(23)이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주 대표는 어머니로부터 그림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서부터 정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도운이가 꿈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그렸어요. 자폐를 앓고 있기 때문에 늘 혼자였죠.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언제나 방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도운이의 그림은 자기의 소망을 정확히 도화지에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그림을 살펴봤다. 손석희 앵커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이승환과 서태지, 크라잉넛까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도운 작가는 단순히 팬심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창이라 생각합니다. ‘그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림’은 ‘그리운 것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희망하는 얼굴을 작가 스스로 표현한 것입니다.” 전시회를 나오면서 밝힌 주철환 대표의 소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에 귀 기울인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헌법 제11조 1항에 근거해 선진국 수준의 장애인차별금지와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불과 2007년의 일이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장애인복지법 제8조 1항에 나온 말이다. 이런 법률적,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애예술인에 관한 실질적인 지원 정책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장애예술인에 대한 실태 조사는 열악한 실정이며, 제대로 된 연구나 대책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다. 최근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장애인문화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에 대한 현실을 조심스럽게 가늠할 수 있다. “장애예술인의 창작작품에 대한 발표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82.2%에 이른다. 이렇게 창작발표 기회가 적은 이유로는 ‘장애예술의 마케팅 부족’(36.7%), ‘예술계의 폐쇄적인 시스템’(22.5%), ‘장애인에 대한 차별’(20.1%) 등을 꼽고 있다. 장애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는 작업공간은 주로 자체적인 별도 연습실에서 진행하는 비율이 62.1%다. 또한,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장애예술가는 전체의 46.9%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장애예술인 실태의 구조적 원인이 교육과 생활수준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수준의 예술교육과 장애예술인의 열악한 경쟁력은 창작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것은 빈곤과 개인의 역량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제도적 테두리로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는 악순환이 멈추지 않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28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문화생활과 체육 활동을 늘리기 위하여 관련 시설 및 설비, 그 밖의 환경을 정비하고 문화생활과 체육활동 등을 지원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 예술가를 위한 창작공간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종합운동장 내 위치한 ‘중소기업 제품전시판매장’을 리모델링해 조성됐다. 여기는 시각예술 분야의 장애예술가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원래는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개관됐었다. 그러나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명목으로 2012년 7월에 ‘잠실창작스튜디오’로 명칭이 변경됐다. 현재는 시각예술 분야의 장애예술가 12명을 선발해 창작활동을 보장하는 레지던시 운영과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을 비롯해 꿈나무 장애예술가를 발굴하는 장애아동 창작지원사업, 장애가족 대상 원예 힐링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는 장애예술가를 위한 운영공간으로 특화됐지만 오로지 장애인에게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와 ‘비장애’로 나누는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 함께 모여 작업할 수 있는 창작공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멘토로 활동한 한국화가 라오미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3년째 장애아동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때로는 재능을 보이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의지 또는 조력자의 발견을 통해서 발전한다. 그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보다는 자신만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에 노력했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 가족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야말로 내게도 소중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전체 면적 : 512.6㎡ (지상 1층 3개실)
▶구성 : 개별 작업공간 12실, 다목적 전시장, 휴게실, 공동작업장
▶주소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종합운동장 내
▶운영시간 : (하늘연/미소띤) 월~토 10:00~18:00 / 일요일 휴관
▶지하철 : 2호선 종합운동장역 7번 출구 (도보 10분)
▶버스 : [B]360,361,363,730,341 [G]3217,3218,3411,3412,3414,3415,3417,3422
▶홈페이지 : www.facebook.com/jamsilartspace ☎02-423-66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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