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재선 성공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재선 성공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1월 11일 선거에서 57.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입법원 선거에서도 무난히 과반수를 확보해 망외 소득을 올렸다. 대만 총통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대륙에서 사업하고 있는 수많은 대만인이 전세기를 동원해 선거에 참여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으나, 이번에는 여론조사가 확연히 차이나 이러한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정책 실패가 발목을 잡으면서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을 때 차이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3년 연속 5%대로 인상해 실물경제가 감당할 수 없게 됐고, 주휴수당을 함께 신설해 급증한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축소하자 실업률이 치솟았다. 

게다가 근로시간 단축까지 시행하면서 대만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회사 등 첨단 기업들이 인력 관리에 곤란을 겪었다. 일률적인 노동시간 단축에 재계는 물론, 실질임금이 감소한 노동자도 반발했다. 

불에 기름을 붓기라도 하듯 중국은 여행객 제한조치를 하여 대만경제를 측면 공격했다. 

급기야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하여 ‘저혈압 환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한편, 차이 총통은 법령까지 고쳐가며 탈원전을 추진했으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이로 인해 2018년 11월 치른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참패했다. 이때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59%가 탈원전 정책 법안 폐지를 지지했다. 

차이 총통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고 민진당 주석 자리까지도 내놓아야 했다.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차이 총통이 왜 재선에 성공하고, 민진당은 입법원 선거에서 승리했을까?

첫째,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이 작용했다. 2019년 1월 2일 개최된 ‘타이완 동포에게 고하는 서신’ 발표 4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평화통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며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한다는 옵션을 놔둘 것”이라고 말하자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둘째,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개정을 계기로 격화된 홍콩 시위의 영향으로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커진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차이 총통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동시에 한 국가 안에 존재할 수 없음을 봤으며, 홍콩 사례는 우리에게 일국양제가 절대 믿을 수 없는 체제임을 알려준다”고 말하면서 ‘일국양제’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셋째,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만이 뜻하지 않게 수혜자가 된 점도 큰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본토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때마침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고율 관세를 우려해 대만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이 늘어나 대만의 작년 3분기 경제성장률(2.9%)은 다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인 홍콩(-2.9%), 싱가포르(0.1%), 한국(2.0%)보다 높았다. 

외국인 투자는 지난해 3분기 9.4% 증가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대만을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수혜 대상으로 꼽았다.

넷째,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인한 한일 간 대치국면이 대만에 이익을 가져다줬다. 

차이 총통 집권 후 반 중국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 측 견제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대만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했으나 한·일간 갈등으로 대만이 양국의 해외관광 ‘대체지’로 부상하면서 오히려 대만은 관광객 수가 늘어났다.  

다섯째, 탄탄한 미국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차이 정권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 

의회는 대만과 상호 고위관료 교류를 허용하는 대만여행법과 대만에 무기 판매를 허용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대만 군사 압박에 맞서 군함을 대만해협에 통과시키면서 대만 공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반도체 파운드리의 강자인 대만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일 때에 미국에 힘을 실어줬다. 

우리에게 제1의 교역 대상국이자 중요한 투자대상국인 중국에 비해서는 못하지만, 교역, 인적교류 등 측면에서 대만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2018년 기준 한대만 양자 간 교역액은 370억 불에 달해 한국은 대만의 5위, 대만은 한국의 6위 교역파트너다. 

대만에서 한류에 대한 인기가 높고 한국에서도 대만에 대한 관심이 많아, 2018년 상호 방문객이 214만 명에 육박했다. 

또한, 한국으로 들여오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선박 대부분이 대만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대만해협의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천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이 총통은 어려운 상황에서 급반전해 재선에 성공했다. 대만 총통 선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정책성과는 선거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차이 정부는 급진적인 노동정책으로 지탄받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우리나라도 소득주도성장,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좋은 정부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하고 국민이 신명 나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바탕 위에 정책을 교정하고 전환하는 용기를 보여준다면 유권자들은 박수 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이다. 대학 원자력공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급감하고 원전산업 생태계가 약화되면서 관련 공장들의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문을 닫게 됨으로써 오갈 데가 없게 된 기술자들을 중국 등에서 사냥하고 있다고 한다. 

탈원전을 표방하면서 원전 수출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료가 비싸지고 있는데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지 등도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실시한 나라들이 원전 없이는 기후변화 대응이 어렵다고 인식하면서 정책을 바꾸고 있다. 탈원전 정책 문제를 국민투표로 해결한 대만의 사례를 참고해 볼 일이다.
 
셋째, 미·중 무역전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대만처럼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화웨이에 제재를 가하자 삼성전자 통신장비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미·중 무역전쟁의 반사적 이익을 보고 있는 사례다. 

중국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이 돌아와서 경제성장률을 높여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 기업들도 중국에서 동남아 등지로 곧바로 갈 것이 아니라 국내로 들어와 물건을 생산해 미국 시장에 수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유턴기업’ 제도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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