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제약바이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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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바이오산업(이하 K바이오)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겪었다. 2019년 진행한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K바이오산업은 상당한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기대를 모았던 주요 업체들의 잇따른 신약 개발 좌초 속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도할 숙련 인력의 부족과 K바이오와 관련한 규제 등의 문제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 해였다. 

 

기대감은 회의감으로, 바이오 주가 조작 파문 

연초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태가 주식 시장을 강타했다. 지난 10월 대법원이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권선물위원회의 1, 2차 제재 모두에 집행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불확실성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12월 초 법원이 1심에서 기소된 삼성 임직원 전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는 삼성 그룹 내부에서 시작돼 투자자들의 한숨으로 이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K바이오의 대장주라는 점에서 K바이오 주식 시장 전반에 악재임은 분명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특정 기업의 경영과 관련한 문제로 치부해도, 적시 성분과 함유 성분을 다르게 공표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 사태는 가히 충격을 자아냈다. 이 밖에 주요 바이오 업체들의 신약 개발의 잇따른 실패에 K바이오 산업의 이른바 ‘신뢰’와 ‘실력’에 거품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는 위기설의 더욱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지난 3월 31일, 인보사의 유통 및 판매가 중단된 데 이어, 5월 말 인보사 허가 취소, 8월 말 코오롱생명과학의 미국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의 상장 폐지, 12월에는 관련 임원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 기소 등, 인보사 사태는 2019년 내내 K바이오의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와중에 신라젠, 에이치엘비, 헬릭스미스 등 주요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임상 3상 시도도 결과적으로 실패 혹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6월 말 에이치엘비 위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리보세라닙’의 임상 3상서 생존개선 실패 ▲8월 말 신라젠 간암 치료제 ‘펙사벡’의 임상 3상 무용성 평가 중단 권고 ▲9월 말 헬릭스미스의 유전차 치료제 ‘엔젠시스’ 임상 3상의 위약 혼용에 따른 결과 도출 실패 ▲11월 메지온의 단심실증 치료 후보물질 ‘유데나필’의 임상 3상 1차 지표 유의성 확보 실패 등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임상 3상의 실패는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투입된 신약 개발에 대한 시간과 비용을 회수할 방안이 사라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기반으로 형성된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 위축은 물론이고, K바이오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불러오는 리스크 요인이다.

 

‘마의 3상’, 국내 제약업계의 사면초가 

특히 주요 K바이오 업체들의 신약 개발 실패는 K바이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입의 감소로 이어져 ▲신약 물질개발 ▲임상시험 ▲해외 시장 개척 ▲인력 양성과 확보 등 K 바이오의 외연 확장과 내실 강화에 긴요한 중장기 연구·개발 투자 재원 마련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도 우려된다. 언론과 업계를 중심으로 K바이오 위기설의 배경으로 주요 기업들의 임상 3상 통과 실패가 거론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신약 개발에는 항상 위험이 있고,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것임을 살필 때, 고급인력의 확보와 규제 완화 등, K바이오 건전한 성장을 위해 더 근본적인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K바이오가 최근 10년간 급속히 성장하면서 해외 시장 진출을 도모할 정도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기업 운영과 의사결정은 여전히 국내 인력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해외 시장 개척과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질적 성장을 실현할 고급 인력의 확보가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신약 개발 과정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의 활용과 여기에 데이터의 활용 등과 관련한 규제 완화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월 초 국회에서 첨단재생 의료 및 첨단바이오 의약품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이 통과돼 신속한 심사와 신약 개발의 규제 개선에 대한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임상 과정에서 데이터의 활용과 수집, 재활용 인프라와 프로세스 구축 등 인공지능 기반의 신약개발을 둘러싼 전반의 제도 여건에 대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웃 나라 일본은 신약 개발 주기를 앞당기고, 바이오 기업의 세계적 신약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의약품 심사 시스템의 규제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보건 당국은 2015년 유망 신기술이 적용된 의약품에 대한 우선심사지정제도를 도입하고, 2017년 10월 조건부 조기승인제도를 시행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심사하는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harmaceuticals and Medical Devices Agency, PMDA) 산하에 규제과학센터(Regulatory Science Center)를 설립했다. 

우선 심사제도나 조건부 조기승인제도는 이번에 국내에서 통과된 첨생법에도 유사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일본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영국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RSC)를 통해 데이터와 전자화된 국제 표준 기반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의약품 심사 체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자진료기록 카드DB(Real World Data, RWD)와 임상 시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신속한 데이터 분석 및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약품 안전도 강화와 예측 가능성 개선, 신속한 의사결정 등 효율적인 의약품 개발과 심사, 승인의 선순환 프로세스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2020년에는 전자진료기록카드DB를 활용하는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별도 기준도 공표할 예정이다. 

일본 보건 당국의 의약품 심사 프로세스의 규제 혁신 사례는 정부가 바이오 기업들의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해주는데 초점을 두는 1차원적 규제 완화 정도가 아니라, 치열해지는 글로벌 바이오산업 경쟁 속에서 국제 표준 기반의 데이터 수집과 관리 및 이를 활용하게 해주는 데이터베이스 구축까지 추진하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바이오 산업 지원 정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에도 이처럼 체계적인 국제 표준 기반의 데이터 중심 신약 심사 시스템과 제도가 있었더라면, 인보사 사태와 같이 바이오 산업 전체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도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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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강국의 꿈 펼칠 판 짜기가 필요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2019년 주요 기업들의 신약 개발의 실패만을 두고, 현재의 K바이오가 회복 불능의 심각한 위기 단계이고, 역량 없는 거품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내수 시장의 한계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매출과 투자 규모 속에서 K바이오 기업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신약 개발 단계에 이를 정도로 성장해 왔으며, 체계적인 신약 개발 인프라 및 이를 지원하기 위한 체계적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19년의 신약 개발 실패 사례는 K바이오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한 단계 도약의 계기로 삼는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잇따른 악재 속에서도 SK케미칼의 치매치료 패치 ‘SID710’은 미국 FDA 품목 허가를 획득했는데,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사상 최초의 치매치료 패치의 FDA 승인 실적이다. 

브릿지바이오가 지난 7월 베링거잉겔하임에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 ‘BBT-877’의 기술을 1조 5,180억 원에 수출한 데 이어, 알테오젠도 11월 29일 1조 6,190억 원대의 기술 수출에 성공하는 등 1조원대 규모의 기술 수출 실적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차질이 있기는 했지만, K바이오의 실력과 역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2019년에는 신약 개발의 실패와 잇따른 악재가 발생했지만, K바이오가 회복 불능의 위기에 빠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순히 새로운 성장을 앞둔 일시적인 난관을 거치고 있다고 보는 것도 현재의 K바이오를 둘러싼 내외적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진단이다. 

오히려 2019년은 급속히 성장한 K바이오가 현재의 ‘역량’과 ‘실력’을 확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높은 벽을 체감하면서 2020년을 준비할 수 있는 자산이자 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시기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K바이오의 구성원들이 2019년에 드러난 문제들과 구조적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 해외 시장 개척 시도와 고급 인력 확보, 신약 등을 지속적으로 강화함과 아울러, 외부적으로는 임상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규제 완화, 체계적이고 국제 표준에 들어맞는 의약품 심사와 승인 체계 마련, K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 회복 등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인지, 아니면 대내외적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하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것인지, 2020년을 앞둔 K바이오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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