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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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 

애초부터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16.9%나 되는 비정규직을 제로(0)로 만들고 이 흐름을 민간으로 확산시켜 양극화를 해소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었음을 지난 3년간 오히려 90만 3,000명 늘어난 비정규직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지하철, 공항 등 ‘꿈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은 ‘코로나 실업’ 쇼크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준비에 매진하는 ‘IMF(국제통화기금) 키즈’ 취준생들로 하여금 “이게 공정한 나라냐”는 피켓을 들게 만들고 있다. 분노 폭발의 결정적인 계기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1호 사업장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이었다. 

인천공항 사장은 6월 22일 외주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로 바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박수와 환호는 없고, 오히려 정규직•비정규직•취업준비생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절차의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들의 울분은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개시 3일 만에 참여 인원 20만 명을 돌파하는 함성으로 나타났고, 논란은 비정규직 대책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도대체 인천공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의아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공항 이용자는 급감하는데 본사 정규직원(1,400명)보다 많은 대규모 인력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일까? 

전국 14개 공항은 모두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했는데 왜 굳이 인천공항만 보안검색요원을 직접 고용해야만 하는가. 그것도 정규직 노조 주장에 따르면 전문성 저하와 운영 비효율을 이유로 폐지 수순을 밟아왔다고 하는 청원경찰로 바꿔가면서까지 직접 고용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지난 3년간 노사전문가 협의와 법률자문 등을 통해 자회사 정규직 전환으로 가기로 했다가 돌연 5월 20일 청와대 회의 직후 본사 직접고용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정작 청와대와 관계부처, 공사 사장 모두 아니라고 하니 그럼 도대체 누가 결정했다는 말인가? 

정규직 전환을 하는데 왜 대통령 방문일을 기준으로 채용 절차가 달라야만 하는가? 당장 본사에 채용되지 못하는 외주기업 관리직과 시험탈락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 귀착점에는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2017년 5월 12일이 있다. 대통령만 바라보고 청년 구직자와 국민은 배제된 정치적 접근과 속도전이 야기한 인천공항 사태는 ‘반시장적 불공정의 종합판’이다. 시야를 넓혀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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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로’,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결정은 19만 6,000명(목표 대비 95.6%), 전환 완료자는 18만 1,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비정규직은 오히려 2017년 657만 8,000명(32.9%)에서 2019년 748만 1,000명(36.4%)으로 증가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첫째, 편견 오류 

‘비정규직 제로’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가깝다. 비정규직은 ‘악’이고 정규직은 ‘선’이라는 극단적 인식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정규 vs 비정규’의 이분법적 구분은 급속히 유효성을 상실해가고 있으며, 시장경제체제에서 비정규직 제로는 가능하지도 않다. 

사실 국제적으로 통일된 비정규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통상 임시직근로자(temporary worker)를 비정규직으로 파악하는데, 여기에는 기간계약직·파견·계절·호출 근로자가 포함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 포함시키고 있는 시간제나 용역, 특수고용직 등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하는 예는 찾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노동계는 한술 더 떠 사내 하청, 외주협력업체, 자회사도 사실상의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고, 현 정부는 정규직 전환대상에 본사 직원(기간제)이 아닌 파견과 용역근로자도 포함했다. 2019년 8월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중 자발적 선택자가 55.2%에 이른다.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어야 하는 전제부터 흔들린다. 
   
 

둘째, 원인 진단 오류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과 2차 노동시장(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임금, 복리후생, 사회보장 등에 있어서 격차가 크고 중첩돼 있다. 10대 90의 고용구조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고용형태보다도 대중소기업 간 규모의 차이가 더 문제라는 점이다. 특히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과 노사관계(기업별 노조와 교섭체계)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격차가 더 벌어진다. 

즉, 이중구조 문제의 핵심은 고용형태가 아니라 기업 규모라는 것이다. 또한, 경력, 업무난이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총액을 비교하면 노동시간, 근속기간이 짧은 비정규직이 적을 수밖에 없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차별로 몰아가면 이념적 확증 편향에 빠질 수 있다.

 

셋째, 개혁 처방 오류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고 남용을 방지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고용 중립성’이다. 최저임금 과속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비정규직 보호가 오히려 고용을 축소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위적인 숫자 줄이기에만 집착해서 비정규직 사용을 무리하게 억제하고 강제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사용자는 고용 감축, 도급 전환, 해외 도피, 인공지능(AI) 로봇 채용 등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고용 형태만 좇지 말고 최저임금 차등 적용, 사회보험료 할증 등 비정규 고용의 비용을 높이고, 차별 시정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차별 관련 규정들을 모아 고용상 차별금지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 경직성은 놔둔 채 비정규직 제한만 강화하면 취업난은 더 심해지고, 이중구조는 악화된다. 

 

넷째, 정책 집행 오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면 전환 대상 기관(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 일부 민간위탁기관 추가)과 대상 근로자(파견•용역근로자 추가)를 대폭 확대하고, 기준은 대폭 완화했다. 전환 대상 업무의 ‘상시 지속성’은 연중 ‘10~11개월’에서 ‘9개월 이상’으로 줄이고, 예외 사유는 축소했다.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와 정규직 전환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차의 공정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청년 신입 공채는 능력 중심으로 채용한다고 국가직무능력표준, 블라인드 등 좁은 문을 만들어 놓고, 입직 경로도 불투명한 기존 비정규직에 대해선 사실상 무시험 전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과 형평의 원리에 반하고, 아르바이트의 정규직화, 특혜 비리채용 등 논란의 소지를 자초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52명을 뽑는 소방대원 일반직 공채 경쟁률은 11대1, 전라북도 전주시 환경관리원 공채는 52.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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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고용 개선과 청년 일자리 창출, 슬기로운 해법은 없는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실패했고 공정의 촛불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비정규직 사용은 규제를 강화하면서 청년들을 위해서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정원을 확대하면 되지 않을까? 안 된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인건비가 급증하고 이미 주요 공기업은 적자로 돌아섰다. 공공요금 인상 및 세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변화나 개혁 수준이 아니라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정책에 있어서도 문제 인식과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재정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 일자리 문제의 본질부터 풀어야 한다. 왜 청년들이 미래를 던질 만한 일자리가 시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느냐고? 잘못된 정책이 청년들을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으로 만들고 있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전문가들은 귀가 따갑도록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공공부문부터 ‘공정’과 ‘혁신’의 두 바퀴가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공기업에 공정과 혁신이 있는가?

국민에게 요금 폭탄을 안기지 않으려면 공공성 강화라는 허울을 걷고 임금체계 개편과 경영 효율화부터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은 중단하고 공개경쟁원칙을 전면적으로 채택하라. 역동성의 기운이 민간부문으로도 퍼져 나갈 것이다. 경력 가점, 쿼터 등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취업준비생이 윈윈할 수 있는 해법을 찾자.

“청년들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오직 실력과 능력으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맞고요. 이제라도 양심 있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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