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견문록 #6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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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또는 대표가 얼마나 이 사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투자자들이 잠깐 우리를 보고, 창업자의 자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야. 특히 “열 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라는 말처럼 단지 감이라던가 몇 번의 미팅을 통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는 어렵지. 회사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사람의 깊은 속까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숫자는 답을 알고 있어. 그리고 그 숫자를 통해 유추할 수 있지.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말이야.


본인의 사업을 어필하면서, 자신이 부지런하다느니, 열정이 있다느니, 여기에 목숨 걸고 사업하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아마 대한민국에서 창업한 대다수의 대표들은 그렇게 말할 거야. 그런데 그 증거는 있는지, 어떻게 증명할 건지 생각해 봐야 해. 


초기 스타트업은 항상 자금난에 허덕이지. 그래서 다들 외부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 또는 융자를 고민하기 시작해. 무엇이 더 ‘좋다/나쁘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분명한 것은 역시 자기 자본으로 시작해서 외부 자본 없이 살아남는 거야.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는 시장/제품/업종의 특징마다 다르니까, 대신 융자라는 방법에 대하여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일반적으로 융자(대출)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 “빚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식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나 역시도 학창 시절/직장생활 내내 빚을 피하려 노력했지. 원론적으로 빚은 없으면 좋은 거야.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용도에 맞는 적절한 융자도 필요한 법이야. 이게 무슨 망언이냐고? 그럼 융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우선은 융자와 투자에 대한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창업하기 전에는 빚은 무조건 절대 악처럼 생각하고, 투자는 최선이라는 식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어. 투자는 안 갚아도 되는 돈이라 괜찮고, 융자는 갚아야 하는 돈이라 꺼려진다는 말은 사업가로서 무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 두 가지 다 타인자본이기에 투자랑 융자는 다 갚아야 할 돈이야. 게다가 투자기법이 진일보하면서, 융자인 듯 융자가 아닌 투자 조건도 있어. 투자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지 자금조달이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융자가 더 낫다고 생각해. 


투자를 받고자 하는 대표들은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기업가치가 몇 배가 될 것이며, 어떻게 수익을 보장할 것인가 설득을 하려 하지. 그 주장을 따져보면, 융자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와 원금상환이라는 환원 조건보다 투자자에게 약속하는 보상들이 더 크잖아. 그럼 융자가 더 창업자에게 이득이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투자로 인해 인프라와 영업/재무적 파트너/후속 투자를 통한 기업가치 성장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단순한 융자보다는 투자가 더 적합하겠지? 단순하게 이러한 이유만 있지는 않아. 예를 들어, 시장의 크기가 한정적이고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경우, 투자라는 형태보다 단계적인 융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게 좋을 거야. 투자는 오히려 시장 크기가 크고, 성장성이 높은데 타이밍이 지금 적기라고 판단될 때 더 필요하지. 이렇듯 다양한 상황과 조건에 비추어서 융자와 투자를 고민해야 하는 거야.

스타트업에게 융자는 단순하게 돈을 빌리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융자가 창업자의 각오, 사업성 검증과 회사의 자본조달 능력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니? 


1. 너의 각오는 무엇으로 보여 줄래?

창업자가 사업에 대한 확신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본을 얼마나 끌어들였느냐 하는 거야. “내가 이 사업을 위해 퇴직금 다 쏟아붓고, 함께 이 길을 걷는 동료들이 이만큼 자본을 부담했어요~”라고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 녀석들 진짜 각오하고 덤비는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럴만한 자기 자본을 갖추고 시작하는 창업자가 드물거든. 


“그렇게 사업에 확신 있으시면서 왜 투자를 받으려고 하죠?”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돈이 없어서요”가 아니야. 사업이 잘 될 확신이 있다면, 사돈, 팔촌, 친구 돈이든 다 끌어와서 하는 게 정상적인 생각 아닐까? 생판 모르는 남에게 돈을 투자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아? 사업 성공 확신이 있으면, 돈을 빌려서라도 해야지. 근데 융자는 싫다고 하네. 이 상황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해? 


 요즘 많은 스타트업들이 적은 자기 자본으로 시작해. 100만 원짜리, 10만 원짜리 자본금으로 법인을 내지. 그게 다야. 아이디어가 아무리 신박하고, 사업성이 있다고 설명하러 다녀도, 투자를 안 해 주지. 왜냐고? 네가 투자자라고 생각해봐. 그런 회사에 1억을 투자했는데 회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망했어. 그럼 투자자는 돈을 잃지만, 창업자 또는 경영진은 어떤 리스크를 지는 거지? 주변인들이 투자하지도 않았어. 자기 돈도 거의 들지 않았고.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 사업이 절대적으로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고, 창업자의 각오가 대단하다고 여길 제삼자가 얼마나 있을까? 


여담으로 주변인이 자기 자본을 투입한 경우,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3Fs라는 형태의 주주 구성을 선호해. 주변인들이 먼저 투자한 만큼 대표자가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뜻이니까.

 

2. 너 주장 말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우리 사업은 정말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을 가장 까다롭게, 치밀하게 살펴보는 곳이 바로 금융권이야. 그들은 오래전부터 기업을 평가하고, 어떤 케이스가 성장하더라는 평균치 데이터들이 있어.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기에 측정하기 어렵다는 스타트업에 대하여 매우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과도하게 정형화된 기준과 전통적/보수적인 잣대로 우리를 해부한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어. 스타트업이란 걸 감안해 달라고 외친다 한들, 솔직히 말하자면, 시장경제 논리가 적용되는 현실에서는 응석받이의 외침에 불과하지. 왜냐면 빌려준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낮거나 사업성이 없는 회사에 돈을 빌려주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거지? 그리고 그보다는 더 가능성이 있는 곳에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시장은 경쟁이라고. 


그렇기에 융자를 받았다는 것은 그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인정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해. 물론 융자를 받은 기업이라고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기업들 중에서는 더 가능성이 높다는 확률에 대한 공감이야.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단독 발굴한 기업일 경우, 투자 실패했을 때의 책임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만, 적어도 다른 기관/금융기관에서도 돈을 융통해 줄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전제하에 투자를 고려하는 것이 한결 마음 편하지.


3.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융자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당장 네가 돈이 필요하다고 은행에 가보면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에게 융자를 내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체험하게 될 거고, 융자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적어도 기업 대출은 신용평가를 비롯해서 사업계획서, 자본흐름 현황, 재무구조 등을 다각적으로 평가해서 대출 상환 능력이 있어야지만 융자가 가능하지. 게다가 일반적인 기업대출은 매출 기준으로 4분의 1 정도 대출한도가 나와. 스타트업에 특화된 상품들도 있는데 그것도 그리 쉽게 내주지는 않아. 전국에서 이러한 융자를 받기 위해 신청하는 엄청난 수의 스타트업들과 경쟁해야 하지. 그러다 보니 융자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검증처럼 인식되기도 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따라서 단지 자금이 부족해서 받는 융자도 있지만, 레퍼런스/검증을 위해 융자를 받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어. 


 부가적으로 대표자 또는 경영진의 재무관리 능력도 엿볼 수 있어. 기본적으로 재무제표 제출이 면제된 스타트업의 경우는 조금 자유롭겠지만, 재무제표를 제출해야 하는 3년 이상의 스타트업에게는 융자가 재무관리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해.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부채비율을 비롯한 몇 가지 재무적인 수치들이 있지.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냐. 그렇기 때문에 이 회사가 재무관리를 하고 있고, 회사 운영에 숫자를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 그리고 융자가 발생하면 자본금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부채는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사업계획서를 통해 확인하고, 이것이 타당한가를 파악하는 거지. 급박해서 급조한 사업계획서 따위로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이것은 다 대표자의 능력/자질을 유추할 중요한 단서야.  


4.  그래서 융자는 뭐다?

어쨌든 융자는 빚이야.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져. 그리고 그에 따르는 금융 리스크도 있어. 금융비용(보통은 이자비용)을 감당 못해서 사업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해. 부채 비율도 높아지고, 재무건전성 측면에서도 감점 요인이기도 해. 그러니 신중해야 하고, 리스크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해. 


역으로 융자는 자금 수혈 또는 사업 확장을 위한 수단이기도 해. 꼭 필요한 타이밍에 자금이 없어서 기회를 놓치지 않게도 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자금난에서 일시적인 시간을 연장하는 역할도 있어. 단지, 융자가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임시방편으로 끝나지 않도록 상환계획과 일정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필요해. 


또한 대표의 확신과 사업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장치기도 해. 빚에서 오는 부담감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정도의 각오를 알 수 있지. 최근에 많은 지원사업과 공모전을 통해 소위 “상금 헌터”, “지원금 헌터”라는 부류가 부쩍 늘어났어, 그들이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모으더라도 딱 융자/투자의 문턱에서 판가름이 나지. 그들은 책임을 지기 싫어하거든. 딱 자신들이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을 수준까지만 활동하다가 진짜 사업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뒤로 물러나. 그렇기 때문에 융자는 진짜 사업을 수행할 사람이 찾는 수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 융자는 대표의 절실함과 자신감, 열정, 책임감이라는 자기만의 주장에 타인(융자의 제공자)이 동조해 주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제삼자도 공감할 수 있는 주장으로 바꾸어 주는 기능도 있어.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믿을 수 있게 되는 거지. 말만 하는 주장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주장이니까.   


혹시나 해서 조금 덧붙인다면, 나는 융자를 독려하고자 이야기하는 게 아냐. 투자든, 융자든 어떤 기능이 있고,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지에 대하여 더 고민하고, 더 숙고하길 바래서 남기는 거야. 

융자를 받기 전에 이 점은 꼭 고려했으면 좋겠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해. 첫 째는 창업 전에 사전조사를 하면서 정말 이걸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고, 두 번째가 바로 융자를 받아야 할 때, 그리고 세 번째가 투자를 받기 전 이래. 뒤로 갈수록 돌이키기에 아까울 정도로 손해가 커지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범위가 넓어. 그래서 묻고 싶어. 너는 아직도 후회하지 않니? 융자를 받기 전에 포기하면, 너 하나 아쉽고, 너 하나의 책임이지만, 융자를 받은 후에 포기하면,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피해를 줄 거야. 물론 투자를 받은 후에 포기하면, 너를 믿어준 사람들마저도 배신하게 되고 손해를 끼치는 거지.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오가 변함없다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자고. 네가 결정했다면, 드디어 진짜 항해를 시작하는 거야. 이제 후회하기 없기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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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금리 융자
기업활동에서 받을 수 있는 융자는 제1/제2금융권의 융자도 있지만, 가장 좋은 융자는 정부에서 직접 운용하는 저금리 융자와 정부기관에서 위탁받아 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의 보증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융자는 낮은 금리와 거치기간이 긴 장점이 있으며, 기업의 신용/기술성을 평가하여 그 기준에 따라 융자를 진행하기 때문에 1차적인 스크리닝(선별)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정부기관 또는 위탁기관에서 받은 특정한 목적에 의해 집행되는 저금리 융자는 단순히 자금 대출의 성격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스타트업을 위한 융자 또는 보증 프로그램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청년전용창업자금이라는 직접 대출 프로그램이 있으며, 서류신청 및 대면평가를 통해 융자 대상을 선정한다. 또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서는 스타트업을 위한 보증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서류심사 및 현장 실사를 통해 보증을 내어주고, 이를 은행과 협의하여 대출이 이루어진다. 특히,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벤처기업인증도 함께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년 미만의 업력을 가진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 초기 기업에게 불리한 재무제표 제출이 면제되어 있어 이전보다 융자에 대한 허들이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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