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실행력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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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스타트업'이란

필자의 회사는 이제 창업 6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지속 성장을 하고 있다.

요즘 현장 창업 경험들을 소개하는 자리나 특강을 나가다 보면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운영 중인 후배 창업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스타트업 업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이 무엇이었나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스타트업 성공의 중요 요소는 바로 지체 없이 판단해서 내리는 결정, 즉 빠른 실행력이라고. 스타트업 특성상, 린하지 않으면 이미 스타트업이라 말할 수 없다.

‘군살을 뺀, 날렵한’이라는 뜻의 ‘린(lean)’을 스타트업에 접목한 린 스타트업이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만들어서 시장에서 테스트하고 반응을 본 후 제품을 혁신하는 경영 전략의 하나다.

한마디로 조직이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면서 성공의 길에 다다르게 하는 전략 방식이다. 린스타트업에 커플처럼 따라다니는 용어가 바로 ‘피버팅’이다.

피벗이란 제품의 시장 적합도를 맞춰 보는 과정에서 반응이 없는 경우, 새로운 고객과 수익성을 위해 서비스나 제품 혹은 사업 모델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초창기(처음) 세웠던 사업 아이템의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 때, 과감하게 다른 아이템이나 비즈니스모델로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판단과 결정이 늦어지면 자금력과 제반 리소스가 ‘빵빵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생존 자체를 할 수 없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무기는 대기업이나 기존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의사결정, 추진력이다. 몸집이 가볍기 때문에 빨리 실행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으며, 방향 전환도 쉽다.

대기업이 가질 수 없는 이 강력한 한 방 ‘린한 실행력’이야말로 스타트업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빠른 실행력은 창업자의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다. 나이가 많더라도 도전적이고 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나이가 젊은데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머뭇머뭇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

되돌아보건대 필자는 시행착오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실행력의 유전자(DNA)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필자는 창업 이전 회사를 네 차례 이직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똑같은 아이템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 뻔한 일을 이어 하는 것을 싫어했었다.

좋게 표현하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의지가 충만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첫 직장으로 의류 섬유회사에 입사해서 원단도 나르고, 재단도 배우고, 의류검사를 하고 외국 바이어에게 발송하는 것까지 의류업계 바닥과 상위의 일까지 마다치 않고 했었다.

그때의 입사 동기들은 의류업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의류 패션업계의 주축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 반면, 나는 그들과 180도 전혀 다른 정보기술(IT) 업종으로 도전하게 됐다.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변신. 무선호출사업이 시작된 원년, 이동통신 마케팅회사에 공개 지원해 운 좋게 합격했다. 첫 직장과는 완전 딴판인 업무를 맡게 됐다.

의류제조업에서 정보기술 서비스 마케팅으로의 전환은 사실 쉽지 않은 이직이었다. 기존에 배운 업무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세상의 핵심이 되는 정보기술 업계로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당시 의류는 3D 업종 중의 하나였고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 사양 산업이었다.

어떤 일들이 세상을 바꾸게 할 수 있을까 수많은 날을 고민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빠르게 적응을 하고 마케팅 부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펼치면서 대리점 유치 1등, 그리고 입사 이듬해에는 회사 내에서 추진한 아이디어 공모 최다제안상까지 수상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이 습관화가 된 아이디어 뱅크였다. 그때 제안한 각종 아이디어 제안서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다시 펼쳐 보면 스스로 봐도 신박한 아이디어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 지난 시절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마 이런 습성과 도전정신이 지금 스타트업을 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도전의 깃발을 잡다

그렇게 이동통신 분야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다가 동료들은 무선 이동통신업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고집스러운 의리를 지키다가 법조계의 혁신을 꿈꾸는 변호사를 만나 공동 창업(법률 특화 인터넷 플랫폼사업)의 길을 걷게 됐다. 법과는 전혀 무관하고 사실상 문외한이었던 필자가 손을 내민 공동 창업자의 두 마디에 함께하기를 약속하고 말았다.

“법률 시장이 조만간 개방됩니다. 그리고 변호사 수도 대폭 늘어납니다. 이제는 공급자가 늘어나면 수요자에게 편익을 주는 법률 서비스가 필요하고, 국민에게 법률 문턱을 낮추고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이 의미 있는 일에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리 오랜 생각과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그 변호사와 만나기 전 필자는 이미 국내 대형 통신사업자 특수 영업팀장으로 선발내정돼 있었다.

하지만 안정보다는 새로운 도전의 깃발을 잡았다. 딱 하루 정도 고민하고 바로 합류하기로 하고 인터넷 법률 사이트를 국내 최초의 사이버로펌 로마켓(law Market)을 창업하게 됐다.

그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과 주목을 받았다. 변호사 역경매, 법률도우미라는 실로 기득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신개념 법률 비즈니스를 개시하게 됐고, 당시 신문 사회면이나 공중파 방송 메인 뉴스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기존의 법률업계는 물론 사회를 놀라게 했다. 2000년 초반의 일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 로펌을 만들어 회원변호사를 모으고. 법률포탈을 만들어 각종의 법조문과 사례 등을 집대성했다. 한마디로 이미 그 당시 플랫폼 비지니스를 실행하고 사업화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법률서비스는 변호사법 위반 등 여러 가지 법과 규제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아마 지금 이 사업이 만들어졌으면 규제박스에서 탈피하고 패스트트랙을 타면서 흥미로운 사업이 됐을 것이다.

 

과감한 실행력으로

그 야심 찬 도전이 실패로 돌아선 이후 차세대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옮기면서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NGN) 장비를 텔코(통신사업자)에게 마케팅과 세일즈를 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러다 안정된 직장을 자천타천 그만두고 50대에 비주얼캠프의 창업을 하게 된 것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창업 이후 데스밸리를 넘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생존 비결은 바로 피버팅이었다. 우리는 창업 후 세 번의 피버팅을 단행했다. 세상과 환경이 변화면 사업의 유형도 생물처럼 바뀌고 적응해야만 한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피버팅을 구상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우리의 기술도 사업도 변화무쌍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도전이었지만, 빠른 실행력으로 움직였기에 피벗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인생도 창업도 린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은 린해야만 거대 공룡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가벼운 몸짓으로 스마트하고, 신속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생존 가능하다.

차라리 실패를 하더라도 우선 시도하고 행동하면서 빠른 길을 가는 것이 무조건 옳다. 실패나 실수를 빨리 인지하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므로.

오늘도 나는 “무엇에 실패해볼까?” 재밌는 고민 중이다.

 


비주얼캠프 박재승 대표
비주얼캠프 박재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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