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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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도ㆍ소매업과 같은 유통업을 영위하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이 상품을 한국에서 팔아도 문제될 것이 없는지 종종 물어본다. 속지주의 원칙상 국내와 해외의 상표권은 분리되므로 국내에서 상표나 특허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 해외에서 구매한 상품을 한국에서 유통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상품의 상표가 국내에서 상표권으로서 등록되어 있는 경우에는 상표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내와 해외의 상표권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상품을 들여오는 것은 상표권의 침해를 구성할 수 있다. 국내 상표권이 해외 브랜드를 카피한 경우라면 무효사유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므로 무효심판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국내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경우라면 불사용 취소심판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예외로서 국내외 상표권자가 다르다 하더라도 국내 상표권자가 해외 상표권자로부터 물건을 공급받는 경우라면 수입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국내 상표권자의 동의 없이 국내로 해당 상품을 들여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와 해외의 상표권자가 같은 경우에는 과연 제3자가 1국에서 상표권자가 판매한 상품을 상표권자의허락없이 2국에서 판매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즉, 병행수입이 상표법상 허용되는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권리소진이론 

권리소진이론이란 지식재산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자가 상품을 판매하게 되면 상품에 화체된 지식재산권은 그 역할을 다하여 소진되고, 차후 판매하는 사람에게 침해를 물을 수 없다고 하는 이론이다. 즉, 권리자가 상품을 한번 팔아 이득을 얻었으면 이중 삼중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중고 물품의 판매는 상표권 침해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가품의 경우에는 권리소진이론이 적용되지 않음을 주의하여야 한다. 

기존의 권리소진이론은 같은 국가 내에서 적용되는 것이었는데, 병행수입과 같이 국제적인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소진이론이 적용 될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어왔다. 나라마다 다르게 가격을 정하여 판매하는 것이 상표권자의 의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제3자가 가격이 싼 국가에서 사서 비싼 국가에다가 저렴하게 팔게 되면 상표권자의 이익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다. 

 

병행수입의 허용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상표법상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판례는 “병행수입 그 자체는 위법성이 없는 정당한 행위로서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으므로 병행수입업자가 상표권자의 상표가 부착된 상태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당연히 허용된다”(대법원 2002.9.24 선고 99다 42322)고 하여 병행수입 자체는 침해가 아니며, 정당하게 병행수입된 상품에 원래의 상표를 부착하여 판매하는 것 또한 침해가 아니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상품을 판매하는 주체가 보증되고, 원래의 상품과 품질 차이가 없는 경우라면 상표의 출처표시기능과 품질표시기능이 보증되므로 침해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상표권의 본래의 취지인 상품의 출처가 누구인지를 적합하게 표시하고 상표가 부착된 상품의 품질이 보증되는지가 훼손되지 않는 경우라면 병행수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표의 출처표시기능과 품질 표시기능이 보증되지 않는 경우라면 병행수입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병행수입의 요건에 대해서 살펴보자. 

병행수입의 요건 

상표법상 병행수입이 허용되는 경우는 다음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1) 상품이 외국에서 적법하게 유통된 진정상품 일 것 

1국에서 상표권자 또는 상표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진 자로부터 구매한 상품이 아니라면 병행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권리소진이 발생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상품은 진정상품이어야 하며, 모조품인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2) 국내외 상표권자가 동일하거나 법률적, 경제적 밀접한 관계에 있을 것 

국내외에서 상표권자가 서로 동일한 경우에는 병행수입이 허용된다. 국내외 상표권자가 다르더라도 국내 상표권자가 외국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입 판매하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국내상표권자가 해당 상품을 국내에서 적법하게 전량 제조하거나 해외에서 OEM 방식으로 제조하여 수입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상표권이 없는 자가 해당 상표를 적법하게 사용할 권리를 가진 자에 의해 생산된 물품을 국내에 수입하더라도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국내외 상표권자가 다르더라도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법률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면 병행수입이 허용될 것이다. 

(3) 국내에 독자적인 신용을 형성한 전용사용권자가 없을 것 

국내에 해당 상표에 대한 전용사용권자가 있더라도 원칙적으로는 병행수입을 막기 어렵다. 하지만, 전용사용권자가 상표권자로부터 물건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 또는 해외로부터 해당 상품을 OEM으로 조달하거나 직접 생산하는 등 독자적인 신용을 형성함으로써 전용사용권자를 별도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병행수입은 금지된다. 

(4) 국내외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품질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을 것 

마지막으로, 국내외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품질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는 경우여야 한다. 상표권자가 의도적으로 국가별로 다른 품질의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 1국에서 2국으로의 병행수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역위원회는 과거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병행수입을 금지하면서 국내 전용사용권자인 한빛소프트가 국내에서 별도의 제작과정을 거쳐 한글용을 만들었고, 전용 웹사이트 및 콜센터 운영 등을 통해 상품자체의 품질뿐 아니라 상품과 수반되는 서비스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외국에서 물건을 사서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에 해당 상표를 이용하여 직접 생산 판매를 하는 전용사용권자가 있는지 그리고 외국과 국내의 제품의 품질에 차이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광고선전 가능여부 

위와 같은 요건을 만족하여 병행수입이 허용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병행수입업자가 광고선전행위까지 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단순히 수입 판매만 가능하고 광고는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일정 범위에서는 광고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판례는 “병행수입업자가 소극적으로 상표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상표권자의 상표를 사용하여 광고 선전행위를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상표의 기능을 훼손할 우려가 없고 국내 일반 수요자들에게 상품의 출처나 품질에 관하여 오인 혼동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없다면 상표권 침해의 위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02.9.24 선고 99다 42322)라고 하여 병행수입이 허용되는 경우라면 광고선전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더라도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상표권자나 전용사용권자는 이런 병행수입업자의 광고행위를 그대로 용인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광고선전행위가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주체 혼동행위(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 호 (나)목)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판례는 “사용태양 등에 비추어 영업표지로서 기능을 갖는 경우에는 일반 수요자들로 하여금 병행수입업자가 외국 본사의 국내 공인 대리점 등으로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러한 사용행위는 영업주체혼동행위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볼 것이다.” (대법원 2002.9.24 선고 99다 42322)라고 하며, 적극적인 광고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제지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판례는 적극적인 광고행위란 사무소, 영업소, 매장의 외부 간판 및 명함은 영업표지로서 허용되기 어려우나 내부간판, 포장지, 쇼핑백, 선전광고물 등은 대리점인 것처럼 오인하게 할 염려가 없어 허용됨을 명시하였다. 

 

마치며 

소비자들 입장에선 병행수입이 제품의 가격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반가울 것이다. 병행수입 제품은 품질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수입 유통업자의 경우 병행수입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므로 적극적인 광고행위를 통해 병행수입업자와의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병행수입업자라면 병행수입의 요건을 잘 파악하여 상표권 침해나 부정경쟁행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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