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현상’ 먼저 이해할 것”

[스타트업투데이] 콘텐츠 시장은 재미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잡을 수 있기에 매력적이지만, 망하게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무서운 곳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이 바나나 농사 짓기 좋고, 브라질이 철광석 수출하기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콘텐츠로 사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습니다. 왜 우리나라 입장에서 물 반 고기 반이라 볼 수 있는지, 그 인과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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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이미지(사진=넷플릭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글로벌 랭킹

7월 30일 기준 플릭스패트롤에 의하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넷플릭스 시리즈 랭킹 기준 종합 4위다. 이 드라마가 1위를 하는 나라는 방글라데시,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몰디브, 오만, 필리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대만, 태국, 아랍에미레이트, 베트남이다. 할리우드에서 콘텐츠로 활약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인데, 그들이 콘텐츠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도 10위를 차지한다.  

이를 테면 일본 사람들이 <레지던트 이블>,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할리우드 드라마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더 재미있게 보는 상황이다. 같은 날 기준 일본 넷플릭스의 드라마 랭킹을 보면, 10개 중 미드 <기묘한 이야기>,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패밀리>를 제외한 8개가 한국 드라마다. 

 

일본의 7월 30일 기준 넷플릭스 드라마 랭킹. ‘록뽕기 클라쓰’는 ‘이태원 클라쓰’ 대본을 각색해 제작한 일본 드라마다.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신작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패밀리’를 앞서고, 일본 배우를 써서 새로 제작한 ’록뽕기 클라쓰’보다, 자막을 읽으며 봐야 하는 ‘이태원 클라쓰’가 더 인기 좋은 상황이다(출처=플리스패트롤)
일본의 7월 30일 기준 넷플릭스 드라마 랭킹. ‘록뽕기 클라쓰’는 ‘이태원 클라쓰’ 대본을 각색해 제작한 일본 드라마다.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신작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패밀리’를 앞서고, 일본 배우를 써서 새로 제작한 ’록뽕기 클라쓰’보다, 자막을 읽으며 봐야 하는 ‘이태원 클라쓰’가 더 인기 좋은 상황이다(출처=플리스패트롤)

 

이 현상을 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하나?

드라마 제작사 에이스토리나, 이걸 기획한 채널 ENA를 축하해줄 수도 있는 일이겠으나, 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인가. 이 설명을 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왜 드라마를 보는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하다. 

드라마가 성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 있기 때문’이다. 즉, 극 중 우영우 캐릭터가 매력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해해야 할 개념은 캐릭터라는 현상이다. 

배우 박은빈과 캐릭터 우영우는 다르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영우’라는 사람은 실은 작가가 상상한 캐릭터이고, 감독의 연출을 거쳐 박은빈이라는 배우가 표현한 ‘가상의 인물’이다. 드라마 제작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우영우 캐릭터는 우리 상상력 속에 있는 사람이고, 박은빈은 연기 잘하고 외모가 매력적인 배우라는 것을 알고, 둘이 별개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제작과정을 아는 사람들도 은연중에 박은빈 배우가 ‘정직하고 순수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캐릭터라는 현상은 본래 문학 용어다. 사기꾼이 사람을 속일 때 쓰는 바로 그 기술을 써서 잠시 독자를 속이는 기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 듯한 착각을 만드는 기술이고, 이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을 캐릭터라고 한다. 이 기술은 사람의 약점 내지는 특성을 이용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은 습관적으로 그 사람의 한 두 가지 행동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 그리고 대개 그 판단은 맞아떨어지고, 그 판단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일은 별로 벌어지지 않는다. 사기나 드라마 같은 특수한 상황을 설명할 때 외에는. 

인간의 그런 특성을 이용하는 일은 그 외에도 많이 있다. 이를테면 변호사나 컨설팅 회사 등도 그러하다. 양복을 입고, 명문대 졸업장을 보여주고, 인테리어가 그럴싸한 사무실을 보여주면, 보통 사람들은 그가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런 식의 꾸밈, 데코레이션은 속이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쉽고 빠르게 설득하는 기술이라 보는 편이 알맞을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의 이런 특성을 대략 알고 있다. 작가나 사기꾼은 좀 더 이 기술을 정교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라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 포스터(사진=JTBC)
이태원 클라쓰 포스터(사진=JTBC)

 

우리의 기억에서 드라마의 캐릭터가 저장되는 부분은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가 저장되는 바로 그곳이다. 공연장에서 마이클 잭슨을 보고 기절하는 여자들, 욘사마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남이섬을 찾던 일본 아줌마들, BTS를 위해 단결하고 행동하는 아미들은 마이클 잭슨, 욘사마, BTS가 자신의 친구, 또는 연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 기억이 그렇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좋은 사람하고 사귀고 싶고, 같이 지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 중에 마음이 맞는 일부의 사람들하고만 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비슷한 일이 드라마라는 비즈니스에서도 벌어진다. 시청자는 여러 드라마 중에서 가장 캐릭터가 매력적인 드라마를 고르게 되고, 때로는 본방사수도 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일본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는 모든 사람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넷플릭스 드라마 랭킹을 달리 보자면, 매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올림픽인데,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기에서는 우리나라 드라마 8개가 10위권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능이 뛰어난 일본인 작가와 감독들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경주에서 몇 년 된 우리나라 작품에 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본을 예로 들었는데, 글로벌한 기준으로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는 가장 매력적이다.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이나, 셰익스피어의 후예인 영국보다도 뛰어나다. 산업적으로 보자면,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콘텐츠 스타트업이 글로벌한 기준에서 우월한 여건이라는 뜻이다. 바나나 농사의 필리핀, 철광석 수출의 브라질처럼 말이다. 이게 왜 자랑스러운 일인지, 이게 왜 브라질의 철광석이나 필리핀의 바나나 같은 것인지는 다음 칼럼에서 계속 이어나가기로 한다. 

 

신봉철은 1995년부터 2017년까지 SBS에서 기획 PD로 근무했다. 기획한 작품은  <별에서 온 그대> <추적자> <너의 목소리가 들려> <생활의 달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이고, 우리나라 콘텐츠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20년간 콘텐츠들이 승부하고 플랫폼이 변화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현재는 영화 감독으로서, <달밤체조 2015>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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