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노동법을 혁신하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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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인공지능, 증강현실, 행동인터넷, 블록체인, 로봇, 5G, 자율주행, 유전자 편집가위 등 디지털 대전환을 이끌고 있는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지난해 10월 ‘2020년 10대 전략기술 트렌드’를 발표한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공장, 사무실, 도시 등 물리적 환경은 다수의 터치 센서와 감각 채널을 통해 사람과 주변 사물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스마트 공간’으로 진화한다. 

자동화 프로세스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고 제고하는 핵심 촉매제는 인공지능이다. 기술진보는 산업생태계를 바꾸고, 우리가 일하고, 놀고, 생활하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혁신시키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기업도 개인도 미래가 없는 시대,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멸종한 공룡이 되지 않기 위해 덩치 큰 조직을 쪼개 스쿼드(Squad)와 부족(Tribe) 등 기민한(agile) 조직으로 혁신한다. 

혁신조직은 고객, 시장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제품기획·개발·제조·마케팅 등 전 분야를 책임지고, 시장 요구에 따라 신속 과감하게 해체 또는 개편·재결성하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이 같은 ‘노동 4.0(Arbeit 4.0)’의 세계는 ① 전면적인 디지털화(Digitalization), ② 일하는 시간, 장소, 조직, 프로세스의 유연화(Flexibilization), ③ 숙련의 양극화(Polarization)를 특징으로 한다.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 등 노동생태계가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20년 한국의 현주소는? 

낡은 체제 안에서 진영 다툼을 벌이는 사이 미래는 실종되고 혁신경쟁에서는 낙오할 위기다. 모빌리티, 빅데이터, 원격진료 등 곳곳에서 신기술과 구질서의 충돌로 사회체제가 요동치는데 국가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갈등조정 메커니즘은 부재하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성과는 초라한 가운데 복합격차 확대와 불공정에 대한 분노의 함성은 높고, 혁신의 수레바퀴는 저항의 돌부리를 넘지 못한 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의 칼럼은 지적한다. K-팝의 한국은 스스로를 규제에 가두고 혁신에 실패하고 있다고. 

신·구 산업이 충돌하는 혁신갈등의 중심에는 먹고사는 문제, 즉 노동이슈가 자리하고 있다. 생존권 저항은 치열하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들은 정치공학에 갈팡질팡한다. ‘사람중심’, ‘노동존중’도 알고 보니 ‘기성세대 중심’의 ‘기득권층 노동조합 존중’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산업현장을 강타한 ‘노동정책 3종 세트(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제로화)’의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동 이슈에 관한 사회적 대화는 동력이 꺼져가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를 거친 법안조차 1년여간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기능부전에 빠진 시스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개혁 어젠다(Agenda) 2020

경제와 일자리 상황이 어렵다 보니 많은 전문가들이 노동개혁을 이야기한다. 인식과 관행 개선도 필요하지만 제도와 현실의 부조화를 해소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노동법이 기술진보와 밀레니엄·Z세대의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지체(Institutional Lag)’가 초래한 모순의 축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법은 노동개혁, 노동4.0에 맞춰 노동법제를 혁신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 독일의 슈뢰더, 프랑스의 마크롱에서 보듯 노동개혁은 정권을 걸고 싸워야 할 만큼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더 늦기 전 디오게네스의 등불을 들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노동계약규범

산업구조 변화와 기술진보, 노동력 구성과 고용형태의 다양화 등 구조적인 환경 변화로 하나의 표준을 강제하는 노동법과 표준적 근로자상을 전제로 하는 노조 중심의 집단주의는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공유와 융합의 시대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이분법은 자칫 선악의 흑백 논리가 돼 창조적 다양성을 부정하기 십상이다. 

격차는 줄여야 하지만 고용형태 규제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못하고 고용만 축소시킬 우려가 있고, 도급과 파견을 둘러싼 직접고용 논란도 글로벌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개인사업자이면서 사실상 특정업체에 소속돼 일하는 ‘제3의 노동자’가 2011년 130만 명에서 2019년 221만 명으로 급증했다. 

플랫폼 기반 디지털 특수고용직이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의 중간형태로서 종속성은 약하지만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은 더 큰 경우가 많다. 최근 학습지교사, 방송연기자,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산재보험 적용직종을 단계적으로 늘려가고 있지만, 노동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란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차제에 ‘근로자(employee)’를 ‘노동자(worker)’로 용어를 바꾸고 개념 정의도 분야별로 다원화하고,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계약원리를 확대해 획일적 규제를 강제하는 노동보호법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의 생산적 노사관계 

임금, 근로시간 등 노동조건의 설정과 운영에 산업별·기업별 특성을 반영하려면 노사자율의 영역이 확대돼야 한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수많은 사업장의 연장근로를 정부가 인가하고, 노사합의로 오랫동안 운영해온 기준을 무시하고 판사가 통상임금을 결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노동시간과 임금 등에 있어서 노사의 주권과 자치가 인정돼야 한다. 

노사관계는 조율된 자율주의(Co-ordinated Collective Laissez-Faire)를 지향하면서 노동자의 노동권과 기업의 경영권, 구직자의 일할 권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동조합법이 개편돼야 한다. 노조 설립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단체교섭은 자율주의로 전환하거나 근로자의 일정 비율 이상을 대표하는 경우 교섭권을 인정하고, 노조 임원 임기와 단체협약 유효기간 규제는 풀어서 교섭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의 쟁의행위 대상과 대체근로 등 사용자의 대응무기를 국제기준에 맞춤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통한 노사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소외 없는 참여와 민주적 대표성 보장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10~11%대에 그치고, 추세적으로 보면 1989년 19.8%로 고점을 찍은 이후 하락했다. 조직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은 소외 또는 배제돼 있어 집단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보완이 필요하다. 

한편, 노사자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노사간에 상호 대등성이 전제돼야 한다. 노동조건의 양극화를 줄이려면 노조는 초기업단위 조직과 교섭을 활성화하고, 기업단위에서는 노사협의회를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기업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종업원대표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체제하에서 소수노조에 대한 다수노조의 횡포를 규제하는 등 부당노동행위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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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와 능력에 걸맞은 공정한 보상체계 

2018년부터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2028년부터는 총인구 감소가 시작된다. 주 52시간제가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면 총 노동시간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노동투입 감소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재앙을 피하려면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과도한 연공형 임금체계가 임금 불평등 확대, 장년층 조기 퇴직 압박, 생산성 향상 유인 억제 등 많은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생산성을 혁신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려면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중심으로 개편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공공성의 방패 뒤에서 안주하기 쉬운 정부와 공공부문이 선도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 고용과 생애직업활동을 뒷받침하는 역동적 안정성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과 함께 기존 일자리를 소멸시킨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려면 디지털 대전환을 촉진하는 동시에 실업자의 재취업 등 단절 없는 노동이동을 지원하는 ‘역동적 안정성(Dynamic Stability)’이 확보돼야 한다. 

혁신을 억제하는 규제를 개혁하고, 채용에 대한 과도한 간섭도 걷어내고, 해고의 기준과 절차상 불확실성을 제거해 기업이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구직급여 등 고용안전망은 확충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대한 취업부조와 육아지원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사회보장수급자에 대한 취업 활성화(Activation)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급여와 보조금 집행기관으로 변질된 고용서비스 전달체계를 혁신하고, 평생교육과 직업훈련체제도 산업수요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혁신으로 함께 만드는 새로운 노동의 미래

취업절벽에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내일의 희망을 여는 혁신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직전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이대로는 한국에 미래가 없다”고 했겠는가. 선봉은 청년 스타트업, 본진은 글로벌 대기업과 혁신형 중소기업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래비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고, 노동법 현대화에 나서야 한다. 2020년이 포퓰리즘의 난장(亂場)이 아니라 여야의 혁신 경쟁과 노사정 협력으로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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