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시도와 기술의 변화 읽는 안목 중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투데이] 지난 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19년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가 93을 나타냈다는 조사는 2019년 현재 한국 오프라인 시장의 또 다른 현주소를 보여줬다. 경기전망지수가 100을 넘으면 다음 분기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고, 100에 미치지 못하면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는 의미다.

 

위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올 3분기 전망에서 93으로 조금 올랐으나 2015년 2분기 이후 17분기 연속으로 기준치인 100을 넘지 못했다. 

조사된 소매유통업체 1,000개 중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 100 미만인 업체는 대형마트 94, 편의점은 87, 백화점은 86, 슈퍼마켓은 84 순으로 전통적인 오프라인 업체들이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유통기업들의 경영환경 악화와 실적감소’를 주요인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경영환경 악화 및 실적감소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대형마트 월 2회 영업일 및 영업시간 제한 등 유통규제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표현하지 않았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로 2012년부터 시행 중인 월 2회 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 제한 등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의무휴업 규제 도입 이듬해인 2013년, 29.9%였던 대형마트 소비 증가율은 2016년 -6.4%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통시장 소비 증가율도 18.1%에서 –3.3%로 감소했다. 따라서 대형마트 영업일을 규제해서 전통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판단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동반침체를 야기했다. 지난 8년간 시행된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규제 정책은 결국 효과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규제가 단순히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실적감소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쇼핑 선택권 박탈, 유통업체에 납품하고 있는 농가 및 제조업체의 동반하락도 가속화시켜 내수침체의 가속화 규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무휴업일 규제 자체가 소비를 촉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전통시장과 중소상인 매장을 찾기보다는 쇼핑을 포기하거나 편의점 혹은 모바일 쇼핑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2019년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에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100 미만을 나타낸 것에 반해 홈쇼핑·온라인쇼핑 업체들의 경기전망지수는 103을 기록했다. 실제로 온라인쇼핑은 해마다 1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 국내 총 소비시장의 31.4%인 114조 원을 차지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관계자도 “전망이 밝을 것으로 보는 업체가 온라인에만 그친다는 점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으며 소매 유통업체들이 필요한 정부의 정책 과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출점제한 폐지 등 규제 완화(57.2%)’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지금까지 유통 관련 정책은 영세 사업자와 대기업, 전통시장 대 대형마트, 즉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조명돼 이것을 선악의 문제로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업태의 성장을 지켜보기보다는 규제를 통한 명분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왔다. 규제 이전에는 유통업체가 신규 매장을 출점해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제조사에서 신상품을 개발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해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신규 매장의 출점이 엄혹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난과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가격 경쟁력 확보한 창고형 매장과 식자재마트

반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창고형 매장과 식자재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도소매를 아우르면서 획득한 거래처 다변화와 대용량 상품의 기획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상품군도 가공식품 및 공산품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신선 농축수산물과 대용량 식품을 중심으로 판매해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식자재마트의 경우, 원스톱 쇼핑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 삼아 월 2회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틈새를 파고들어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점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문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과 주변 소형 슈퍼마켓 점포들이 수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식자재마트로 소비자의 발길이 옮겨가면서 대형마트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생계형 소형 슈퍼마켓의 폐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분양상가,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이후 급성장

2012년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이후 급성장한 분야가 또 있다. 바로 분양상가다. 기존 대형마트, 백화점, 쇼핑센터 및 복합쇼핑몰이 출점이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대규모 임대 및 분양을 하는 상가가 들어섰다. 또한, 주상복합 건물에도 대규모 시설이 아닌 소규모로 앵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상가를 임대하고 분양한 점포가 들어오게 됐다. 따라서 경쟁 상황이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과 같은 대기업과의 경쟁이 아닌 소상공인과 소상공인의 경쟁으로 변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경우, 소상공인이 판매하는 방식과 소비자에 대한 집객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 공생 또는 상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소상공인과 소상공인 간의 경우, 같은 규모에 같은 제품을 판매함에 따라 과열경쟁에 따른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이처럼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생존이 어려워짐에 따라 분양상가의 공실(空室)문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한 시행사와 건설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현재는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의무휴업이 오프라인 시장의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로 그 반대급부가 중소상인과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전달돼야 하지만, 새롭게 들어선 강자와 기업에 혜택이 돌아감에 따라 피해는 기존 소상공인과 신규로 들어온 소상공인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성장을 견인하는 방법

그렇다면 오프라인시장 활성화를 통해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 상생을 통한 성장을 견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유통과 제조의 이분법적 사고를 바꿔야 한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대형마트인 마크로와 까르푸, 월마트가 우리나라에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대량 생산 기반의 제조업체가 좌지우지 하고 있던 유통시장의 주도권은 유통업체로 넘어갔다. 

뒤이어 온라인에 기반한 이커머스, 모바일 쇼핑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지만, 여전히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제조업체와 협업해 기획상품(PB)을 만들고 생산량을 늘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 등 대형 매장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와 협력해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면서 공생의 터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유통과 제조가 나뉘어 각각의 역할을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유통과 제조가 하나의 공급망 사슬에서 유기적으로 협업할 때 오프라인 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둘째, 지역 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는 앵커 시설을 유치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오프라인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점포로는 테마형 복합쇼핑몰 그리고 당구장, 볼링장 등이 있다. 이 점포들은 주 52시간이 도입되면서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복합쇼핑몰은 가족 단위의 고객이 주말에 여가를 보내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힌다. 무엇보다 쇼핑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복합쇼핑몰 내의 편의 시설을 누리면서 쇼핑몰에 입점된 미용실, 치과, 헬스클럽 등 지역 내 커뮤니티가 구성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받는다.

당구장, 볼링장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데다 실내 스포츠라는 이점으로 날씨와 상관없이 지역 내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장소의 이점이 있다. 여기에 6070세대부터 8090세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이 많은 종목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셋째, 목적구매율과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신선식품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가전제품 등은 여전히 직접 상품을 확인한 후 구매하고 싶어 한다.

미국의 ‘아마존 고’ 매장이 간과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아마존은 쇼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편의성으로 파악했으나 여전히 소비자 대부분은 기존 구매방식이 주는 쇼핑의 재미와 인간다운 소비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아마존 고’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방문했지만 이후 ‘아마존 고’를 단골가게로 방문하고 있는 소비자는 없다고 한다. 기술의 전문성이 목적구매율과 재방문율을 높이지 못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의 대표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바바의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허마셴셩’ 매장을 살펴보자.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을 직접 확인하고 주문한 지 10분 이내에 먹을 수 있으며 배달도 30분 이내로 가능하다. 지불도 ‘알리페이’로 할 수 있어 현금이 없어도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술의 전문성이 목적구매율과 재방문율을 높이는 차별화된 전문성으로 발전한 것이다. 미국의 아마존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려면, 기존의 오프라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미 B2C에서 B2B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비즈니스의 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B2C와 아날로그 플랫폼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혼재돼 소비자의 구매에 따라 판매 형태와 방법만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오프라인 시장을 살려서 내수를 확산시키고 소비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도와 기술의 변화를 읽는 안목이 중요하다.

온라인 디지털 시장에 맞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공산품 비중을 줄이고 신선식품을 앞세운 전문매장을 늘리는 방식을 고집하고, 집객이 어려운 위치에 건물이 들어서도 ‘스타벅스’를 입점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