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태양광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

신성이엔지 이완근 회장.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국내 태양광 산업 1세대인 신성이엔지 이완근 회장은 여든의 나이에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태양광 산업에 뛰어든 13년 전, 그는 그린 뉴딜이 화제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태양광 산업에 발을 내디뎠고, 그린뉴딜이 국정 핵심 기조가 되면서 그의 행보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쉽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이회장은 그동안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않았던 그린 뉴딜에 대한 철학을<스타트업투데이> 독자들에게만 풀어놓았다.

신성이엔지 증평 공장 옥상. (출처: 신성이엔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다


신성이엔지가 올해로 창립 43주년을 맞았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소회가 궁금한데요.

“신성이엔지는 원래 반도체 관련 사업을 했었습니다. 30주년이 되면서 태양광 사업을 하기 시작한 거죠.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것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태양광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더 어려워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 회장은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회고했지만, 태양광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2010년, ▲세계 최초 태양전지 효율 연구기록 19.6% 달성 ▲녹색보증브랜드 선정 ▲녹색기술인증 획득 ▲국무총리 표창과 삼천만 불 수출의 탑 수상 ▲고용 창출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당시만 해도 태양광이라는 키워드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었는데, 산업이 언제 자리를 잡게 됐다고 봅니까?
“태양광 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2007년, 우리나라는 전력 인프라가 탄탄해서 국민들은 태양광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소위 '미래를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태양광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중국이 태양광 시장에 진입하면서 과잉 생산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면서 과잉 공급으로 인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크게 확장됐고, 비로소 산업이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과잉 생산으로 인해 가격 경쟁이 심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는 원자재만 구하면,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태양광 산업에 진출하면서 태양광 시장이 새롭게 재편됐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선파워, 퍼스트솔라와 같은 기업의 성장세가 꺾이고, 중국이 태양광 산업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협력 등을 통해 중국에 대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신성이엔지 분당 본사. (출처: 신성이엔지)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물결, 그린 뉴딜에 몸을 싣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최근 ‘한국판 뉴딜’이 국정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그린 뉴딜’은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왜 이 시대가 ‘그린 뉴딜’을 필요로 한다고 봅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은 기후 변화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전염병이라든지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에 손 놓고 있다 보면 인류가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그린 뉴딜이 힘을 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전 세계가 50년 안에 탄소 제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살아갈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물려주게 될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얘기했듯이 우리나라도 그린 뉴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같은 흐름에 함께하지 않으면, 정부도 기업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1일 열린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 뉴딜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면서 새로운 시장과 산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그린 뉴딜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그린 뉴딜에 주목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예상했습니까?

“기존 산업의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이처럼 속도감 있게 도래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알이백(RE100·Renewable Energy 100%)과 이피백은 (EP100·Energy Productivity 100%)은 크게 확산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알이백은 비영리단체인 기후 그룹(The Climate Group)과 글로벌 환경경영 인증기관인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CDP)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캠페인이다. 이피백은 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의 에너지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이자는 캠페인이다.

 

알이백•이피백 캠페인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요?

“이 캠페인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의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거대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보다 기업에서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죠. 애플, 이케아,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선두로 나서고 있습니다. 보통 알이백을 하면 꼭 이피백을 같이 합니다. 알이백은 귀중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동시에 효율을 높이면서 전력원을 재생 가능한(renewable) 에너지로 100%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피백은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 기존에는 1kg의 원재료로 10개의 제품을 만들었다면, 같은 양의 원재료로 생산량을 10배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11일에는 전라북도 김제시 태양광 모듈 생산에 1차로 122억 원의 투자를 단행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투자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고, 투자를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신성이엔지가 가지고 있는 생산능력(Capa·캐파)이 크지 않다 보니 그동안은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설비 투자를 하더라도 기업 고객이 장비를 구매하면 설비 투자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장 경쟁력이 부족했죠. 그러나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생산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투자를 단행하게 됐습니다. 김제자유무역지역은 건물 임대료가 민간보다 수용하기 쉬운 수준입니다. 또 전라북도 지역에 들어가면 새만금 태양발전광 사업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새만금 지역의 태양발전광 사업은 지역에서 생산된 기자재를 사용하는 업체에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 같은 판로가 존재한다는 점이 이 회장이 투자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이외에 향후 신성이엔지에서 그린 뉴딜과 관련해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요?

“몇 개 지방자치단체, 시·도에 그린 뉴딜 관련 산업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지역 기업과 함께 전략적인 알이백을 진행하면서 독보적인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할 계획입니다.”

신성이엔지 증평 공장. (출처: 신성이엔지)

저탄소 사회를 향한 잰걸음


해외 국가 혹은 기업의 '그린 뉴딜' 관련 정책이나 사업 중, 참고하고 있는 사례가 있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탄소 사회에서는 전 세계가 경제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탄소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2019년,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공저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함께 써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논문에도 이러한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나라에서 탄소세를 부과하면 됩니다. 석탄 발전소를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부과해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재생에너지를 만들면 점차 정유공장이 없어지고, 화석연료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산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올해 6월 10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기후위기 극복-탄소제로 시대를 위한 그린 뉴딜 토론회'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한국에는 전환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은 많은데 한국전력과 같은 에너지 기업이 매우 뒤처져 있고, 여전히 구식 에너지 체제에 묶여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이어 “한국은 화석연료에 많이 의존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한국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렸다. 문재인 정부가 더욱 야심 차게 변화를 추진하도록 밀어붙이고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미래 태양광 산업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가격은 떨어지고 효율은 올라가면서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바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태양광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탄소를 줄이는 일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플라스틱, 비닐, 석유화학 제품의 대안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수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쓰레기와 하수 처리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태양광 산업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고 봅니다.”

 

태양광 산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책이나 보완해야 할 제도가 있다면요?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태양광이나 풍력을 생산하는 산업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국과의 싸움에서 가장 힘든 부분도 이 점입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태양광 기업 설립과 투자 시에 부과하는 세금이 없습니다. 연구 자금도 국비로 지원합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연구 개발 자금을 기업에 직접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장 경쟁에서 자신감을 갖고 생산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신성이엔지 태양광 모듈을 확인 중인 직원. (출처: 신성이엔지)

 


이완근 회장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인 이 회장은 1977년 신 성이엔지를 설립했다. 이후 한국설비기술협회 회장, 한 국공기청정협회 부회장,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한국냉동공조공업협회 회장, 우리기술투자 대표이사 등 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 한국태양광산업협회 회장을 맡아 국내 태양광 산업 발전을 이끌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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