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가 말하는 미술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空電軌圖, animation Eadweard Muybridge 12 photos, Acrylic Cylinder, Electric Motor, Stroboscope Light, 60×60×160cm
空電軌圖, animation Eadweard Muybridge 12 photos, Acrylic Cylinder, Electric Motor, Stroboscope Light, 60×60×160cm

이전의 예술 양식에서도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방식의 소통은 존재했다. 그러나 미디어아트에 접어들며 실제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말 그대로 관객과 작품,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형기 교수의 작품은 특히 그렇다.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자꾸만 말을 건다. 일상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전시장을 거니는 것은 관객들에게 분명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험이다. 꿈이 작품이 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김형기 교수와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그의 작품들이 꿈의 형상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꿈을 그려내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꾸고, 꿈을 가진 사람이다.

 

본인 소개를 요청했을 때, 스스로 ‘몽상가’라고 표현했습니다. 

‘몽상가’는 스스로 붙인 수식어입니다. 꿈은 모호해 보이지만 때론 실제보다 더 리얼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심층을 헤아리기도 하고 예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기도 하죠. 우리 삶이 가상이 되는 순간이 꿈꾸는 순간입니다. 몽상이라는 글자를 보면 ‘몽’은 현상이고 프로세스지요. ‘상’은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화면이고 내용입니다. 그래서 꿈의 영상은 다양한 크기와 해상도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 전에 감은 눈에서 무엇이 보이는지를 습관적으로 관찰하곤 하는데 그렇게 끄집어내는 것이 그야말로 상상(imagination)입니다. 

상상은 가상보다 끈기가 없어 수증기처럼 허약한 모습으로 증발돼 버립니다. 컴퓨터 화면 같은 수많은 차원의 영상들 사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스스로 조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작위로 변해버려요. 상상은 하나의 컴퓨터에서 나오는 디스플레이는 아닌 것 같아요. 

눈을 감고 있을 때 보이는 이미지들은 눈꺼풀의 혈류나 심연에서의 조정에 의해 생기는 추상일 때도 있고, 기의(signifie)와 기표(signifiant)가 구분되지 않는 시퀀스들이 뒤죽박죽 섞여 재생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안의 유기적인 생체 화소(pixel)가 의식의 그릇(capacity)에 따라 변하는 액체 유기물인 셈이죠. 설명을 하고 나니 몸과 영혼의 아름다운 우정 같은 느낌이네요.(웃음)

몽상은 본능과 이성의 틈새를 비집으며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꿈에 빠져들기 전까지 몸부림치며 자아의식을 캐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는 작가를 ‘몽상가’라고 생각해서 저의 직업이름으로 삼게 됐습니다. 

전시장에서의 김형기 교수. (출처: SIBKOREA)
전시장에서의 김형기 교수. (출처: SIBKOREA)

작품이 ‘몽상가’ 라는 별명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에 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얻나요?

작품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꿈을 꾼 내용을 밖으로 꺼내는 역할과 같아요. 내 의도와는 달리 미지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상상의 멀티채널에서 선택되는 한 장의 이니그마(enigma)에서 출발합니다. 그 후로 뻗어 나가는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는 거죠. 허공에 떠다니는 이니그마의 카드를 잡아채기 위해 보고, 듣고, 걸어 다닙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늘 다른 곳에 가 있다’고 말해요. 작품 구상을 모든 것에 빗대어 보거든요. 저는 사물이 주는 영감, 데자뷔, 이미지, 소리 등에서 그 단서들을 찾으려 합니다. 어디서든 몽상을 하고 있고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생각들을 늘 기록해요. 

젊었을 땐 총체적으로 작품이 ‘훅’하고 순간적으로 그려지는 영감의 능력이 있었지만(웃음), 지금은 시간을 들여 작품의 구상을 완성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교묘해졌다고 할까요? 더 많은 생각을 함으로써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변형, 발전시키는 쾌감에 사로잡혔어요. 젊어서는 시리즈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변형이나 새로운 생각을 추가해 나가는 시리즈 작업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국내 미디어아트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과거와 현재의 작업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저는 물리를 공부하다가 예술이 좋아서 파리로 갔어요. 그리고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그래서인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순수성이 높다고 봅니다. 상업적이기보다는 실험적인 작품을 해왔어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예술성을 추구하는데 거침없었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동이고 그걸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우라가 있는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자주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좋은지. 결론은 작품을 하는 내가 즐거워야 관람자도 즐겁다는 겁니다. 

감성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작업을 하면서 내가 느끼는 메커니즘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었고, 그러한 태도가 나쁘지 않아서 메커니즘이 평생 이어진 것 같습니다. 

리얼리티가 바로 저의 화두입니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에 대한 리얼리티.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듯 저는 작가로서 인간의 존재 상태를 모방하는 거죠. 재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행위에요. 그 존재의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즐거움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리얼리티를 위해 살아있는 조각을 만들고 싶었고, 3차원의 디스플레이 시스템에 관심과 열정을 쏟았어요. 인간의 메커니즘으로 발생하는 반응들을 재현하는 작업을 마치 부품을 완성하듯 몸과 몸의 움직임, 들숨과 날숨, 물과 바람 등 인간 내부와 그 주변의 매개체들로 표현하면서 작품을 해 온 거죠. 여러 다양한 기술과 양태를 이용해 ‘인간 존재’를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네요. 제 작품들을 보면 진화과정이 보여요. 하지만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이 가진 메시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작품들을 보면 아주 전통적인 방식부터 새로운 기술까지 다양하게 시도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작업은 꼭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작업이 있나요?

미디어아트의 장점은 스케일입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스케일이 되죠. 특히 프로젝터의 장점은 ‘확대’잖아요. 넓은 공간에서 큰 작품을 하고 싶어요. 또 디지털 미디어아트는 상호작용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어요. 상호작용은 엔터테인먼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처럼 대중을 위한 디지털 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앞으로 인공지능 아트(AI Art)가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인공지능을 예술 지능(Art Intelligence)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좀 더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우리처럼 대화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프랑스에서 오래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오랜 유학생활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프랑스든 어디든 생활습관과 언어, 사고가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는 건 머릿속의 공간을 넓히는 역할을 해줍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톨레랑스(tolerance)’를 지니게 돼 그 관용의 폭이 작품 영역의 폭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장르를 쉽게 접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융합의 환경이 내 좌표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유럽 사람의 장점 중 하나는 ‘멀티’에 있어요.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식의 수준이 전문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한번 대화가 시작되면 밤샘 토론에 이를 정도로 격렬하고 진지한 사람이 많아서 나서지 않는 편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일과 직업에의 간섭 행위는 없어요. 영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왼쪽부터) I_m the Light, Flexible LED, Computer, 3D Facial structure, 2009 / Water Mask, LCD Panel, water mask, 38×22cm, 2018
(왼쪽부터) I_m the Light, Flexible LED, Computer, 3D Facial structure, 2009 / Water Mask, LCD Panel, water mask, 38×22cm, 2018

낯선 환경과 전혀 다른 문화에서 지내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잖아요. 유학생활이 길었던 만큼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 유학했습니다. 그 당시를 알기에 지금 세계 어디든 한류의 바람이 부는 걸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운 때가 있어요. 제가 있을 당시에는 아시아 사람들을 다 비슷하게 봤거든요. 또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무척 약했고요.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돼서야 서울올림픽을 지났고, 한국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프랑스 문화부에서 병기고로 사용하던 공간을 한국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줬습니다. ‘이시레 물리노’라는 파리 남서부의 도시였는데 그 공간을 꾸미기 위해 ‘파리 소나무 협회’가 결성됐어요. 

권순철, 정재규, 이영배, 곽수영 등의 선배들과 초창기 멤버로 지낸 시절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즐거운 추억들이고 그 건물이 철거된 이후 지금까지도 ‘파리 소나무 협회’는 유지돼 오고 있죠. 파리국립학교에서 선정하는 개인전 지원 작가로 선정돼 멀티미디어 전시를 했었는데 그때의 선배 작가들의 칭찬과 격려가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주고 있습니다. ‘르 피가로’지에 제 작품이 소개됐을 때, 국가 아뜰리에를 받았을 때, 큰 전시회들에 참가했을 때, 작가들이 얻는 동질의 기쁨을 느끼면서 행복했습니다. 

 

프랑스 작가나 단체들과 꾸준히 협업해온 이유가 있었네요. 혹시 올해 준비하고 있는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하하. 지금 벌이고 있는 전시들이 있는데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네요. 저와 비슷한 환경(지질학을 전공하다가 예술을 시작한)의 동갑내기 프랑스 작가가 있는데, 파리국립학교를 같은 시기에 졸업했습니다. 같이 우수 졸업생 전시도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어요.(웃음) 그러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친해졌는데, 파리 8대학 미디어아트 학과장 교수가 됐어요. 저도 교직 생활을 하고 있어서 교류할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고요.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이 대부분 프랑스에서 각광받는 작가들이 됐어요. 한국에서 전시도 많이 하게 되면서 교류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과 프랑스 교류전을 기획하면서 접촉했던 미술관과도 교류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설명이 조금 부족했겠지만 좋은 일들을 기획 중이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프랑스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의 활동도 눈에 띄어요. 요즘 중국 아티스트들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주목받고 있잖아요. 국내 아티스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큐레이터를 알게 되면서 중국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작가도 우리의 30배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작품이 눈에 띄려면 스케일이 엄청나거나 주제가 아주 강렬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주목받고 나면 작품성은 더 발전하기 마련이니 긍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활동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중국 작가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작가와 교류하고 있지만, 왕칭송(Wang Qingsong, 王慶松) 작가와 특히 자주 연락합니다. 왕칭송 작가가 저보다 어린데, 처음 만났을 때는 특유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어요.(웃음) 처음 작품 설명을 듣는데 그의 작품이 엄청나게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어요. ‘엄청난 제작 규모가 작품을 황홀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주제 자체가 본인의 인생역정에서 배어 나온 심리 상태입니다. 거기에 종교적, 사회적 이슈까지 잘 표현돼 있어요.

사진을 촬영할 때, 스튜디오의 크기가 대형 공장 수준입니다. 포크레인이 들어가 지형 작업을 하는 정도니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시죠? 모델은 200명가량, 촬영 어시스턴트만 20명입니다. 촬영기간이 2주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럴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아까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왕칭송 작가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게 정말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한국 작가들의 탁월함을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회화, 공예에서 미디어아트에 이르는 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지금은 엔터테인먼트에서만 한류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미술계에도 한류 바람이 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 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와 신진 갤러리에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예술 작품은 작가의 개입이 강하고 꾸준함이 돋보여야 관객들이 좋아하고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노출하는 것을 제일 우선시 해야 하죠. 저는 작가의 웹사이트 구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카탈로그를 보여줬으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인터넷 덕분에 정말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겁니다. 많은 큐레이터들이 작가를 만나고 발굴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메일로 정보를 주고받는 형태로 작업합니다. 웹사이트가 그 역할을 도와주는 거죠. 큐레이터는 좋은 밥상을 차리기 위해 다양한 반찬들을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간과 양념이 딱 맞는 훌륭한 반찬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내려 합니다. 작가들은 미술관과 큐레이터와 교류해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관계니까요.

기회는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자주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주 놓치는 것이 문젭니다. 자꾸 찾아올 기회를 잡으면 되니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성공한 작가가 돼 있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다 진실합니다. 요즘은 남들과 차별되는 유니크한 미니멀과 팝이 유행하긴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작품의 피니션(finition)이 좋은 작품을 탄생하게 합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진실함으로 작품 제작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그는 종종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스케치했다. 새로운 사실을 들을 땐 눈을 빛낸다. 자주 영감을 받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 ‘톨레랑스’를 지녔다는 그의 말을 실감케 하는 순간들이다. 진실함과 관용을 강조하는 그가 작품 활동만큼 제자양성에도 힘쓰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감사하다. 세계를 오가는 그를 보며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이 더 넓은 무대의 꿈을 꾸고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SIBKOREA 역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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