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가 우리의 발목 잡지 않도록 지혜 발휘해야

주 52시간 근로제는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주 52시간 근로제는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인 빈곤지역이었던 안휘성의 성도 허페이(合肥)가 중국의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허페이에 소재하고 있는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출신 인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이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 창업한 아이플라이텍(科大訊飛・커다쉰페이)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창업자의 사명감과 직원들의 열정

아이플라이텍은 인공지능(AI) 음성인식의 강자로 중국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필자가 2018년 여름 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발전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동석한 직원은 창업자의 사명감과 직원들의 열정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동료들은 음성인식만 고집하지 말고 당장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게임 개발 등으로 업종을 변경해 어려움을 타개하자고 했지만 류칭펑(劉慶蜂) 창업자는 “음성인식 산업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하면서 일로매진해 오늘의 성공을 이뤘다고 한다. 

세계 음성인식 시장을 주도하는데 역할을 해야겠다는 직원들의 열정도 대단하다고 한다. 스스로 야근을 함은 물론 휴가기간도 조정해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플라이텍은 구글과 경쟁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업이 있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의 길목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로 인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초격차’ 기술 승부수를 띄운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겉으로는 말 못하고 있지만 태산같이 걱정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인해 혁신 기술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우수 대학 출신 석·박사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2018년 7월 1일부터 시작돼 사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으로 1주 최대 근로시간 52시간을 초과해 근로한 경우에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운수업 등 5개 예외업종을 제외하고는 1주일에 12시간 넘게 초과근로를 하면 사업주가 처벌받는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 일변도의 문제점

주 52시간 근로제는 과로 사회라는 늪을 벗어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해 경제를 회생시키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주요 선진국들의 연간 총 근로시간은 우리나라보다 짧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논란을 빚고 있는가? 그것은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 일변도이기 때문이며, 특히 두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먼저, 형벌로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준수를 강제하고 있다. 물론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도 근로시간 규정을 어겼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있으나 우리나라보다 강하지 않다. 

미국은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FLSA)이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로할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위반 시 처벌규정은 따로 없다. 

게다가 연소득 13만 4,004달러(약 1억 5,882만 원) 이상의 관리·행정직과 컴퓨터 관련 직, 전문직 등은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규정한 공정근로기준법(FLSA)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으로 불리는 근로시간 적용 제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또한 이와 비슷한 ‘고도 프로페셔널 업무 종사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연간 1,075만 엔(약 1억 1,725만 원) 이상을 받는 금융 딜러, 애널리스트, 시스템 엔지니어 등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한국은 소득이나 직종과 상관없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해야 한다. 연간 초봉이 1억 2,000만 원인 대형 로펌의 변호사조차 주 52시간밖에 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법인 관계자는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늦게 퇴근하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어겼을 경우, 대표이사를 피의자로 소환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지나친 징벌적 규제”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간부는 근로시간이 제한돼 연구에 집중할 수 없게 되자 연구원들이 퇴근 후 집으로 자료를 가지고 가서 계속 연구하겠다고 했으나 말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설령 집에서 자발적으로 연구하더라도 나중에 근무시간으로 주장하면 52시간 근무 규정에 의해 사용자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자료유출 등 보안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선진국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운영 기간을 늘려 개별 기업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일정한 기간 내에 어느 주 또는 어느 날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정해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정 기간을 정해 총 근로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되며,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가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해도 연장 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스크림은 주로 여름에 팔리기 때문에 여름에는 일감이 많지만 겨울에는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일감이 많지 않아 근로시간을 조정해야만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은 단체협약 시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기간을 1년 범위로 운영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 부칙 제3조에 「고용노동부장관은 2022년 12월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회에서 막혀 있는 상황이다. 당초 선진국처럼 1년으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적용기간 연장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초래되는 문제

주 52시간 근로제는 스타트업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회사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필요에 의해 주 5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싶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특히, 소프트웨어(SW)나 정보통신(ICT) 전문직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연구개발 공정별 연속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운영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는 것은 자기 발전과 이익을 위해 더 일하고 싶어 하는 스타트업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혁신과 창조적인 노력을 통해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지를 가로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국가경쟁력에도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면서도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다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왜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를 실시하면서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는가? 

일본기업 강제징용문제로 반도체 부품 등에 대한 수출규제가 가시화되자 반도체 분야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가 경쟁력 강화와 국민 경제의 발전을 위해 인정하는 연구개발(R&D)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어디 반도체만 중요하고 자동차, 항공기, 의료, 로봇 등 분야는 중요하지 않은가?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정부가 시혜를 베풀 듯 예외조치를 만들어 내면 한정이 없다. 근본적인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한으로 분단돼 있고, 아직 선진국들과 같은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잘 정착되도록 서로 협력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사업주나 직원들이 열정을 불태울 수 없어 한국에서는 벤처기업 창업을 통해 아이플라이텍 같은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국가경쟁력,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시행하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오히려 강력한 규제가 돼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강국 전) 주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주시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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