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기본협약은 무엇이고 정부는 왜 비준하려 하는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투데이] 최근 결사의 자유 등에 관한 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이하 ILO)는 1919년 설립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노동문제를 다루는 UN 산하 전문기구다.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9일 152번째로 가입)하고 있으며, 지난 100년간 189개 ‘협약’과 205개 ‘권고’를 채택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은 ‘기본협약’, ‘거버넌스 협약’, 그리고 ‘전문협약’으로 구분된다. 기본협약은 ‘핵심협약’이라고도 하는데, ① 결사의 자유(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② 강제노동금지(제29호 강제노동, 제105호 강제노동 철폐), ③ 차별금지(제100호 남녀 동등보수, 제111호 고용·직업상 차별금지), ④ 아동노동금지(제138호 취업상 최저연령, 제182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 등 4개 분야의 8개 협약을 말한다. 

ILO 국제노동기준은 회원국의 자발적 채택을 원칙으로 하지만, 회원국은 가입과 함께 ILO 헌장의 규범을 수용할 의무를 부담한다. 특히, 핵심협약에 대해선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이행 상황을 감시·감독하고, 미비준 시에는 그 이유와 비준 전망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속적 요구,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걸맞은 노동권 보장 필요, 한-EU FTA에 따른 통상 압력 등을 이유로 기본협약 비준을 추진해 왔다. 2018년 7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협의를 진행했으나 노사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19년 3월 7일 공익위원 명의로 ‘ILO 기본협약 비준 등에 대한 제언’을 발표했고, 정부는 파업참가자 등에 대한 징역형 시 협약위반 문제가 발생하는 제105호를 제외한 3개 협약 비준안과 동 협약과 충돌되는 내용을 정비하기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ILO 기본협약 및 노동3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핵심쟁점은? 

정부가 비준을 추진하는 4개 협약 가운데 대체복무제도의 협약위반 논란이 있는 제29호 협약은 사회복무요원에 선택권 부여 등 보완조치를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제87호와 제98호 협약이 핵심이다.

그간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의 개선 권고를 받은 쟁점은 노조 가입자격 제한(특수형태업무종사자, 실업자, 해고자), 노조 설립신고제도, 비노조원의 노조 임원출마 제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5급 이상 공무원 노조가입 금지 등이었다. 정부안에 특수형태업무종사자의 노조 가입자격과 노조 설립신고제도 개선은 반영하지 않았고,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보완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이 포함됐다.

노사 모두 반대하고 있는 정부안의 쟁점사항을 살펴보자. 첫째, 실업자·해고자가 조합원이 돼서 마음대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현재도 대법원은 초기업단위노조는 실업자나 해고자도 노조 가입자격을 인정하고 있으며, 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개별 기업의 단체교섭에 참여할 수 있다. 

정부안에서는 기업별 단위노조에도 실업자·해고자가 가입할 수 있도록 하되 노조 임원이나 대의원은 될 수 없도록 하고, 노조 활동은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며, 사업장 출입 및 시설사용도 노사 간에 합의된 절차나 사업장 규칙 등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째, 노조 전임자의 급여는 사용자가 지급해야 하나?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이 삭제돼도 노사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 유지·관리 업무에 한해 유급을 인정하는 근로시간면제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된다. 따라서 전임자 급여지급은 조합원 규모별로 정한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며,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기로 합의하더라도 무효가 된다. 제어장치가 느슨해지고 노사 갈등과 담합에 따른 탈법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셋째, 공무원·교사는 누구나 조합원이 돼 파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퇴직(해직) 교원·공무원, 소방공무원, 5급 이상 공무원, 대학교수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고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 문제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도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다만, 5급 이상 공무원 중 ‘지휘·감독, 총괄업무 종사자’ 등은 노조 가입이 제한되고, 공무원·교원의 파업, 집단연가 등 쟁의행위는 계속 금지된다. 

넷째,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도 군대를 가고, 기업은 인력을 배치받지 못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ILO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경우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데, 정부는 산업기능요원, 공익법무관, 공중보건의사 등은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고 복무 의무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 제29호 협약 위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다만,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 선택권 부여 등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섯째, 그렇다면 노사는 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을 반대하는가? 노동계는 협약 우선 비준을 요구하나, 정부는 비준과 법 개정 동시추진 입장이다. 노동계는 노조 임원자격 제한, 조합원 출입 제한, 공무원·교사의 파업권 부정, 교원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 등으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후퇴시키고 단체협약 유효기간 등 ILO 기본협약과 상관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실업자·해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 삭제, 근로시간면제제도 관리규제 완화 등으로 노조로의 힘 쏠림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경영계의 방어권으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규제,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허용, 사업장 내 점거나 집회·시위 쟁의행위 금지, 파업 찬반투표 6개월 이내 재투표 제한 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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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체제를 새롭게 디자인하자

국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법 개정은 고사하고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고 폐기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이 많다. 첫째, 노사의 입장 대립이 극명하다. 둘째, 일반 국민은 내용을 모르고 여론의 지지가 약하다. 셋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열린 토론의 플랫폼 역할을 못했고, 일부 공익위원이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넷째, 국내외 경제 여건이 매우 나쁘다. 다섯째, 정부의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동개혁 비전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밀린 숙제를 하듯 ILO 협약 비준이라는 국정과제에 경영계 요구 일부를 묶어 국회로 넘겨버린 모양새다. 여섯째, 국회는 여야 모두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극한 대립 속에 갈등법안 처리를 미룬다. 

노사의 이해가 충돌하는 노동법 개정은 헌법 개정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모두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전혀 상반된 내용을 주장하기 일쑤다. 우리는 ILO 회원국이자 글로벌 개방경제에서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과 경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산업화시대의 산물인 노동법 체제를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나 노와 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우리 노사관계를 참여와 협력, 상생과 공영의 미래지향적 관계로 전환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만 가져다 맞춘 퍼즐은 이상한 모양이 되고 말 것이다. 노동개혁은 파괴적 혁신이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진단에서 출발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공론과 지혜를 모아 방책을 만들고, 굳은살과 병든 조직을 도려내는 혁신의 고통을 공통체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며 과감하게 실행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고, 그 성과는 다음 세대가 누리게 될 것이다.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노사 모두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진영의 둑을 허물어 통합의 강물이 흐르도록 하고, 노동과 자본이 공화(共和)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의 복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20대 국회는 하루빨리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어 노사관계 합리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일에 나서기 바란다.

 


임무송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서울지방노동위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석좌교수, 경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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