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싹 브리핑 [나, 봉앤줄, 서커스창작집단 봉앤줄]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와 뒤꿈치 가운데로 줄을 오게 하세요. 우선은 한 발로 시작합니다. 무릎은 살짝 구부려 주세요.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양손으로 중심을 잡으면서 천천히 시작할게요.”
줄타기를 잘하는 요령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치 <왕의 남자>에서 배우 이준기가 줄을 타면서 처음에 이 말을 듣지 않았을까. 지난 8월 뜨거운 여름,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찾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커스를 가르치는 수업 때문이었다. 처음에 ‘서커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막연한 선입견이 떠올랐다. 1960~70년대를 주름잡던 동춘서커스. 광야의 벌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천막과 형형색색의 만국기들까지. 하지만 주말에 찾은 현장을 보고서는 뭔가 달라보였다. 현대적이랄까.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들이 올라탈 외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높이는 50cm쯤 된 듯했다. 아주 낮게 단단한 쇠줄이 양쪽에서 당겨져 있었다. 길이는 5m 남짓. 어린 시절에 거닐던 철봉 기억에 이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자신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몇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다시 도전했으나 역시 결과는 매 한 가지. ‘요령을 몰라서 그렇겠지’라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내심 강사가 알려주는 꿀팁에 저절로 양 귀가 쫑긋해졌다.
 
서커스 별로 떠나는 신나는 예술 모험의 현장 속으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찾은 이유는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 참관하는 ‘서커스 예술놀이터’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프로그램 이름을 듣고, 서커스 기술을 가르쳐주나 보다 생각했다. 오해였다. 서커스를 소재로 진행되는 예술교육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이가 대상이다 보니 ‘놀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었던 수업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서커스 별 모험’이라는 주제 아래 4가지 서로 다른 수업이 펼쳐졌다. 각 수업마다 목표하는 바는 명확히 달랐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외줄타기’, 구조적 공간 능력을 키워주는 ‘저글링’, 음악적 감각을 키워주는 ‘바디드럼’, 신체의 활동지수를 높여주는 ‘아크로바틱’ 등 서커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각각의 프로그램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 이유를 물으니 아이들이 자라는 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서커스 기술과 같은 기예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각지에서 모인 100명의 아이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등을 맞대며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두 명씩 짝을 이룬 아이들은 저마다 실패를 하면서도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중에 한 커플이 성공을 거두자 나머지 아이들이 부러운 듯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이날 ‘서커스 예술놀이터’는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성 증진에 기여하는 창의예술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번 서커스 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일반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교육과정과 연관이 깊습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싣고 있는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라는 창작 동화를 소재로 삼았어요. 앞으로 서커스를 단순히 체험하는 것에서 벗어나 학교 수업과 연계해 진행하는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해요.” 이번 프로그램에서 서커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 강승우(31)씨의 설명이다. 그는 원래 연극과 뮤지컬 연출을 했던 현장의 예술가다. 강 씨는 지난 2015~2016년에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제공하는 서커스 교육프로그램인 ‘점핑업(Jumping Up)’에 선정되어 서커스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서커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위험하다’와 ‘광대’에 꽂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30년 전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과 사회통합 프로그램으로 효과를 인정받고 있어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국내 예술 강사를 선발해 지원하는 유럽 서커스 예술교육 기관 연합체인 ‘카라반 네트워크(CARAVAN Network)’에 준회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줘서 지금까지 영국, 벨기에, 핀란드에서 공부했으며, 조만간 프랑스 파리도 다녀올 계획입니다.”
 
삶에 필요한 물 공급지에서 삶에 중요한 ‘예술’ 공급지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예술과 서커스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서울시 창작공간이다.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이곳은 40년이 넘게 서울시민을 위한 물 공급 원천지로서 기능을 해온 구의취수장을 리모델링해 조성했다. 산업시설로서의 임무를 마친 지난 2015년 4월 24일, 국내 최초로 거리예술과 서커스를 위한 작품 제작, 연습, 교육, 배급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를 위한 예술작품을 만들고, 거리에서 활약할 예술가를 키워내며 거리의 문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삶에 필요한 물 공급지에서 삶에 중요한 예술 공급지로’라는 슬로건으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태어나는 작품들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거리예술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서울시 대표 축제인 ‘하이서울페스티벌’ 명칭이 재작년에 ‘서울거리예술축제’로 변경됐다. 이름이 바뀐 이유는 그동안 백화점식 축제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거리예술이라는 특성을 강화함으로써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이 목표였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이 대표 축제에 공급되는 주요 콘텐츠를 담당할 정도로 공간의 미션은 명확했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의 주요 축제 현장으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뻗어나갔다. 국내 유일의 서커스와 거리예술 창작공간인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예술의 발원지가 되기 시작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두 개의 취수장과 야외마당, 염소투입실 아뜰리에와 관사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5년 1차 개관 당시 조성됐던 취수장을 비롯해 오는 2018년에는 염소투입실 아뜰리에와 관사가 완공된다. 우선 제1취수장의 면적은 2,709.26㎡(메인 홀 662.4㎡)로, 높이는 무려 15m에 이른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박스형 건물로 대형작품 연습이 가능한 메인 홀과 세트 및 차량 반입구가 있다. 더불어 거리예술과 서커스에 관한 국내외 주요 자료(서적, 리플렛, DVD 등)를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과 멀티미디어실도 구비됐다. 제2취수장의 면적은 1,316.11㎡(연습실 140㎡)로, 높이는 2.7m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실내 연습과 교육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상 연습실이다. 하지만 지하 1층은 산업유산 보존 구역으로 과거의 취수장 모습을 그대로를 유지해야 하며, 별도의 시설공사가 제한되는 구역이다. 마지막으로 면적 2,640㎡에 이르는 야외마당은 외부에서 전개되는 대형 공연의 연습 장소로 적합하다. 이 밖에도 오는 2017년 말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18년에 완공될 예정인 염소투입실 아뜰리에는 공연에 필요한 구조물을 제작할 수 있는 목/철공 제작소로 활용될 예정이며, 예술가의 레지던시로 사용될 관사도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 2016 이동형전시 [기억하는 사물들_노니]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추진하는 5대 핵심 운영방안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사업은 크게 △창작지원, △전문가 양성, △예술교육, △연구 및 관리, △교육 및 네트워크 등 5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창작지원’은 작품이 연중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발표 공간(국내외 축제 및 도심의 공공 공간)에서 상연 가능한 공공예술로서의 거리예술 작품을 발굴, 지원한다. 이 밖에도 국내 컨템포러리 서커스 장르 육성과 창작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서커스 또는 서커스와 연계한 공연 예술 분야의 작품 개발과 창작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두 번째, ‘전문가 양성’은 거리예술가를 대상으로 재교육과 신진 예술가 양성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서커스의 저변확대와 서커스 예술가를 개발하는 전문가를 육성한다. 세 번째, ‘예술교육’은 ‘생활 속의 서커스’를 위한 어린이 대상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앞에서 언급됐던 <서커스 예술놀이터>가 대표적이다. 또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론과 실무 과정을 교육하는 거리예술 아카데미 과정도 있다. 네 번째, ‘교류 및 네트워크’는 거리예술과 서커스 분야의 창작 및 배급을 활성화하며 전문가 양성과정의 다변화, 실용적인 정보의 공유를 위한 국내외 교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 부문은 거리예술과 서커스와 관련된 자료에 대한 정리와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거리예술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비평 작업이 주된 업무다.
‘서커스 예술놀이터’에서 강사로 참여한 강승우씨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라는 공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그동안 막연하게 여겨져 왔던 서커스와 거리예술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공간입니다. 지금까지는 몇몇 예술가들에게 기회가 열렸는데, 이제는 일반 사람들까지 대상을 확대해서 서커스와 거리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보여주는 체험이 아니라 상설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 Jumping UP_기예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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