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송의 레이버인사이트]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기업문화 혁신
[임무송의 레이버인사이트]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기업문화 혁신
인재전쟁 시대 승리 비법
  • 임무송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19.10.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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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투데이] 범죄와의 전쟁, 무역전쟁 등 ‘전쟁’이란 용어가 일상화되고 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를 압도하는 무기와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경제전쟁은 기술과 인재가 승패를 좌우한다. 미·중 무역전쟁도 핵심은 기술전쟁이고, 기술전쟁은 사실상 인재전쟁이다. 한국경제의 일본 극복도,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도 기술력을 갖춘 인재확보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젊은 인재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연봉보다 워라밸!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용어)를 중심으로 직업 생활의 가치관과 직장 선택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존중받으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터, 존재의 의미와 일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균형된 삶이 중요하다. 연봉이 높아도 야근, 주말 근무를 강요하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다. 

대기업 일가의 만행과 IT 업체 사업주의 엽기폭행, 간호계의 ‘태움 문화(‘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간호사 선·후배 사이의 괴롭힘을 지칭)’가 사회적 공분을 샀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입법을 불렀다. ‘직장 내 성희롱’ 규정이 「남녀고용평등법」에 명문화된 지 20년 만에 국가가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의 더욱 깊숙한 영역까지 개입하게 됐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주 52시간제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까지, 변화의 바람에 기업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은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첫걸음은 법 제도와 구성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해서 기민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무슨 내용을 담고 있나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행위자, 행위요건, 행위장소 등 세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괴롭힘 행위자에는 동료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포함된다.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사업장 내뿐만 아니라 ▲외근·출장지 등 업무수행이 이루어지는 곳 ▲사적 공간 ▲회식이나 기업 행사 현장 ▲사내 메신저·SNS 등 온라인 공간도 괴롭힘 행위 발생 장소로 인정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피해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받거나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한다. 조사기간 동안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피해 근로자 보호조치를 하고,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 근로자 배치전환, 행위자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상시 1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사항을 마련하고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했거나 주장했다고 불이익 조치를 하면 안 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직장 내 성희롱 금지 운영의 시사점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성희롱 금지는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라는 점에서 기본목적이 같고 문제해결과 처리절차도 비슷해서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시 성희롱 판례가 많이 참고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직원 가운데 8.1%가 지난 3년간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는데, 여성·청년·비정규직이 성희롱을 상대적으로 많이 당했다. 성희롱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5.3%),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3.4%),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2.7%) 등이 다수였고, 성희롱 행위자는 대부분 ‘남성’(83.6%), ‘상급자’(61.1%)였다. 

주목되는 점은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그냥 ‘참고 넘어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49.7%),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31.8%) 순으로 답변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것은 조직의 문제해결 의지에 대한 불신과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실제로 ‘동료’(57.1%), ‘상급자’(39.6%) 등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행동으로 2차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27.8%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운영과정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이후 현장의 모습은

막힌 봇물이 터진 듯이 갖가지 괴롭힘 사례 신고가 폭주하고, 직장에서는 세대 간 문화충돌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직접적인 처벌규정과 5인 미만 사업장 적용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 괴롭힘의 의미와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 문제가 될까 두려워 부하직원들과 편하게 말도 섞지 못하고 업무지시 하기도 부담스럽다는 불만 등 여전히 논쟁은 뜨겁다. 하지만 입법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됐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73.3%)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법 시행 한 달 동안 총 379건, 근무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16.5건의 진정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다. ‘폭언’이 40%로 가장 많았고, ‘부당 업무지시 및 부당 인사’(28.2%), ‘험담 및 따돌림’(11.9%), ‘업무 미부여’(3.4%), ‘차별’(2.4%), ‘강요’(2.4%), ‘폭행’(1.3%), ‘감시’(0.5%)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내지 않거나 회사에 신고를 망설이는 경우도 많아 실제 발생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재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성희롱과 괴롭힘이 다반사인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인재는 없을 것이고, 인재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조직이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면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우선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정상적인 업무지시나 성과관리를 위축시키고, 업무 부적응자나 성과 부진자가 무임승차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판단 기준을 보완하고, 현장 모니터링과 상담·지원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역할이다. 

인재경영으로 성공하는 기업조직이 되려면 첫째,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을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노사공동 실태조사 및 행동강령 선포, 법령에 맞춘 취업규칙 정비, 전문가 위촉, 주기적인 예방 교육 등의 조치를 하고, 최고경영자에 의한 괴롭힘을 통제할 수 있는 독립적 준법감시체제도 필요하다.

둘째,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 상황과 시대정신의 변화 흐름에 맞춰 수직적·권위적 기업문화를 수평적·민주적인 방향으로 일대 전환하고, 스타트업 DNA를 배양해야 한다. 근원적으로 변화(deep change)하지 않으면 소멸하게 될 것이다. 유행처럼 채택되는 ‘호칭 변경’은 직급 단순화 등 조직개편이 수반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인재 채용방법 전환(대규모 공채→수시채용), 출퇴근 및 점심시간 유연화, 복장 자율화, 임원 직급체계 통합, 직급 축소(직위·연공 중심→역할 중심), 호칭 단순화, 승진 연차제 폐지, 평가방식 변경(절대평가→상대평가) 등 과감한 개혁에 나선 현대·기아차 등 주요그룹사의 조직혁신 성과가 주목된다. 

셋째, 기업문화 혁신의 관건은 사람과 일에 대한 조직구성원의 인식 전환이다. 간부는 직원들이 종속적 신분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계약관계라는 점, 상사와 부하는 역할을 나누어 맡은 파트너,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팀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것이 인사, 업무, 보상 등 조직운영 전반에 반영돼야 한다. 

MZ세대가 꿈꾸는 워라밸은 단순히 일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일의 목적과 의미, 그러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열망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젊은 조직으로서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이 모범사례(best practice)를 만들고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다. 직원도 조직에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 열정과 역량을 갖춘 쿨한 인재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올바른 처방을 위해선 정확한 조직문화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다니엘 데니슨은 ①사명(우리가 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인식하고 있는가?), ②적응성(우리는 시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③참여도(우리 구성원들은 역량이 있고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가?), ④일관성(우리 회사는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 가치, 절차를 보유하고 있는가?) 등 네 가지를 짚어보라고 한다. 필자의 과거 반성에 기초한 간편 진단법, 사무실 업무 풍경이나 점심시간 직원들의 모습을 돌아보라. 직원들이 고개 숙이고 보이지 않는 헤드폰을 끼고 있지는 않은지.


임무송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서울지방노동위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석좌교수, 경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