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또 다른 얼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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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표는 밖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요즘은 여유가 있는지 헬스장도 들락거리더라고요. 

우리는 매일 일하느라 바쁜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표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란 의문 든 적 없어? 때로는 ‘직원이 아니라 대표가 월급 루팡이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하지. 한창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대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고, 보더라도 전날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어제 입은 옷 그대로인 채로 조는 모습을 보면 ‘참 팔자 좋다’라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이런 대표를 믿고 회사를 다녀야 하나 자문하기도 했어.

우린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지옥철을 타고 전력을 다하는데, 대표는 오후에 빼꼼 들러서 잠시 둘러보다 이내 식사 약속이 있다고 사라지는 걸 보면 회사에 애정지수가 뚝 떨어지더라. 자연스레 직원들만 열심히 일하고 대표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기게 됐지.

그런데 어느 날 대표를 따라 중요한 미팅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우리 대표의 진면목을 목격하고 존경심을 갖게 됐어. 그가 왜 매일 피곤해하고, 항상 외부로 돌아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고객들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애쓰는 그 모습에, 내가 대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걸 알았지. 지금 나는 대표가 돼 당시 대표 모습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돌아보곤 해. 

직원과 경영진 사이에 서로의 입장과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오해와 불신이 싹트지. 그게 켜켜이 쌓이면 불만이 되고, 점점 회사 분위기를 침식할 거야. 불길한 징조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지. 딴생각하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걸 수치로 확인하는 순간, 회사는 백척간두의 상황에 부닥칠 거야. 내부 조직이 지지하지 않는 대표는 외부로 쏟아야 할 역량과 시간을 회사 재정비에 쏟고, 성장은 정체될 거야. 

구성원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는데 과연 성장할 수 있을까? 설령 성장하더라도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알 같은 회사가 될 거야. 이 말은 역으로 운영 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회사 밖으로 역량을 떨치고, 성장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단 뜻이기도 해.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까? ‘소수정예’로 시작하는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은 팀빌딩을 친구나 지인에서 시작하니까 따로 대표에 대한 정의와 업무 정리를 생략하기 십상이야. 그러나 창업은 취미, 친교 모임이 아니야. 전에는 선후배고, 가까운 사이였을지라도 이제는 사업을 만들어가는 거야. 

창업 멤버들은 같은 경영진으로서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알아야 해. 후에 합류한 직원에게도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바로 대표에 대한 것이어야 해. 대표를 향한 신뢰가 뒷받침되는 스타트업이 신속하고 집중력 있는 실행력을 가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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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의 기본적인 업무

“스타트업 대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라는 질문에 “그냥 다 해요!”라는 말이 가장 정답일 거야. 어느 정도 시스템이 구축됐고, 각자 역할과 업무가 분담돼 있는 최소 단위의 팀빌딩이 됐다면 조금 더 전문화된 업무가 있겠지만, 현실 속 스타트업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드물어. 

그래서 대표는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어. 기획부터 운영, 회계, 영업 등 회사 전반적인 일은 기본적으로 수행하지. 어떤 대표는 기술·기능적으로 특화된 역량이 있어서 개발자·연구자·마케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해.

의사결정자이자 커뮤니케이션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도 있어. 의견의 갈림과 갈등 사이에서 대표는 다른 대안이나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다양한 결정을 하며 최종 책임을 지지.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결정에 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거야.

대표가 밖을 많이 돌아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금조달 업무 때문이지. 직원 월급부터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끊임없이 흐를 수 있도록 돈을 만들어 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와 책임을 지고 있거든. 

대표가 직원들과의 신뢰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약속이자 의무는 ‘월급 밀리지 않기’야. 통장 잔고가 ‘빵빵’하면 모르겠지만, 늘 쪼들리는 스타트업의 재무상태를 떠올리면 결국 대표는 밖에서 돈을 구하러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어. 

대표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회사의 생존, 성장을 위해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지. 다중인격이라고도 해. 절실할수록 회사에서 보지 못했던 대표의 모습을 회사 밖에서 볼 수 있을 거야. 너도 가족, 친구와 있을 때, 그리고 직장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잖아. 목적과 필요, 환경에 따라 다른 캐릭터를 가지듯 대표의 외부 활동은 회사 내에서 봐왔던 이미지와 많이 다를 수 있어. 

한 투자 유치 설명회 자리에서 친한 대표와 만난 적이 있어. 신들린 듯 유창하게 발표하는 대표의 모습에 그 회사 직원이 놀라더라고. 이런 모습 처음 봤다고. 회사에서는 차분하게 일하는 모습만 봤는데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열정적으로 휘몰아치듯 회사를 소개하는 모습이 딴 사람 같았다고. 

업무일과 중 사무실에서 보이는 것은 대표의 전체 일과 중 일부분에 불과할 뿐 전체가 아니야.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대표가 몸소 뛰어야 하는 어떤 상황이라도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게 대표 자리의 무게랄까? 

 

판을 만들고, 서포트하는 사람이 대표

스타트업의 대표를 ‘일을 벌이는 사람’,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해. 밖에 나돌며 일거리를 만들어와 회사 내부로 전달하고 수행하도록 나누는 역할을 맡지. 내부 인력이 부족하면 대표가 내부 업무에 더 깊이 관여하기도 해. 그러다 보니 대표는 회사 내에서 잡부가 되지. 

대표는 직원을 서포트하는 역할이야. 대표는 직원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을 거야.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에 대한 업무보고. 결제라인이라는 건 단지 업무보고를 받고 즉흥적으로 가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야. 부족한 부분을 캐치해 피드백을 주고 업무 전체를 돌아보고 조정하라고 있는 거야. 

직원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부분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그렇게 회사 내부가 유기적으로 잘 돌아갈 때 대표가 더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내부 직원은 시스템과 절차에 의해 일을 완성하고, 회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어.

 

그럼에도 대표는 이것을 구성원들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보고’란 직원만의 몫이 아니야. 구성원 모두 각자의 업무에 대해 공유하는데, 대표라고 예외는 아니지. 이걸 놓치는 대표들이 많아.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건 영어로 이름을 부른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룰(rule) 안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형성되는 거야. 소통은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듣는 게 아니라고. 

정기적인 회의라는 건 직원들이 무엇을 했는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일까? 그건 반쪽짜리 일방통행 소통이야. 양방향 소통이 되려면, 대표와 경영진도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떠한 이유로 누구를 만나는지 등에 대해 업무보고를 하는 게 좋아. 

불특정한 이슈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해 놓는 회의는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주목적이 돼야 해.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판단하는 건 회의가 아니야. 심판대지. 아무리 외부 업무 때문에 불규칙한 일정이 많아도, 근무시간과 회사 내에서의 규정, 절차는 지키길 바라. 특혜나 예외사항을 두면, 직원 입장에서 대표에게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을까?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을 직원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어. 이런 규칙과 시스템이 구축되고 회사 문화가 되면 자연스럽게 수평적 조직이 탄생하는 거지. 그럼 서로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목표를 향해 쾌속 성장할 거야.

복장이나 호칭, 오픈된 공간이나 회사 내 편의시설이 스타트업의 문화나 특성이 아니야. 진짜 스타트업 고유의 특징은 작은 만큼 빠르고, 기탄없는 아이디어와 의견을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이야. 대표와 멤버들 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고, 구성원 모두가 서로 더 많이 알아가는 집단이 돼야 해. 이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을 얻게 되고, 비로소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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