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제도 공정성 강화해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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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자들은 외부효과나 공공재의 존재 혹은 자연독점 등 시장 실패가 있는 일부 분야를 제외하곤 시장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가정한다. 인간은 수학적 기대가치의 최대화라는 합리적 기준에 경제행동을 한다고 가정한다. 일단의 제도주의 학자들은 경제행동에 있어 인간의 합리성과는 다른 가정을 한다. 이들은 인간이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번 칼럼을 통해 이러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보 비대칭성과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보 비대칭이 가져오는 문제

신 제도주의자 중 한 명인 윌리엄슨은 이러한 주장의 대부로 볼 수 있다. 그는 원초적 인간능력을 다루기 위하여 인류학적 관점에서 계약적 인간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계약적 인간은 경제적 인간, 노동적 인간, 정치적 인간, 계층적 인간과 함께 인간 행동의 특징을 인류학적 측면에서 살피기 위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윌리엄슨은 자본주의의 경제제도(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에서 한 챕터를 인류학적 접근에 할애하고 인간행동에 대하여 두 가지 행태적 가정을 한다. 하나는 인간의 인식론적 능력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인식능력 한계로 인해 제한된 합리성만을 갖게 된다. 한편, 사람들 간 정보보유의 차이, 즉,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시장에서는 기회주의적 행동도 나타난다.

주류 경제학의 인간행동 합리성에 대한 가정도 완전 정보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아무리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은 한정된 정보밖에 가질 수 없다. 인간들이 특정 사실이나 정보를 숨기려고 한다면 그것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만을 갖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거래에 있어서 정보 문제는 의사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하여 거래당사자 간 정보격차가 심한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기만적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슨은 이러한 행동을 기회주의적 행동(Opportunistic Behavior)이라고 칭했다. 골동품, 중고차, 지식서비스 시장 등 정보격차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에서는 계약당사자 중 정보가 많은 일방이 정보가 없는 다른 일방에 대하여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과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해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 불충분(Market insufficiency)이라는 개념으로 시장 실패(Market failure)와 구별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를 시장 실패의 한 유형으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시장 불충분과 중장기거래 계약 

시장 불충분 분야는 우선, 고도의 전문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에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서비스 거래의 경우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간에는 커다란 정보격차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만일 신뢰성 있는 제3자에 의한 정보격차 완화를 위한 개입이 없다면 환자는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사실, 많은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의사면허제도는 바로 이러한 환자들의 불리한 정보부족 문제를 완화하여 거래를 촉진하는 것이다. 

자동차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제품 안정성 관련 제조사와 소비자 간에는 정보격차가 크다. 때문에 정부에 의한 안전성 인증은 소비자의 안정성에 대한 정보부족 문제를 완화함으로써 자동차 거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 대하서는 거래당사자간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 의한 인증이나 면허, 보증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쌍방 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여 거래를 촉진시킨다. 

둘째, 거래당사자 중 일방의 지속적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중장기 거래분야도 시장 불충분 현상이 나타난다. 중장기 노동계약이 전형적인 예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고용거래의 경우 고용인의 피고용인에 대한 정보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계약 당시 피고용인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취업 이후 피고용인의 행동에 관한 정보도 문제다. 피고용자가 고용된 이후에도 고용인은 피고용인의 도덕적 해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피고용인은 고용인의 이익을 위해 고용되었지만, 피고용인이 고용인을 대리하는 경우 피고용인이 행동에 관한 정보 부족을 악용하여 고용인에게는 손실이 되지만 피고용인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계약 당시 모두 예측하고, 이를 방어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중장기 거래 계약에 있어서는 정보 비대칭성과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 등으로 인하여 사전에 약속했던 계약을 사후에 그대로 적용하기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약 등 중장기 거래 계약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계약 주체들은 미리 관리구조(Governance structure)에 관심을 두게 되며, 이는 계약 이행의 품질을 좌우한다. 중장기 거래의 계약 당사자들은 도덕적 해이 방지나 정보 비대칭성에 의한 고용인의 불리한 입장을 보완하기 위하여 규칙 시스템이나 인센티브 체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1) 많은 조직의 지배적 전략으로 사용되는, 계약에 기초한 사실을 재설계하는 목적으로 채택되는 각종 수당이나 성과급의 조건적 특성들, 2) 정보 비대칭성의 역방향에서 설계되는 조직 내 계층 인정, 3)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주인의 손해는 대리인에 대하여 주인이 제공하는 최소한 효용 기준이 된다는 구속 아래서의 게임 규칙 설계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고용계약 등 중장기 거래 계약에 있어서 당초 계약대로 사후 계약이 이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관리구조나 인센티브 구조를 잘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계약 시점에 최대한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최근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방식은 적지 않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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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 

2017년 7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정부가 발표하면서 그해 322개 공공기관 전체가 블라인드 채용 전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149개 지방 공기업도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직무 중심의 공정한 채용을 목적으로 한다며 올해 3월에는 국회에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민간 기업들도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게 되었다. 

앞으로 민간 기업들도 입사지원서 작성이나 면접 등 채용과정에서 지원자 출신 지역, 신체조건, 가족 관계, 학력 등의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공공기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바탕을 둔 채용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력서 등에 출신지와 출신 대학, 신체 특징 등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전형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찬성 측은 이 제도가 학연, 혈연 등이 중시되는 비합리적 사회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스펙 경쟁에서 벗어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을 많이 등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측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인 학력·학점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의견이다. 

필자는 거래비용 관점에서 이 방식의 문제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블라인드 채용방식은 고용인에게 그렇지 않아도 피고용인 대비 불리한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고용인으로 하여금 당초 계약대로 피고용인의 사후 계약 이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확대된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원하는 역량이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둘째, 피고용인에게도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 자신에 관한 부정적 정보를 숨기고 채용이 된 경우에는 사후 계약 이행 과정에서 기업의 직무 요구에 적합하지 않은 역량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사실, 취업하기가 매우 어려운 최근에도 어떤 대기업의 경우 취업한 청년들이 1년 동안 많게는 15%까지 퇴사하거나 이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하고도 취업 1년차에 퇴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목격하곤 한다. 채용 시 상호간 정보 비대칭성이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퇴사율이나 이직률이 높아지면, 채용 시 투입된 노력과 시간이 낭비된다. 이는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의 경우에도 경쟁력 약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셋째, 블라인드 채용제도, 특히 학력과 학점을 숨기는 것은 국가의 고용거래 관련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해주는 인증 기능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학졸업장과 학점은 국가가 인정하는 인증제도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일정한 입학시험을 치루고 입학하여 이후 소정의 교과과정과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가 인정한 대학졸업장과 학점에 대해서는 대학별로 차별화되는 일정한 신뢰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고용시장에서 시장 불충분성을 완화하여 고용거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살핀 의사와 환자 간 의료서비스 촉진을 위하여 의사 면허를 국가가 운용하는 경우에 국가가 제공한 면허에 신뢰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졸업장이나 학점 등 국가의 인증을 알 수 없게 하고 면접 결과만을 보고 채용하라는 것은 신뢰성 있는 국가기관의 인증 기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체제에 있어서 시장 불충분을 보완하는 국가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인 인증을 고용거래 분야에선 포기하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업의 인력수요가 학력이 높은 고급 인력 쪽으로 증가하고 있다. 피고용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고등정신기능 등에 정확한 정보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즉,흥적 시험이나, 면접 태도 혹은 답변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 파악이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급기술자 채용 시 최근에는 피채용인들의 전공, 학점 그리고 학습 논문 발표실적이나 발표 논문지의 질, 저술 실적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증가는 즉흥적인 면접이나 시험보다는 졸업장이나 논문 게재 실적 등 제3의 기관이나 국가기관에서 인정해준 인증이 더욱 신뢰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이러한 요구는 다른 직무 분야로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학력과 학점을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은 정확히 이러한 추이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계약의 사후 이행 불확실성과 채용의 부작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함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공정성 강화된 블라인드 채용 필요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 채용 제도의 공정성 강화 취지는 살려갈 필요가 있다. 우선, 출신 지역, 신체조건, 가족 관계 등 피고용인의 역량과 관계없는 정보들의 블라인드화는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고용인에게도 정보 획득 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공정성을 잃게 하는 원인도 될 수 있다. 시행은 강제적 방법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적으로 강제해간다면 다양한 개별기업의 천차만별적으로 처해진 구체적 환경을 고려하지 못해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 정부로서는 권고 수준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둘째, 중장기 고용 거래계약의 취약점인 정보 비대칭성 완화를 위한 노력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장기간 인턴십 활성화가 최상의 대안이 될 것이다. 상호 간 정보 비대칭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도 법률 등 정부의 직접적 개입으로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개별 기업의 구체적 고용환경은 다르므로 스스로 판단하여 시행하는 것이 비용효과 측면에서 가장 최적화된 답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졸업장이나 학점 등 국가기관의 인증제도 신뢰성 향상을 위해 정부, 대학 그리고 교수 등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졸업장이나 학점제도 운영에 있어서 공정성과 타당성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에서의 학점 취득이 타당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면, 졸업장이나 취득학점 등의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대학,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의 협조된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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