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위 채용의 자유는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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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처방한 경제 모르핀의 약발이 떨어지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한때 잡히는 듯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다시 확산되면서 경제가 멈춰 서고 있다.

재난지원금 효과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해고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고용유지지원금도 끊겨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대급 장마와 초대형 태풍이 연이어 강타하면서 우리 경제가 실신 위기에 몰리고 있다. 방역 강화와 경제 파탄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은 결국 치료제와 백신이다. 가히 ‘코로나 세계대전’이라 할 만큼 개발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을 앞서고 싶은 러시아는 임상 절차를 생략하고 ‘스푸트니크 V(Sputnik V)’ 생산에 들어갔고,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도 지난 7월 임상시험 중인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임상 마지막 단계인 3상을 진행하는 글로벌 제약사는 여섯 곳이다. 올해나 내년 상반기 공급을 목표로 뛰고 있다.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제약사도 연내 치료제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대량생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선진국들이 입도선매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로 얽히고설킨 오늘날, 나 혼자 살겠다고 몸부림 쳐도 완벽한 종식은 불가능할 것이다. 코로나19와의 동행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있다.

방역에 모범을 보인 우리나라도 결국 전례 없는 4차 추경까지 동원하지만 경제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관건은 코로나19 재확산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이다. 8월 27일 한국은행은 재확산이 올겨울까지 이어지면 성장률이 -2.2%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때는 1980년(-1.6%)과 1998년(-5.1%) 두 해가 전부다.

한편,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과거 5년(2014~2019년)간 발생했던 경제 충격에 비해 코로나19가 노동 수요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5.2배, 노동 공급은 2.2배 크다는 한국은행 관계자의 분석도 제시됐다.

특히, 주로 대면 접촉을 통해 서비스나 제품을 공급하는 서비스업 일자리는 코로나19 이전의 고용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 제조업의 2배인 10개월이 걸린다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그간 추경까지 동원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며 해고를 막아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신음이 시장에 가득한데, 고용유지지원금은 끊기고 때 이른 찬바람만 몰아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대량실업의 고통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잔인한 겨울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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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금지법이 우리 일자리를 지켜줄까?

“6개월간 모든 해고가 금지되고 부당 해고를 하면 퇴직금을 두 배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해고금지법이 의결됐다.” 2016년 5월 20일 연합뉴스가 전한 아르헨티나 하원의 이야기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이 법안이 고용창출을 막을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지난 4월, 양대 노총은 "총고용 보장 원칙하에 노동자에 대한 절대해고금지 기간을 국회가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총고용 유지를 위한 기금 조성과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보장할 것도 요구목록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적기에 구조조정을 못 하다 파산하면 결국 모든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기존 근로자들은 `철밥통`을 쥐게 되고 청년들의 신규 취업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지원받는 기업들에게 상응하는 의무로 고용 총량 유지와 자구 노력 등을 부과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허나 정작 ‘코로나 실업’과 싸우는 현장에서 대량실업을 막는 선봉장 역할을 해낸 것은 노사가 낸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한 고용유지지원금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9월 1일 기준, ‘고용유지조치계획’을 신고한 사업장은 7만 8,771개소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 현장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초기에는 중소기업이 주를 이뤘으나, 요즘에는 대기업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봐도 10인 미만이 6만 703개소로 가장 많지만, 10~29인 1만 2,978개소, 30~99인 3,925개소, 100~299인 887개소에 300인 이상도 278개소에 달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재고량 증가, 생산량·매출액 감소 등 일시적 경영난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주가 전체 근로시간의 20%를 초과해 휴업을 실시하거나 1개월 이상 휴직을 실시하는 등 고용유지조치를 하는 경우, 사업주가 지급한 인건비의 67~75%(1일 상한액 6만 6천 원, 연 180일 이내)를 지원하는 제도다.

코로나19 대응조치로 4월부터 모든 업종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유급휴직수당을 최대 198만 원 범위에서 90%까지 3개월 한시적으로 지원했고, 7월 3차 추경으로 90% 지원을 9월까지 3개월 연장한 데 이어 일반업종 특례기간 연장도 추진된다.

문제는 코로나19는 계속되는데 지원금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정부가 여행업, 관광운송업(항공, 해운, 전세버스), 관광숙박업 등 8개 업종에 대해선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기간을 2021년 3월 말까지로 연장하고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기간도 기존의 180일에서 240일로 연장했지만, 하청업체는 제외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재확산의 충격은 전 업종의 모든 사업체로 퍼져가고 있다. 10월부터는 휴직자가 게티이미지뱅크실업자로 전환되고,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도 증가할 것이다. 일반업종을 240일로 연장해도 연말이면 끝난다.

그렇다면, 해고를 법으로 금지하면 어떨까? 지금도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제23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과 대상자 선정, 근로자대표와의 성실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정리해고를 금지하고 있다(제24조). 정리해고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안도 제출된 바 있다. 이처럼 중증으로 병을 키우듯 시간을 늦출 수는 있지만, 결국 해법은 경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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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가

노동법개론 강의노트 ‘노동관계의 성립’편을 펼쳐본다. 노동관계의 성립에 있어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는 계약체결의 자유를 가진다. 근로자에게는 강제노동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사용자에게는 채용의 자유를 의미한다.

기업의 채용행위는 사법의 기본원리인 계약의 자유로 보장되는 행위로, 채용의 자유는 ① 채용 인원수 결정의 자유, ② 모집방법의 자유, ③ 채용기준 선택의 자유, ④ 계약체결의 자유, ⑤ 조사의 자유를 포함한다. 법 원칙이 이러함에도 사용자들은 채용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채용절차규제법, 블라인드 면접,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외주고용 규제, 불법파견 판정, 고용 확대 압력 등 채용의 자유를 억압하는 입법과 정책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채용의 자유는 언감생심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막상 필요한 인재는 하늘의 별처럼 구하기가 어렵다. 끊임없이 강화되는 노동조합의 요구와 개입도 부담이다. 2016년 고용노동부가 100인 이상 사업장 2,769개소의 단체협약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조합원 특별채용을 명시한 단체협약이 694개,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제약하는 단체협약은 368개였다.

이와 관련해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단체협약은 대부분 시정됐으나, 인사경영권 관련 조항을 개선한 곳은 20% 미만에 그쳤다.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니 경영계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게다가 조만간 아예 이사회에 노조 대표가 참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대법원이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새로운 논란을 야기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현대·기아차의 단체협약이 법에 위반하지 않는다며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대법원 2020.8.27, 2016다248998).

이 판결이 나오자 일각에서는 조합원 자녀 우선·특별채용 규정을 둔 단체협약을 시정토록 한 고용노동부의 조치가 부당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자칫 노조의 인사 개입이 거세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의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다른 것’이며, ‘그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다면 그 효력에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조합원의 직계가족 등을 채용하는 조항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해 이 사건 판결을 확대 해석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있다. 다만, 이 사건 단체협약의 적법성 판단 근거로 협약자치를 들고 있는데 통상임금 판결에서 협약자치를 부정한 것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헌법」 제32조제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이어서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밝히고 있고, 제4항과 제5항은 여자와 연소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규정하고, 제6항은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헌법이 명하고 있는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지난해 6~7월 1백만 명을 돌파했던 실업자 수가 올해 들어 줄곧 12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 2/4분기 기준 전체 실업자 중 대졸 이상 20·30대가 가장 많은 30%(371천 명)를 차지하고 있는 것, 15~29세 확장실업률이 25~26%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 등을 모두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기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악화된 고용지표가 너무나 뚜렷하고 일관된다.

이른바 ‘컨트롤타워’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한쪽에서는 노동규제와 비용인상으로 기업으로 하여금 고용에 소극적이게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자재정을 동원해 각종 수당과 보조금을 쏟아 부어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니 말이다.

아침에 잠을 깨기 위해 모닝커피를 블랙으로 마시고, 밤에는 잠을 청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 것과 같다. 전형적인 ‘중독의 순환’이다. 경제 주체와 시장은 보이지 않고 적자재정이라는 낡은 갑옷에 규제와 감시의 칼을 들고 나선 정부만 두드러진다.

원조인 미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뉴딜(New Deal)이 우리나라에서는 청년·디지털·그린 뉴딜 등으로 변주되며, 정부 재정은 확대일로다. 한국판 뉴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25년까지 총 114조 원 규모의 예산이 동원된다.

2021년에만 21조 3,000억 원(디지털 뉴딜 7조 9,000억 원, 그린 뉴딜 8조 원, 안전망 강화 5조 4천억 원)을 투입해 일자리 36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한편, 200만 개 이상 일자리를 지키고 창출하겠다는 일자리 예산은 8조 6,382억 원, 지역사랑상품권과 소비쿠폰 등에 쓰이는 돈은 무려 1조8,177억 원에 달한다. 시중의 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 투자 활성화 방안이 해법일 터인데, 규제를 강화하면서 재정투입을 늘리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일자리 관련 예산은 2017년 15조 9천억 원, 2018년 18조 원, 2019년 21조 3천억 원, 2020년 추경 포함 27조 4천억 원으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일자리 상황은 악화일로다. 취업자는 되려 감소하고, 100만 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200만 명 이상은 일거리가 없어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쉬고 있다. 지금까지 해 온 방법으로는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누리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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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패러다임,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서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일거리가 사라지고 일터가 무너지는데 해고금지법이 일자리를 지켜줄 리는 만무하고, 빚을 내서 재정을 살포하는 것도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정책의 패러다임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 대증요법식 현금 투입은 더 큰 위기에 대응할 역량을 소진할 뿐이다. 결국 기댈 것은 노사의 고통 분담, 시장의 부활과 국가 혁신이다. 독일은 ‘코로나19 대책 특별법’을 제정해 취업자의 기본생활보장 완화, 한시적 근로시간 탄력화, 사회보험료 부담 경감 등을 통해 기업의 위기관리능력을 제고하는 한편, 휴업수당액 증액, 구직급여기간 연장 등 사회적 보호조치를 강화했다.

우리는 거꾸로 국민의 경제활동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강화하고,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잇따르고 있다. 세금, 보험료, 공공요금도 줄줄이 인상 대기 중이다. 위기 속에서도 기조 전환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으니 ‘코로나블루’에 한가위 달빛마저 우울하다. 이제라도 변해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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