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마음에 ‘힐링’의 빛을

윤진섭, Relation, painted on F. R. P, 70x49x95cm, 2017
윤진섭, Relation, painted on F. R. P, 70x49x95cm, 2017

[스타트업투데이] 10월 9일부터 15일까지 총 일주일간 윤승갤러리에서 성북구 화가들의 연합전 ‘The BODA’전이 개최됐다. 전시는 ‘소풍스케치 협회’, ‘날스 㓊’, ‘키키의 숲’ 세 협회 회원들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BODA’는 ‘Being Observation Drawing Art’의 줄임말로 ‘관찰하며 그림 그리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혹은 사사로운 소재들을 주제로 표현됐다. 40명이 넘는 회원들의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관찰된 풍경들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돼 갤러리 공간 전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데, 이는 작가와 관객들에게 일상생활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세 협회가 지향하는 것은 보다 친숙한 예술의 실현이다. 복잡하고 깊이 있는 해석과 감상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닌, 일반 관객들이 갤러리를 오가며 편안한 마음으로 예술은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세 협회의 지향점이다. 이는 예술이 담고 있는 ‘치유’의 속성을 극대화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힐링’의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조각가 윤진섭

전시를 진행한 작가 중 윤진섭 작가를 소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花象(화상)3’이라는 조각 작품을 출품했다. 중앙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는 예술의 전당, 가나아트스페이스 등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10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광화문 광장, 양평 군립미술관,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현재 브라질대사관, 국민대학교, 대구MBC, 미국의 ‘THE STUDIO SHOP’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행위의 재미와 해학적 미학과 맞닿은 사고적 마티에르(matie're)가 살아 있는 조각 

윤진섭 작가는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순수한 의문에서 출발해 제작 방식과 재료에 대한 연구를 거쳐 예술의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찾아가고 있다. 그는 충실하게 흙을 주무르고 빚는 과정을 거치며, 재료의 물성을 통해 본질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적 개념을 정립하려 노력해왔다. 

이전의 작업은 반 입체 음각 부조로 제작된 도시 풍경화이거나 얼굴 일부분이 과장되거나 해학적으로 인물상을 그려냈다. 입체작업의 개념과 2차원적 평면 개념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작업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냈다. 

서로 다른 개념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입체 개념을 유연하게 만드는 동시에 평면을 통해 공간의 깊이와 볼륨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도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데, 작가에게 순수한 애착심과 간절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는 작가의 도전적 의식은 바로 이러한 진중한 태도에서 나왔으리라 본다. 세련되거나 감각적이지 않더라도 그가 담아낸 풍경과 형상들은 서로 중첩되며 추상적이면서도 묘한 기하학적 균형감을 가진다. 

다채로운 형상의 표면에는 거친 흙의 매만짐, 스쳐 지나간 자국, 둔탁하지만 경쾌하게 그어진 나이프의 선 자국, 힘껏 누른 표면에 남겨진 지문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 매우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 마치 시간을 재현해내듯 서술적이면서도 독백처럼 희극적이기도 하다. 

이전 작품은 현상의 기록적 과정에 주목했다면 현재는 좀 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와 넓게는 다양한 미적 형상성에 주목하고 있다. 윤진섭 작가는 2010년에 들어서면서 둔탁한 흙의 질감을 걷어내고 매끈한 표면에 다채로운 색채감을 더하거나 조각 천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재료를 덧붙여 곱게 단장한 인물상의 연작을 선보인다. 

그는 재료의 성질을 존중하면서 유기적이고 절제된 인체표현을 통해 내적 생명력을 표출하고 무한한 미적 표현 영역을 만들어간다. 작품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인물상을 선택한다. 

인물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닌, 단지 하나의 감정적 표출의 대상이며 자유롭게 구성된 형체의 표현이다. 일상의 시간과 가깝게 밀착돼 있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사물이 가진 모습을 뒤집어 보고, 나름의 해석을 담아낸다. 무대 위의 화려한 행위자처럼 다채로운 모습들이 대담하면서도 도도해 보이고 독창적이다. 제품으로 치부될 수 있는 쇼윈도 마네킹의 모습은 미적 가치가 부여됨으로써 예술 공간에 서 있다.

이는 마치 예술사적 개념에서 오브제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그것이 어떠한 상징적 의미로 명명되어 질 수 있는지에 주목했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고유한 인체상은 복제될 수 없음에도 그의 인물 형상들은 어떠한 요구에 의해 복제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전통 조각이 가지는 고유함을 지키는 권위적 영역을 파괴하는 것이며 현대미술이 가지는 특성인 다양성과 다변성을 조각이라는 영역으로 들여오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형상들은 독립적으로 서 있지만 서로 간의 유기적인 관계성을 유지하며 공간 속에 공존해 가고 있다.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얼굴의 형태는 어떠한 아이덴티티도 부여되지 않은 단순화된 이미지다. 철학적, 미학적 광범위한 영역까지 그 상징적 개념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이며, 각각의 인물은 이상적이고도 낭만적으로 부각시킨다. 

이러한 하나의 존재적 가치가 배제된 다양한 인물형상은 허망한 인간의 삶을 대하는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인물형상은 내면의 이야기를 나타내기 위한 대변의 대상이었고,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관념의 상징성으로 표출하려는 과정이 재료의 선택이다. 

그의 작업의 재료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행위’가 요구되는데 더하거나 빼는 색채의 두께감, 광택의 강도감, 다양한 패턴이 들어간 천을 이용한 ‘콜라주’ 기법을 통해 조형적 연출을 발휘하며 관념적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행위’란 단순히 몸을 움직이거나 동작을 통해 의도되는 의식적인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재료에 관한 선택적 행위는 그가 추구하는 창작의 본질적인 문제, 순수예술의 목적과 함께 대중적인 시각을 접목시킨 자신만의 미적 표현 영역을 구축해 가는 과정이다. 

오브제적인 인물형상의 제작방식은 작업에서 선택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질감을 극대화하고 하나의 유기적인 에너지로 작용하면서 작가의 심오한 내적 영감을 응집하는 구성체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조형물로서의 결과물이 아닌 표현되지 않은 무의식적 관념에서 나오는 행위의 대상, 즉 인물의 선택적 가치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윤진섭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표현이며, 재료의 선택에서 얻어지는 마티에르, 즉 질감-‘행위’의 흔적을 고스란히 작품의 일부분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윤진섭 작가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분명한 목적과 동기가 존재하며, 왜곡되거나 과장돼 연출되지만 원초적인 표현 욕망은 매우 순수하다. 표현의 방식을 탐구하는 정신적 창조 활동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사소하거나 심오한 것, 사실이거나 추상적인 그 어느 것도 구분하지 않는다. 한정된 주제여도 꾸며낸 것이 아닌,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하게 선택된 인공의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해학적 미학과 맞닿은 그만의 유연한 사고적 마티에르가 묻어나는 조각 작품을 기대해본다. 잠재된 미적 욕망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강한 의식적 행위가 결합해 다변화된 대상을 입체와 평면으로 오가며 유기적인 관계성을 보다 발전된 시각으로 적극적으로 작품에 시도하길 바라본다. 

- 김은정 abn 디렉터(Essay by EJ Kim, director abn: contemporary art & projects)

재아, 우리의 일부, 100x65cm, Acrylic on canvas, 2018
재아, 우리의 일부, 100x65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번 ‘BODA’ 전시에서는 약 200명의 수많은 작가 및 관객들이 방문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전시장의 분위기를 한층 더 활기있게 북돋아 준 듯하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친숙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세 협회의 시도와 활동들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