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 업종 재지정, 해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정보 비대칭과 시장 불충분

주류 경제학자들은 외부효과, 공공재, 자연독점 등 시장 실패 분야를 제외하곤 시장을 완전무결하다고 가정한다. 인간은 시장거래 시 완전정보하에서 각자 효용의 기대가치를 최대화하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일단의 제도주의 학자들은 인간의 합리성과는 다른 가정을 하면서 인간은 인식론적 한계에 의해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윌리엄슨(Williamson)은 이러한 주장의 대부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자본주의의 경제제도(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에서 한 챕터를 인류학적 접근에 할애하고, 인간행동에 대해 두 가지 행태적 가정을 한다. 하나는 인식론적 능력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행동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인식능력의 한계로 인해 제한된 합리성만을 갖게 되고 사람들은 정보의 비대칭적 분포로 기회주의적 행동을 한다. 사실 아무리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현실적 시장거래에서는 한정된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만 알고 있는 내밀한 정보를 숨기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장거래에서의 의사결정은 이러한 정보의 부족과 비대칭적 정보 분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경우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에서 거래당사자 간 정보격차가 심한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기만적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슨은 이러한 행동을 기회주의적 행동(Opportunistic Behavior)이라고 칭한 바 있다. 골동품, 중고차, 지식서비스 시장 등 정보 격차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에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행동이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과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해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 불충분(market insufficiency)이라는 개념으로 시장 실패(market failure)와 구별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고차 거래와 시장 불충분

정보 비대칭성과 기회주의적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한 시장 불출분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가 중고차 거래 분야다. 일반적으로 신차를 구입해 일정기한 차량을 운행한 후 이를 중고차로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차량의 운행이나 정비 이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반면, 중고차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연식이나 주행거리 등 차량에 관한 일반적 정보는 알 수 있다 해도 거래상대방이 솔직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한 사고나 정비이력 등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중고차 판매 희망자와 구매 희망자 간에는 정보 비대칭성이 크게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차량 판매자라는 거래 일방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신용이 높은 제3자에 의한 정보 제공이나 인증 등 보완장치가 없으면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중고차 거래, 특히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인증거래가 규제되고 있는 한국시장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2019년 발표된 한국경제연구원 중고차시장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중 76.4%가 국내 중고차시장은 불투명하고 혼탁하며 낙후됐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주된 이유는 차량 상태 불량 49.4%, 허위 미끼매물 25.3%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신뢰 부족으로 중고차 시장이 위축돼 있어, 중고차 거래 자체도 쉽지 않다. 구매 희망자는 완전 정보하에서의 시장 가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구매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고, 판매 희망자도 적당한 시장 가격을 받고 차랑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거래시장을 내부시장이라고 정의하고, 불특정 외부 사람들과의 거래시장을 외부시장이라고 한다면, 정보 비대칭성과 그로 인한 기회주의적 행동이 보편화되는 중고차 시장에선 외부시장은 위축되고 내부시장만 활성화된다.

그러나 신용이 높은 제3자가 개입해 거래 시 중고차 상태를 인증해주고, 인증 시점의 차량 상태와 다른 흠결이 발생한 경우 이를 보상해주는 보증이 시행된다면 중고차 외부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

신용이 높은 제3자의 개입으로 구매 희망자는 안심하고 중고차 외부거래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판매 희망자도 제값으로 차량을 판매할 수 있게 되므로 외부거래시장 참여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제3자 개입은 다양한 방법으로 설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인증제도가 보편화되고 있다. 중고차 거래 시 차량 상태를 가장 잘 점검, 평가할 수 있는 제3자는 다름 아닌 처음 신차를 판매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후 일정 기한을 넘지 않은 차량에 대해서는 차량을 다시 구매한 후 차량 상태를 점검하고 일정 수리를 거쳐 새로운 고객에게 판매하면서 차량 상태를 인증해주고 추후 인증 시와는 다른 흠결이 발생한 경우엔 무상 수리나 정비 등을 통해 보상해준다는 보증을 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증제도에 의한 신뢰성 높은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해 선진국의 중고차 시장은 활성화돼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의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에선 신차 대비 중고차 판매량이 약 2~3배에 이른다.

그러나 수입차에 한해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국내 생산 차량에 대해서는 완성차 업체의 인증제도 시행이 불가능한 국내에선 신차 대비 중고차 판매량이 1.2배 수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중고차의 경우 외부시장이 위축돼 있고, 거래를 내부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외부시장 구조도 다층적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중고차 판매 업체뿐만 아니라 대량 매각 알선 업체, 중고차 이력 정보 제공 업체, 잔가·시세 정보 제공 업체, 재고와 고객 관리 등 통합 솔루션 업체, 시험·인증 전문기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업이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증제도 도입으로 시장 활성화해야

자동차는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고가의 자산으로, 소비자 피해 발생 시 손해 규모가 막대해 제조사의 책임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자율주행차, 전기차, 수소차 등의 보급이 확대되는 경우 이들에 대한 성능과 품질 보장, A/S 등의 요구가 커질 것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참여해 체계적이고 선진화된 인증 관리를 통해 안전하고 품질 좋은 잔존가치를 보장받은 중고차를 제공할 필요가 커진다는 것이다. 중고차 거래시장에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의 완성차 업체들이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선 중고차 거래가 지난 몇 년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고차 거래에서 나타나는 정보 비대칭성과 기회주의적 행동에 의한 시장 불충분성을 보완하기 위해선 완성차 업체의 인증제도를 통한 시장 참여가 시급하다. 중고차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성을 보완함으로써 중고차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장 보완이 우리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한국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 간 중고차 가격 변화에 큰 차이가 없고, 차종에 따라선 한국 브랜드 가격이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2017년식 아반떼의 2020년 평균 가격 하락률과 같은 기간 독일 폭스바겐 제타(Jetta)의 평균 가격 하락률은 모두 34.8%로 같은 수준이었다. 또 2017년식 쏘나타의 2020년 평균 가격 하락률은 43.3%였고, 동 기간 폭스바겐 파사트(Passat)의 평균 가격 하락률은 43.9%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경우엔 2017년식 현대 투싼(Tucson)의 2020년 평균 가격은 37.7% 감소에 그쳤으나, 2017년식 폭스바겐 티구안(Tiguan)의 2020년 가격은 평균 47.5%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 싼타페(Santa Fe)와 독일 폭스바겐 투아랙(Touareg)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미국에선 중고차 시장 진입 규제가 없어, 현대기아차도 높은 품질과 안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중고차가 제대로 된 가격을 받게 되면, 신차 경쟁력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는 신차 구입 시 나중의 중고차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거래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국산 중고차 가격은 외국 브랜드 가격 대비 더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의 2017년식 제네시스 G80의 2020년 가격은 30.7% 떨어진 반면, 동급 벤츠E클래스 W213은 27.2%, 벤츠 GLC는 20.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식 현대 쏘나타의 가격은 2020년에 51.7%나 떨어진 반면, 벤츠 A클래스는 39.0%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BMW 등 다른 유럽 차종들과 우리 차종들을 비교해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시장과 국내시장의 3년 경과 중고차 하락율 비교
미국시장과 국내시장의 3년 경과 중고차 하락율 비교

정부는 현재 중고차 거래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 재지정 여부를 놓고 검토 중이다. 재지정된다면 소수의 중고차 거래상들은 분명히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완성차 업체들이 인증제도 운영을 통한 시장 진입이 어려워, 중고차 거래상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일종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보가 없는 구매자보다 정보가 많은 중고차 판매상을 보호하게 되면서 중고차 판매상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촉진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도 않고, 중고차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면서 전 세계 유례 없는 이러한 규제는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