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론화’ 즉시 시작돼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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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60세 정년제가 본격 시행된 지 2년 만에 정년 연장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공론화의 신호탄은 정부가 먼저 쏴 올렸다. 정부가 지난 9월 18일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으로 「계속고용제도」를 제시하자 시중에서는 ‘정년 65세’ 애드벌룬을 띄운 것으로 보고 있다. 

공교롭게 9월 26일에는 한국노동연구원이 ‘고령시대, 적합한 고용시스템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남재량 선임연구위원이 정년 연장 의무화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과 함께 정년 연장에 앞서 임금의 유연성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정년 60세 이상 의무화’ 이후 정년퇴직자 수는 2016년 35만 5천 명에서 2019년 35만 명으로 줄어들고, 같은 기간 조기퇴직자 수는 41만 4천 명에서 60만 2천 명으로 늘어났다. 

2013년 5월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55세 또는 57세로 정하고 있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의무화해 2016년 1월부터(300인 미만은 2017년 1월부터) 적용하고 있는데, 입법 의도와는 반대로 조기 퇴출이 늘어난 것이다. 

자료: 장래인구추계, 통계청, 2019.3, 2011.12.
자료: 장래인구추계, 통계청, 2019.3, 2011.12.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 5년 뒤에는 초고령사회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 미만(0.98)인 유일한 국가이고, 출생아 수도 2018년 32만 7천 명에 불과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수명 증가로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돼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율이 14% 이상)를 지나 초고령사회(20% 이상)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3월 28일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인구구조 문제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2017년 5,136만 명이던 총인구는 2028년 5,194만 명을 정점으로 2067년에는 3,929만 명으로 감소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15~64세 생산연령인구가 2018년 3,765만 명(인구의 72.9%)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고령층에 접어드는 2020년부터 감소세가 확대돼 2030년에는 3,395만 명(인구의 65.4%)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제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의 취업시장 진입이 마무리되기 시작하는 2020년대 후반부터는 인력 부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14세 이하 유소년인구는 2017년 672만 명에서 2030년 500만 명으로 감소한다. 같은 기간 6~21세 학령인구도 846만 명에서 608만 명으로 감소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07만 명에서 1,427만 명으로 2배 증가한다. 그 결과, 생산연령인구 1백 명이 부양해야 하는 피부양인구(유소년+고령인구)는 36.7명에서 53.0명으로 급증한다. 

저출산에 따른 절대인구 감소의 영향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와 교사 등 교육 인프라가 남아돌고, 병역자원 감소(2018년 35만 명→2025년 23만 명), 지역 공동화(30년 내 시군구의 34%, 읍면동의 40% 소멸)로도 나타날 것이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성장잠재력 저하를 가져오고, 고령인구 증가는 노후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게 하는 한편, 요양·돌봄 등 고령친화산업을 발전시키고, 복지지출은 급증해 재정수지가 악화될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정부의 4대 전략, 20개 과제 

인구구조 변화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위기의 경고등은 이미 켜진 지 오래인데 우리의 대응은 느긋하기 그지없다. 급기야 옥스퍼드대학교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한국은 저출산으로 소멸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구구조가 변하면 현재의 국가 시스템을 지속하기 어렵다. 범국가 차원의 비상한 대응이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19년 4월, 14개 부처와 10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인구정책TF’를 구성하고, ① 생산연령인구 확충(고령자 계속고용 및 재취업 활성화 등 3개 과제), ② 절대 인구 감소 충격 완화(평생·직업교육 기능 강화 등 8개 과제), ③ 고령인구 증가 대응(주택연금 활성화 등 6개 과제), ④ 복지지출 증가 관리(장기요양보험 재정 안정화 등 3개 과제) 등 4대 전략, 20개 정책과제에 대한 대응방안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생산연령인구 확충과 관련된 정책과제가 9월 18일 첫 번째로 발표됐다. 주요 내용을 보면, 고령자 고용보조금을 늘리고, 사업장에서 다양한 고용연장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점진적 퇴직과 재취업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시간단축청구권을 보장하고 임금감소분을 일부 보전하는 장년근로시간단축제를 활성화하고, 외국인력 제도를 일부 개선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가장 관심을 모았던 정년연장 건이 부처 간 이견으로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계속고용제도」는 60세 정년 이후 일정한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기업이 ① 재고용, ② 정년연장, ③ 정년 폐지 등 다양한 고용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 일본이 65세로 고용을 연장할 때 채택했던 방식이다. 60세 정년 연장 때 획일적으로 강제했던 것보다는 연착륙을 유인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2022년 계속고용제도 도입 검토’가 ‘정년 65세 연장’으로 해석되자, 기획재정부는 정부가 정년연장 및 계속고용제도 도입 시기를 검토한 바 없고, 정년연장이 아닌 재고용 등 계속고용제도 논의는 2022년부터 본격 논의할 예정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새 정부가 들어설 2022년에나 논의할 계획을 내년 총선을 의식해 불쑥 발표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타당한지는 노사의 입장이 갈리고 학계 견해도 다양하다. 하지만 선진국도 인구 고령화에 대응해 노동시장 은퇴연령을 늦추는 것이 대세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제 자체가 없고, 독일도 65세이고 일본은 65세에서 70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 사회보장제도와 고용체계를 전면적으로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활동인구를 늘리고,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연령과의 차이에 따른 소득 크레바스 해결을 위해서도 65세까지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중위연령은 2017년 42세에서 2067년 62.2세로 올라간다. 그때까지 60세 정년을 유지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은퇴자가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고용연장이든 정년연장이든 경제활동 은퇴연령을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년연장의 역설’을 피하려면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데, 고용조정은 어렵고 임금은 성과와 무관하게 근속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면 기업은 가급적 고임금 근로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60세 정년제 시행과정에서 정년보장은커녕 조기퇴출자가 늘어나는 ‘정년연장의 역설’을 경험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생산성과의 괴리가 큰, 지나치게 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 때문이다. 

임금의 연공성이란 무엇인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이환 교수는 ‘제도적으로는 정기승급이 있는 호봉제를 활용하는 것, 실질적으로는 직무변화나 스킬 역량변화와 무관하게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임금데이터를 보면 한국의 임금 연공성이 얼마나 심한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년 미만 근속자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 임금이 유럽연합(EU) 평균 1.62배, 독일은 1.89배인데 한국은 4.39배에 달한다. 

고용노동부의 2016년 한·일 비교 자료를 봐도 일본은 2.46배인데 비해 한국은 3.29배로 연공성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임금 연공성이 이처럼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경희대 박우성 교수는 ‘호봉제 자체보다는 호봉승급 기제가 중요한데, 자동정기승급제와 연례적인 임금인상(베이스업)이 결합해 매우 강한 연공효과를 발휘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남재량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은 고령화에 대한 만능처방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년연장이 실제 퇴직연령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생산성 향상과 임금의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고,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점진적이고 완만하게 조정해야 하며, 청년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업종별·직종별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임금체계를 뜯어고치지 않고 정년을 다시 연장하면 중장년층 조기 퇴출과 청년취업난을 심화시키고,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 사이의 격차만 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중구조 노동시장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은 노조의 힘이 강력한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 등 1차 노동시장의 기득권층에만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65세 정년, 70세 현역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려면 중·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법 규범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축소하는 개혁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로 개편하고, 스마트공장 등 제조혁신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융합한 ‘일터혁신’을 통해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노동생산성을 현재보다 2배 이상 향상시켜야 한다. 

세계는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디지털 혁신 경쟁이 빛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혁신에 실패하면 바로 도태되는 전쟁터에서 파괴적 혁신은 생존의 필요조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거꾸로 가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민간부문은 규제와 기득권의 저항에 막혀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공공부문은 임금피크제 폐지, 성과연봉제 폐지, 호봉제 회귀 등 역주행의 외침 속에 직무급제 논의는 진전이 없다. 공무원 증원과 워라밸을 선도하는 정부부문에서 효율과 혁신이란 단어는 실종 상태이고, 적자공기업이 경영을 잘했다고 대규모 성과급을 받는 것도 일반 국민 시각에서 보면 생경하다. 

초고령사회 진입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인구 충격에 직면해 나라와 사회체제가 지속되려면 고용시스템이 전면적으로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 굳은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새살이 나올 수 없듯이 개혁의 성패는 가장 경직적인 부문의 혁신 여부에 달려 있다.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금과 인사 시스템을 먼저 바꾸면 민간부문으로 신속히 확산될 것이다. 연공, 근속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바꿔야 ‘같은 일은 같게, 다른 일은 다르게’ 처우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생산성 혁신이 가능해진다. 

임금정보 인프라를 확충하고, 임금체계 개편이 임금삭감이나 고용조정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서 근로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긴요하다. 직무분석과 평가체계 설계 과정에 노조 등 근로자대표가 참여함으로써 합리적 노사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초고령사회에 적합한 임금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즉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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