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특강

박영택 경기대 교수
박영택 경기대 교수

좋은 미술은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것


화가는 있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는 이가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일을 한다. 기존의 관습적인 미술 언어와 제도의 굳은 코드를 부단히 벗어나거나 갱신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 좋은 예술가인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그림은 단지 보이는 대로 외형을 재현하거나 형식적인 차원에서 물감과 붓질을 구사해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장식하는 차원이 결코 아니다.

그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 새로운 감각을 길어 올리는 일이고 망막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관여하고 아득한 시간의 깊이를 체득하고 경험하게 해주며 모든 언어와 문자가 망실된 자리에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세계를 펼쳐놓으면서, 그렇게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세계와 존재를 감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미술은 정해진 소재를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하거나 아름다움이란 것을 강박적으로 구현하는 그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사물과 대상을 보는 색다른 시간, 관습적인 데서 벗어난 눈이 중요하다.

하영희 작가의 ‘배추김치’(2008년 作)는 종이에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재현적인 회화이며 일종의 정물화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그림의 대상에 있다. 정물화라면 통상 화병, 꽃, 과일을 대상으로 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흰 천이 놓인 테이블에 놓고 그리는데 반해 이 작가는 누구도 정물로 보지않았던 김치를 정물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그 시각이 중요하다. 이는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시도이다.

김동유 작가의 ‘케네디’(2007년 作)는 한 작품 안에 두 개의 이미지가 공존(케네디와 마릴린 먼로)하는 작품이다. 가까이 가면 마릴린 먼로, 멀리에서 보면 케네디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보는 이의 시선과 거리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결정되며 그로 인해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는 점이 독창적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픽셀이미지로 보이는데 그 작은 픽셀들은 일일이 손으로 그린 아날로그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창의성을 인정받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억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새로운 시도에서 높은 가치가 발생한 것이다.

이동재 작가는 각각 콩과 쌀로 미스터빈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얼굴을 재현(2006년 作)했다. 물감과 붓질이 아닌 곡물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고(?) 그곡물의 이름이 재현한 인물의 이름과 동일하다. 콩(빈)으로 미스터 빈을, 쌀(라이스)로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곡류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이름과 그 재료를 연결하였다. 또한 캔버스 표면에 입체적으로 붙은 곡물은 촉각적이고 입체적이어서 그림이면서도 동시에 조각적인 회화이다.

구성수 작가의 ‘Magical Reality Series-Comics’(2005년 作)는 만화방의 책꽂이를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찍는 것이므로 ‘레디메이드 이미지’라 칭한다. 이 작품은 책꽂이에 꽂힌 만화책의 책등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상, 선, 현란한 율동을 발견하고 포착했다. 주변에 자리한 사물들에서 미술적인 것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눈이다. 이처럼 좋은 미술은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미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술적인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대미술보다 투자가치 높은 고미술에 주목하라

미술평론은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안목에 의해 선택되는 뛰어난 미술작품에는 당연히 높은 가치가 주어지는데, 국내 미술작품 시장은 작품 외적인 요소에 의하여 가치가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 작품 자체가 가지는 가치보다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고, 한국작가 보다는 외국작가를 선호하고, 독창적인 시도는 외면하는 경향이 현재 한국 미술시장, 컬렉터들의 상황이다. 현재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매우 높은 가격에 활발하게 거래되는 이유는 화교를 포함한 중국인들이 적극적으로 거래에 응하기 때문이다. 중국 미술시장은 대략 고미술이 70%, 현대미술이 30% 비중으로 거래된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자신들의 전통미술을 존중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구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국내 고미술은 현대미술과 비교해 관심이 매우 적다. 그렇기에 고미술은 현대미술에 비해 가격도 낮고 모든 분야에서 저평가된 것들이 많은 편이다.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17~18세기 조선시대 분원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좋다. 크기가 38센티미터 이상이고, 형태와 색이 좋으면 가치가 높아진다. 달항아리는 실생활 용도, 감상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있는데, 감상용인 경우 외관상 얼룩이 없이 깨끗한 상태의 것이 많다. 백자무릎형연적은 선비가 쓰던 문방사우 중의 하나다. 고미술 작품 중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필통, 연적, 붓통, 사방탁자, 서안 등 바로 문방사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문방사우는 당시 선비정신을 표상하는 절제된 미감이 뛰어난 장인에 의해 표현되어 매우 완성도가 높고 아름답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품목이다. 고가구 중에는 사방탁자가 상큼하고 아름답고 뛰어나 투자할 만 하다. 얇고 가볍고 군더더기 없는 세련되고 절제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선비가 직접 목수를 불러 자기 취향대로 주문제작 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것이 없다. 가벼운 오동나무로 상판을 만들어 무척 가볍다. 반닫이는 가장 실용적인 가구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강화 반닫이를 높게 친다. 최근 5,000만 원 수준에서 거래된다.

산수화는 겸제 정선만한 그림이 드물다. 그림 가격을 보면 현대 서양화작품에 비해 형편없는 편이다. 겸제 정선의 ‘독좌관수’(獨座觀水, 혼자 가만히 앉아서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는 전형적인 인물산수화이다. 논어의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독좌관수’에서의 산과 물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지혜(물)와 어짐(산)을 추구하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을 보여준다. 겸제 정선의 작품들은 수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민영익의 작품을 추천한다. 난화에서의 선의 형태는 사물을 표현하는 선이 아니라, 시간의 과정을 따라가는 선이다. 난이 자라나는 느낌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 민화는 좋은 것들은 1960~70년대 일본, 프랑스 등 해외로 팔려나가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가치있는 작품들이 드물다.

서예는 당연히 추사 김정희만한 작품이 없다. 그는 서예의 정석에서 출발하여 자신만의 서체를 만든 이다. 거의 자유자재의 경지, 조형적으로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글씨다. 무심한 경지, 희롱하는 경지의 추사 작품은 아직도 저평가되고 있다고 본다. 현대미술로는 권옥연의 인물상, 권진규의 조각상 등이 좋다. 역시 동양화는 김호득, 박노수, 성재휴, 서양화는 문범, 박고석 작가의 작품을 추천한다. 국내 판화시장은 매우 위축된 것이 사실인데, 오윤 작가의 작품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좋은 작품 감상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라

미술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좋은 미술작품을 대함으로써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접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벨로퍼가 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요하고 잠재력 있는 작가들, 대부분 30~40대의 젊고 유망한 작가들이고 시장에서 좀 더 주목받아야 하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몇 작가들을 소개한다.

김옥선 작가의 ‘빛나는 것들’은 제주도의 나무를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관광지 등 관습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자연을 자연 자체로 보고 찍어낸 사진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보지 못하던 묘한 나무의 몸이다. 김은주 작가의 ‘가만히 꽃을 그려보다’는 연필을 종이에 새까맣게 문질러 검은 꽃을 그려낸 작품이다. 검은 흑연의 광물질에 의해 번득거리는 질감이 살아있어 조명에 따라 가공된 검은 꽃의 다양한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김현정 작가의 ‘끈적한 밤’은 새벽 작업을 하면서 창밖으로 바라본 노란 조명이 비추어진 주차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늘 보던 풍경이지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묘한 순간을 포착해냈다. ‘무엇을 그린다’라는 명확함에 사로잡혀 있기 보다는, 무의식적인 것, 순간적으로 포착된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박미현 작가의 ‘백개의 별展’은 새까만 배경에 하얀 별이 보이는 그림이다. 흰색 종이에 별을 의미하는 하얀점만을 남겨두고 0.5mm 볼펜으로 새까맣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여 칠한 작품이다. 별 하나를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는 깊은 어둠이 필요하고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작품이다.
유근택은 기존 동양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사물을 표현하며 영상적이고 감각적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통상의 작가는 삶과 그리기가 분리되는 것이 보통인데, 좋은 작가는 삶의 순간들을 즉각적으로 물질화해 내는 시선과 실력이 있다.

유승호 작가의 ‘야호’는 대관산수(大觀山水, 가공의 웅장한 산수를 그린 관념적인 그림)이다. 확대해서 보면 ‘야호’ 글자를 일일이 써서 점묘화처럼 그려냈다. 옛 서화에는 그림과 글자가 함께 존재하다가 근대에 와서는 분리되었다. 이 작품에는 이와 반대로 ‘야호’라는 한글 글자와 산수풍경 그림이 함께 하고 있다. 제목도 ‘야호’여서 작가의 재치와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이광호 작가의 ‘untitled 6741’은 제주곶자왈을 그린 그림이다. 사실성 있는 그림 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아득한 시원의 시간을 간직한, 태고의 숲의 느낌을 그려내었다. 붓에 의한 세밀한 묘사가 아니라 나이프로 정신없이 긁어낸 그림이다. 가까이서 보면 날카로운 혼돈을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는 방법이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좋은 작가’의 요건으로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작가가 미술을 생각하는 관점의 독창성이다. 이는 숨길 수 없이 작품에 드러난다. 둘째는 작가 본인만의 경험과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는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히 물질화하는 솜씨이고, 이것이 부족하면 작가라고 할 수 없다. 기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타고난 감각과 감수성이다.


공공미술은 획일적 일상을 개선하는 고민이 필요

공공미술은 다수의 대중들이 특정한 공간속에서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공공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고민을 만나기 어렵다. 그저 주어진 공간에 그럴듯한 조형물을 밀어 넣거나 장식에 머무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어진 구체적인 공간과 환경, 그 안에서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기억과 흔적을 보듬어 내는 작업이 부족하고, 시간과 역사의 축적이 묻어나는 공공미술에 대한 성찰이 아쉽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조형물은 작업의 질이 무척 떨어지며, 작가 선정에 대한 전문성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극단적인 예로 여러 지자체에서 행해지는 벽화 사업은 그 수준을 논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며, 오히려 주변 환경을 해치거나 지역주민들의 삶에 방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은 전시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이 무수한 시각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가 관건이다. 미술을 전공하든 안하든 미술과 함께 살고 있기에 그렇다.

수없이 많은 상품과 건물들의 시각적 이미지로부터 무의식적으로 훈육되고 길들여지고 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이미지 리터러시(Image literacy, 이미지 문해력)인데, 시각 이미지를 정확히 읽는 훈련이 어려서 부터 필요하다. 이미지는 나의 욕망, 감각, 감수성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공공미술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개입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획일적이고 폭력적으로 강요되는 일상의 상황들을 개선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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