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원천기술 분야 초석 다져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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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해 대한민국을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출 규제 대상 항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와 불화수소(에칭가스)의 3개 품목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고 리지스트는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감광제로, 에칭가스는 반도체 세정에 사용된다. 나아가,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광범위한 품목에 대해 규제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서 수출을 규제한 품목에 대해 전적으로 일본 제품에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수출공급처 변경 또는 국산화 등의 논의가 계속되는 중에 일본에서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해 언급을 시작하며 국가간 특허전쟁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특허의 국제주의 그리고 속지주의

특허는 여러 국가에서 등록될 수 있고, 한 나라에서 등록된 특허는 나라 간 다른 협약이 없는 이상 해당 나라에서만 유효하다. 국가적인 거래와 분쟁에 있어서 어느 나라의 특허법 적용을 받는지도 큰 이슈다. 국가마다 특허법이 다를뿐만 아니라 특허법을 해석 및 적용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같은 기술이라 하더라도 국가마다 전혀 다른 권리 범위를 갖게 되는 일도 빈번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분석을 통해 기술이나 제품마다 특허를 받을 나라를 다르게 선정해 진행하기도 한다. 국가마다 특허 소송에 걸리는 기간, 금액, 재판관의 성향, 법원의 전문인력 보유 여부,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왔는지 등도 고려해 분쟁을 진행한다. 한 나라의 판결이 다른 나라를 구속하지 않으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 특허법의 적용을 받는지는 글로벌 기업 간 지식재산권 분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 기업이 생산해 국내 다른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행위는 당연히 한국 특허법 적용을 받는다. 그렇다면, 국가간 수출 수입 행위의 경우 어느 나라 특허법의 적용을 받을까? 만약 제3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해 한국기업으로 공급하는 경우 생산행위는 제3국가의 특허법 적용을 받고, 한국으로 재료를 공급하는 행위는 한국 특허법 적용을 받게 된다. 이동 중 다른 국가의 항구에 잠시 정박하기만 하는 경우, 이동 중 다른 국가 영해를 지나가는 정도라면 특허 침해가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일본 기업이 한국 또는 제3국가에 수출규제항목과 관련된 특허를 가지고 있다면 수출규제항목을 제3국가에서 생산하는 행위는 일본 기업의 제3국가 특허를 침해할 수 있고, 한국으로 들여와 한국의 기업에 공급하는 행위는 일본 기업의 한국 특허를 침해할 수도 있다. 

반도체 소재 분야 일본 특허 강세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3대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량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대 반도체 소재는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공급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분야이기에 일본 기업들은 해당 소재 관련 다수의 특허를 한국에 가지고 있다. 조사 결과, 일본 국적의 출원인이 해당 소재 관련 특허를 전 세계에서 절반가량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3극 특허(미국, 일본, 유럽 동시에 등록된 특허) 수만을 놓고 봤을 때 일본은 1만 7,391건, 우리나라는 2,599건에 불과하다. 

이렇듯 일본 기업들은 소재부품 핵심기술을 발 빠르게 특허로 선점해 둠으로써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했다. 이미 원천기술이 특허로 선점돼 있으면 특허 존속 기간에는 대체기술을 확보하거나 상용화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원천 기술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기술을 특허로 보호함으로써 진보성 판단 기준도 완화된 상태에서 등록돼 권리 범위도 매우 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원천기술은 이미 시장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이미 사실상 표준화됐거나 표준의 기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때는 다른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회피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대체기술의 확보도 어려울뿐더러 국내 기업 입장에서 자칫 잘못하면 특허침해소송이라는 지뢰를 밟을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산 불화수소로 공급처 변경?

불화수소 공급 문제가 불거지자 러시아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을 제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7월 11일 러시아가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산보다 순도가 높은 불화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불화수소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혀왔고 일본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고고통신은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법 특허는 모리타화학공업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나아가, 일반적인 불화수소는 제조할 수 있지만, 고순도 제조법 특허를 피해 공급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 측이 우리 정부에 불화수소 공급을 제안했다는 내용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일본의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 기업은 한국으로 불화수소를 공급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러시아 기업이 한국으로 불화수소를 공급하는 것이 일본의 모리타 공업의 특허권 침해가 되기 위해서는 제조국인 러시아 또는 수입국인 한국에 모리타 공업의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법 특허가 등록돼 있어야 한다.

일본에만 이런 특허가 등록돼 있다면, 속지주의 원칙상 일본에서는 특허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 이미 공개된 특허이기에 다른 나라에서 특허가 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와 한국에 일본기업의 특허가 등록돼 있다고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등록된 청구항의 권리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면 특허 침해가 되지 않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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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의 불화수소 정제기술 관련 특허 보유 여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불화수소 정제기술 관련 특허를 조사한 결과, 한국, 미국, 일본 기업에서 관련 특허를 보유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기업인 다이킨 공업 주식회사가 1건의 불화수소 제조 방법과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검색됐다. 모리타 화학 공업(Morita Kagaku Kogyo) 및 스텔라 케미파(Stella Chemifa), 쇼와덴코(Sjpwa Demlp)의 경우 불화가스(F2), 불소계화합물, 불화칼슘 제조방법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본 언론에서 주목한 모리타 화학 공업의 경우 불화수소 제조에 사용되는 불화칼슘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화수소 제조 방법 특허는 이미 존속기간이 만료됐다. 리지스트와 폴리이미드의 경우에는 일본기업이 국내 특허 중 약 절반 정도(45%)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기업인 씨엔비산업주식회사에서 초고순도 불산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씨엔비산업주식회사가 보유 중인 등록특허 제10-1308051호의 청구항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청구항 1] 

일반순도 또는 고순도급 불산에 불순물과 반응하는 F2, KMnO4, H2O2 또는 이들의 혼합물을 첨가하여 초고순도 불산을 제조함에 있어서,

i) 일반순도 또는 고순도급 불산에 H2O2를 첨가하고,

ii) 이들 첨가물에 반응온도 -30∼10℃의 범위에서 초음파 진동을 통하여 불산 중의 불순물과의 접촉을 증대시키는 공정과,

iii) 이들의 혼합물을 응축기의 냉각기 온도 -30℃ 내지 20℃에서 증류 정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일반 순도 또는 고순도급 불산으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는 초고순도 불산의 제조방법.


즉, 고순도급 불산에 혼합물을 첨가한 후 초음파진동 및 온도 조절을 통한 증류정제를 거쳐 불순물을 제거해 초고순도 불산을 제조하기 위한 방법이다. 특허 내용에 따르면, 불화수소 속 불순물을 10억 분의 1 이하로 제거하도록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불화수소 관련 특허를 조사한 결과 불화수소 제조, 정제 방법에 관한 러시아 기업의 특허가 다수 개 검색됐다. 러시아 자체에서도 이미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는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러시아에서도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불화수소 관련 특허는 한국에 많이 등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 대체하더라도 문제가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미국 기업(허니웰, 미드웨스트)들이 특허 침해를 주장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수출규제항목 중 다른 두 가지 항목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의 경우는 외국기업들이 특허권을 다소 확보해 놓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 제품의 생산이 무조건 특허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구항을 검토해 회피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있다. 특허의 권리 범위와 회피에 관한 문제다.

특허권의 권리 범위는 청구항으로부터 나온다. 특허법 제97조에서는 특허발명의 보호 범위는 특허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에 의해 정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실시하는 경우에만 특허의 실시라고 인정된다. 이를 구성요소완비의 법칙(All Element Rule, AER)이라고 한다. 구성요소완비의 법칙에 따르면, 청구범위에 기재된 구성요소 중 하나라도 생략하거나 다른 구성요소와 치환해 실시하는 경우 침해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허회피설계란 특허청구항에 기재된 구성요소를 일부 생략하거나 다른 구소로 치환해 실시하더라도 동일하거나 더 우수한 성능의 제품이 나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특허의 일부 구성요소를 생략하거나 치환해 실시하는 경우, 생략·치환이 용이하거나 과제해결원리가 동일한 것 등 균등론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만족하는 경우라면 균등침해가 될 수 있다. 특히 청구항 내에 수치를 일정범위로 한정한 수치한정 발명의 경우 그 한정 범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인정되면 균등침해가 될 가능성이 있어 권리 범위를 벗어났다고 안심할 수 없다. 특허된 청구항의 일부 구성요소를 생략한 채로 제품을 생산했으나 제품의 사용과정에서 해당 구성요소에 대응하는 구성요소가 만들어진 경우 균등침해로 인정된 사례가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한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경우에나 특허의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기업 못지않게 한국기업들도 많은 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는 만큼 독자적인 기술 또한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등록 특허의 청구항들을 면밀히 분석해 개발 방향을 설정하거나 침해 회피를 위한 설계에 따라 기술개발을 수행하는 IP결합 R&D 즉, IP R&D를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일본이 소재 기술 강국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격경쟁력, 품질 일관성, 짧은 배송 거리 등을 고려하면 관련 기술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인프라를 쌓아온 일본 제품을 하루아침에 국산이나 제3국가의 제품으로 대체하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허가 등록돼 있다면 이를 대체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험난하다. 즉,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쉬운 길을 택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일본 제품에 온전히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자신들이 공급하는 특정 제품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외교적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소재 원천기술 측면을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친 격차를 한 번에 따라잡기 어려운 것도 맞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화수소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특허로서 보호되지 않고 있는 점을 활용해 한 걸음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번에 걷는 한 걸음이 소재 원천기술 분야에서도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기술을 증진함으로써 경제 기반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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