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위에서 잠자는 사람은 보호하지 아니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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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최근 금호산업이 이사회 의결을 통해 아시아나 매각우선협상 대상자로 HDC현대산업개발, 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선정했다는 기사가 주요언론의 경제면을 장식했다. 항공산업의 경우 진입 장벽이 높고 그룹의 향후 사업에 영향을 많이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프리미엄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 대상기업에 대해 실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업, 회계, 법률 등 대규모의 실사단이 구성돼 대상기업의 정보를 분석해서 투자자에게 최종가격 제시 이전에 고려해야 할 점을 미리 점검해 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등 투자의사결정기구의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서류로 제시하게 된다.

실사의 의미와 종류

기업의 인수 합병 과정에서 실사(Due Diligence·DD)란 지분 또는 자본구조의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거래와 관련해 투자대상기업에 대한 재무, 영업, 법률, 환경, 인적자원, IT 활동 등의 영역에서 재무적 혹은 비재무적 정보를 얻는 활동을 일컫는다. 실사는 대부분 투자회사의 인력이 외부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업무 분야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사는 재무분야와 법률 분야인데 각각 회계사와 변호사가 참여하게 된다. 이때 재무분야 실사는 일반적인 감사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 감사와는 성격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회계감사가 이미 정형화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재무정보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감사의견을 표명하는 업무인 반면, 실사는 정형화된 절차 대신 잠재 투자자인 고객과의 협의에 의해 수행절차의 방법과 범위를 자유롭게 합의해 정해 두며, 사적 계약에 의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따라서 실사 절차는 보다 폭넓은 분야, 즉, 인사, 전산, 환경 등의 분야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실사는 정형화된 서비스가 아니므로 소요되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실사보수는 업무량에 따라 결정되고 업무량은 통상 합의된 절차와 대상회사의 복잡성에 따라 결정된다. 단순한 업무는 2~3일 정도 소요되고 복잡한 경우 1~2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나 인수합병에 따른 다음 일정이 있기 때문에 실사 기간은 그 이상으로 연장되기는 어렵다. 대형법인을 기준으로 실사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실사 과정(Due Dilligence Flow)

통상 실사는 다음과 같은 인수과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공개매각의 경우 매각대상회사의 매각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우선협상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사전실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매력적인 투자대상회사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 다수의 투자자가 참여하게 되는데,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제한된 공간에 매각대상회사의 자료를 모아 두고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중요한 이슈가 있는지 미리 점검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기도 한다. 

잠재적 투자자가 투자의향서, 비밀유지확약서와 소정의 참가비용을 제출하면, 자료실(요즈음은 대부분 전산파일화해 클라우드 가상공간에 설치하기도 한다)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일정기간 자료실의 정보를 열람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는 예비실사에 참여하는 투자자 그룹끼리 각자 법무, 회계 전문가와 팀을 이루어 빠듯하게 주어진 예비실사기간 동안 자료실의 정보를 검토하기 위해 협업하게 된다. 제공되는 자료는 제한적이므로 요청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비실사기간 중에는 현 경영진과의 인터뷰 기회도 제공돼 자료실에서 획득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도 있다.

예비실사 기간 동안 이루어진 예비실사의 결과물에는 희망인수가격과 조건을 제시하기 전 고려해야 할 중요한 내용만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잠재투자자가 경쟁자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거나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면 우선협상자에 선정되는데, 이후에는 협상 우선권이 주어진 기간 동안 인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작성하는 동시에 인수가격 산정을 위한 모델링을 통해 구체적인 인수가격 산정 작업을 진행하고, 대상회사를 직접 방문해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본 실사를 실시한다.

본 실사에는 예비실사에 비해 투입인력이 증가해 예비실사 때 발견한 사항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입수하고 예비실사 때 확인하지 못한 분야에 대해 추가적인 자료를 입수해 검토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비실사에서 발견되지 않은 중대한 이슈가 부각되기도 하고 특별한 보고사항 없이 미미한 추가 발견 사항만 나오기도 한다. 

본 실사 결과 발견된 사항은 사안별로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향후 절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본 실사가 끝나고 거래가격 조정이 이루어지면 양해각서가 서명되고 이를 기초로 주식매매계약서가 작성된다. 수차례에 걸친 조건협의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경우 계약서에 양측 대표가 서명하면서 매매거래가 완성된다.

 

주요 실사이슈 사항

실사 과정에서는 대상회사의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며 투자대상회사를 인수한 이후에도 이러한 핵심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주요한 검토 사안이다. 매출이 주로 계열사를 통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업체에 매출이 편중돼 있는지도 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유한 특허나 기술이 주요한 자산인 회사의 경우 특허 관련 소송이나 기술개발 핵심인력의 이탈도 거래가 진행되는 중에 발견되는 경우 투자의사결정을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인수 초기의 사전 실사 단계에서 파악해야 할 사항이다.

투자여부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사항이 아니더라도 본 실사 결과 발견된 사항은 사안에 따라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자료실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회사내부정보를 검토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슈를 발견하게 된다. 

실사 과정에서는 최근 수년간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의 추이를 세밀하게 분석해 매도자가 제시한 매출증가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 급격히 줄어든 비용이 있는지 검토해 비경상적인 요소를 제거한 후 투자대상회사의 현금창출 능력이나 수익성을 검토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무제표에 대한 크고 작은 수정사항도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인수 시점에 재무제표를 수정하기도 한다. 많은 기업이 매각 직전 광고를 중단하고, 통상적인 자본적 지출, 연구개발비 등을 줄여 이익을 부풀리고 단기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매출액을 끌어 올리는 등 매각 직전에 실적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실사 과정에서는 비경상적인 요소를 제거한 뒤 투자대상회사의 영업에서 창출될 수 있는 초과수익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러한 초과수익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잠재투자자가 인수할 경우 시너지효과가 어느 정도 되는지 함께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의 자산, 부채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우발부채나 부외부채의 존재다. 제품의 하자에 따른 손해배상금, 공해시설의 철거에 따른 복구비용, 종업원들과의 약속, 손실보전 규정, 하청업체에 대한 의무, 관계회사에 대한 지급보증, 주요계약에 포함된 경영권 방어조항, 특이한 조건이 부과된 차입금, 법규위반 등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한 보험회사의 경우 수년 이내 도입될 새로운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경우 감독기관에서 요구하는 지급여력을 갖추려면 향후 5년 이내 수백억 원의 추가증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거의 성사단계까지 갔다가 계약이 파기된 경우도 있었다. 다른 게임회사의 경우 뒤늦게 세무상의 위험이 부각돼 끝내 합의를 못 이루고 계약이 파기된 일도 있었다.

실사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이슈가 부각되면 인수대금을 조정하거나 대금납부 방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리 실사과정에서 발견된 사항이 있으면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세한 본 실사를 거쳐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을 미리 쟁점화해 두는 편이 사후적으로 매매계약서가 서명되고 이후에 진술 및 보장 조항(Representation and Warranty)이나 분쟁조정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국내환경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실사를 생략하거나 축소한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을 들여 회사를 인수하면서 추가적인 실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오너가 많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매도자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도 있고 전문가를 통해 궁금한 내용을 확인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적 계약을 보다 잘 보장한다고 알려진 영미법 체계의 국가에서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당사자가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고 “권리 위에서 잠자는 사람을 보호하지 아니한다”는 불문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나라일수록 계약 전 실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중요하고 복잡한 계약을 위해서는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갖는다. 특정 분야에 본인의 지식이 부족하면 전문가를 활용하면 된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매도자와 매수자 간 정보의 비대칭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회사를 인수하면서 막상 계약 전 실사 비용을 아까워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선명회계법인 이영섭 대표

이영섭 선명회계법인 대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 미국 공인회계사에 합격했다. 세동회계법인에서 근무했고, 미국 Price Water house LLP에서 교환근무를 수행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전무를 지냈고, 이정회계법인 부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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