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움츠린 산업계, 쌓인 불만을 토로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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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자동차산업연합회, 한국M&A협회를 위시한 19개 산업계 단체들이 ‘산업규제의 글로벌 조화방안’이라는 포럼을 개최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아 국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으므로 국내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 조선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주력 산업의 하나로 고용과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국이 15개인데, 한때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생산국으로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우리 차가 달리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며 자긍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위상은 추락한 듯하다. 국내 자동차 총생산 대수는 4년째 감소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이번 토론회는 이런 엄중한 상황 하에 정부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완화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 

필자는 자동차 산업이 규제 산업으로 분류될 정도로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었다. 과거 상공부 시절부터 자동차 담당 부서(수송기계과)가 업계의 온갖 애로사항을 앞장서서 해결하면서 오늘날의 자동차 산업을 육성해 왔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자동차 미세먼지, 장시간 근로, 임금 체계 등의 문제로 집중적인 정부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국민 소득이 올라가고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자동차를 무조건 많이 생산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아진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지속적 발전과 수출을 위해 국제 경쟁력을 저해하는 환경, 노동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국회와 정부, 환경단체, 노동자 단체들과 대안을 협의하는 단계까지 가지도 못한 실정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입법 남발이 과도한 규제의 한 원인으로 제기되었으며,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됐다. 금융, 바이오, 공유 경제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규제가 혁신을 저해한다고 불만이 제기됐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왜 이리 정부 규제가 많은지, 그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국내 규제 수준이 선진국보다 높은 이유

우리나라가 산업에 대해 규제를 많이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물론 산업 안전 등 아직도 규제가 허술하다고 지적되는 분야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는 선진 외국에 비해 상당히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규제가 많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급속한 경제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의 성장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정부는 그 주된 수단으로 규제와 특혜, 정부 보조, 행정 지시 등을 사용해 왔다. 과당 경쟁과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진입 제한, 각종 인허가 제도를 시행하고, 가격, 생산, 수입 등을 통제했다. 수출 증대를 위해 다양한 특혜를 부여하고 환경 및 산업 안전 등의 규제를 느슨하게 했었다. 

주요 산업에 대해서는 각종 발전법, 지원 육성법, 촉진법 등을 제정하여 다양한 규제와 정부 보조 등을 도입했다. 남북 대치하의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 보다는 국가 우선주의, 통제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문민정부 이후에 역대 정부가 모두 자율과 규제 완화, 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부규제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한편, 경제 자유화와 개방을 추진하면서 큰 부작용을 겪다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점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성급하게 자본 자유화를 추진해서 IMF 사태를 겪었고, 수입 개방으로 인한 농축산업 위축, 경제의 글로벌화로 인한 금융위기 등을 경험하면서 규제 완화로 피해를 보는 집단의 격심한 반대와 관계 당국의 소극적 대응이 반복되면서 규제 완화가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

게다가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즉각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소위 ‘빨리 빨리’ 문화가 만연하면서 즉흥적이고 성급한 대응으로 과잉 규제를 초래한 것이다. 사회적 관용과 성숙, 시장 기구를 통한 자연적 해결을 기다리지 못하고 규제 편의주의, 처벌 만능주의적인 정부 개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고착화됐다. 

어떤 사건은 사회 문제화가 되면 정부가 즉시 해결하도록 언론이 여론을 조성하고, 정치권에서 강력한 대책을 재촉하면 정부는 규제와 처벌 강화라는 손쉬운 대책을 남발해왔다. 정부 대책반이 밤을 새워 일하고 나면, 담배 꽁초와 규제가 수북이 쌓인다는 우스갯소리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서 과잉 입법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속한 문제 해결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장기적인 근원적 해결책 보다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재정 포퓰리즘, 규제 포퓰리즘에 의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점도 규제가 많은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 중국과 같은 대륙에서 사업을 하는 것과 조금만 움직여도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서 기업을 하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도 하다. 

11월 19일 오전 한국기술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우리 산업규제의 글로벌 조화 방안’을 주제로 ‘산업 발전포럼(I)’이 개최됐다.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11월 19일 오전 한국기술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우리 산업규제의 글로벌 조화 방안’을 주제로 ‘산업 발전포럼(I)’이 개최됐다.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지정토론에는 김규옥 한국M&A협회장, 이창범 동국대학교 교수, 오문성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이현영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규제혁신단장, 이광호 한국과학기술 정책연구원 기술규제연구센터장이 참여했다.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지정토론에는 김규옥 한국M&A협회장, 이창범 동국대학교 교수, 오문성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이현영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규제혁신단장, 이광호 한국과학기술 정책연구원 기술규제연구센터장이 참여했다.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갈등 해결의 시작은 역지사지(易地思之)부터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다양하고 강한 정부규제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유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산업계는 규제 완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갈등을 해결하려면 먼저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계의 입장에서는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규제 당국은 물론, 일반 시민이나 언론, 학계에서조차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 완화로 손해를 보게 되는 집단이나 계층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이나 대책이 미흡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시장 개방이나 자유화 조치로 농민, 전통시장 상인, 영세 자영업자들이 무고하게(?) 피해를 본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동안 경제 제일주의, 성장 제일주의 정책으로 인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시정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규제의 강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문제로는 소득 양극화, 경제 정의 훼손, 환경, 안전, 삶의 질 저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그동안 허술한 규제 하에서 기업들이 부당하게 이익을 보아 왔으므로 이제는 조금 강한 규제로 손해를 좀 봐도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규제 개혁이 집단 이기주의의 다툼으로 변질될 우려도 보이고 있다. 

 

규제 완화와 개혁을 위해 고려할만한 방법론들 

첫째, 규제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다 보면 규제 자체가 나쁜 것처럼 단정할 수가 있다. 사실 모든 규제는 그것이 도입된 이유가 있으며,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클 때까지 존속해야 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규제는 사회 발전의 핵심적 수단이므로 규제의 목적 달성 여부, 경제 성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규제 완화 이슈는 대부분의 경우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율과 개방에 입각한 경제 운영에는 찬성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산업과 분야에서는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 규제 당국 및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토론하고 설득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둘째, 규제 완화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토론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동체 우선, 사회적 조화, 통일성 추구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며,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경제적 자유와 다양성 존중, 자기 책임의 원칙 등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이념적 기초부터 다질 필요가 있다. 

정치인, 관료, 언론, 학계 등 정책과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지금보다 좀 더 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높아지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측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 동안 규제로 인해 이득을 얻은 측을 나쁘다고 비난하기 보다는 상황의 변화, 사회 전체의 후생 증대, 신산업 육성 등의 사유로 규제 완화가 더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관료주의 무사안일 행정으로 인하여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규제를 답습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주장해야 한다. 불합리하게 보이는 규제가 존속하고 있는 분야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인 경우가 많다. 농어업, 영세 자영업, 운수업 등 개방과 경쟁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분야로서 급속한 구조조정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들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산업화 과정에서 광업, 농업을 구조 조정하면서 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나 개방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는 점도 감안하여 지혜와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대안을 마련할 때는 규제 완화로 얻는 이득의 일부를 피해 집단과 공유하는 장치와 적정한 보상 등 보완대책을 잘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익이 발생하는 업계에서 지원 기금을 조성하거나 목적세 등을 신설하는 방안들도 고려할 수 있다. 

기존 종사자들을 고용 승계하거나 타 업종으로 전직하는 것을 도와주는 직업 훈련, 퇴출 보상 등 구조 조정이 연착륙(soft landing) 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환수, 보상 방법으로 로봇세 신설을 논의하는 것은 창의적 대안 마련을 위한 담론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 마련은 공무원이 담당해야 하지만, 규제 당국이 주도적, 창의적으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관련 업계를 포함하는 사회적 토론의 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의원입법으로 규제 법안이 양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국회 내에 규제 법안에 대한 심의 절차를 신설, 강화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는 자체적으로 규제개혁위원회와 규제개혁 추진단 등을 운영하고, 정부 제출법안에 대한 규제 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규제 신설을 억제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은 규제 억제를 위한 장치가 전혀 없어서 제도상 불균형이 야기되고 있다. 정부내 절차가 까다로워짐에 따라 소위 ‘청부 입법’의 형태로 의원 입법이 악용되기도 한다. 현재 국회의 예산 심의를 보좌하기 위해 직원 130여 명의 예산정책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차원에서 ‘(가칭) 규제개혁처’를 신설하여 의원 입법의 규제 영향평가 등 규제품질 제고와 신설 억제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규제 완화와 개혁은 매우 복잡한 이슈이면서 다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회발전과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므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을 제안해 본다.


한국M&A협회 김규옥 회장

1984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기획재정부 대변인,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두루 거친 ‘타고난 행정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6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제40대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을 역임했고, 이후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취임해 신성장동력 창출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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