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가수 방실이가 부른 <서울 탱고>라는 유행가 가사에 내 나이 묻지 마세요라는 귀절이 있다. 제발 이제 만나자마자 다른 사람의 나이 묻는 것은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 창직을 하려는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든지 만나면 먼저 나이부터 물어보는 아주 희한한 전통이 있다.

그 이유는 유교사상이 몸에 배어 상대의 나이를 알아야 존대할지 하대할지를 결정한다. 일단 상대방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자기 자신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묘한 심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관습이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소위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묻는 순간 자신이 꼰대가 되어 버린다. 그것조차 버릇 없다고 말하면 더 이상 대화는 없다. 말 상대조차 하지 않고 외면한다. 이렇게 되면 누가 과연 손해를 볼까?

창직을 하는데 나이가 젊은게 좋을까 아니면 나이가 지긋한게 좋을까? 당연하지만 정답은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깨어 있으면 된다. 깨어 있다는 뜻은 사고가 열려 있다는 말이다. 편협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나 새로운 변화가 불어 닥쳐도 거뜬히 이해하려고 애쓰고 배우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나이라는 걸림돌은 외부로부터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나이라는 장애물을 만들기도 한다.

나이가 아직 어린데 가능할까 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을 꺼야 라고 미리 단정지어 버린다. 이런 사례를 필자는 너무나 많이 보고 경험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나이에 연연하는가? 안타깝기만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짐짓 나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이다.

나이로 따져 형, 아우, 언니, 동생 맺는 방법이 겉으로는 다정하고 좋게 보이긴 하지만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에는 커다란 장벽이 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려 하다가도 상대방의 나이가 자신보다 많으면 대화를 회피하거나 변죽만 울리게 되어 본질을 파고 들지 못한다. 유교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긴 했지만 중국에서 40년 이상 살다가 우리나라에 결혼하며 건너 온 친척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중국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깎듯이 예의를 차리는 겸손함이 때로는 올무가 되어 정작 중요한 협상에 실패하거나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특히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는 창직자에게는 나이로 인한 부담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나이를 묻지 말자. 지금도 가끔 필자에게 나이를 물어오는 분에게 상대의 나이를 짐작하여 40세는 넘었고 아직 80세는 되지 않았다고 농담조로 대답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데는 다를 수 없다. 또한 상대가 나이가 어려도 배울 점이 많다면 두 손 들고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필자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린 사부님을 여러분 모시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 필자보다 한 수 위이면 기꺼이 사부님으로 모신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필자가 사부님이라고 그를 부르는 순간 돌아오는 혜택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크다. 이것이 비결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나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상대가 누구이든 인간 대 인간으로 진솔하게 대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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