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구루 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1974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근거로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당시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고 회장 역시 유신헌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 이후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거세지자 1년여의 수감생활을 거쳐 석방된다.

“교도소를 나온 뒤, 학교에 복학하려 했지만, 당시 연세대학교 총장 역시 박정희정권에 탄압을 받아 잘리면서 학교에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학생이 학교에 갈 수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서 살 길을 찾아나섰습니다.”

고 회장이 뛰어든 첫 창업시장은 유통업시장이었다. 그러나 첫 창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아는 선배와 함께 오퍼상(offer+商, 무역대리업)을 하게 된다. 고 회장은 현재와 달리, 당시의 창업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창업 환경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돈 없어서 창업하지 못한다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러나 처음 창업했을 당시에는 투자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서 투자자조차 없었어요.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가장 중요한데, 자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던 거죠. 창업을 둘러싼 투자 환경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도전정신 하나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묻자, 고 회장은 “많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어려워지자 취업도 어려워져 창업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고 회장은 1992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에 몸담았던 것도 잠시, 그는 다시 마음의 고향인 창업현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국가나 국민이 아닌 자신을 1순위에 두는 정치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정치를 바꿔보자는 생각에 1987년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고, 선거에 두 번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어요. 낙선하고 난 뒤 정치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정계에 뛰어든 이상 끊임없이 타인과 경쟁해야 했는데, 그러면서 계속 남을 미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창업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고 회장은 셀런TV를 창업해 동업하던 동료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볼 수 있는 셋톱박스를 만들어 판매했다. 

“셋톱박스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MBC, KBS, SBS 방송 3사에 콘텐츠 제휴를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웨이브(SK텔레콤 옥수수(oksusu) + 지상파 3사 푹(pooq))와 같은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보다 20년을 먼저 하자고 했으니, 시대를 너무 앞서 간 거죠. 이 사업이 성공했다면, 넷플릭스보다 앞선 성공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됐을 겁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들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다

고 회장은 회사를 창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07년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포럼인 고벤처포럼을 창립했다. 

“셀런TV가 하나로텔레콤에 인수합병 됐고,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에 인수되면서 브로드밴드미디어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브로드밴드미디어가 SK의 자회사가 되면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하게 됐죠. 그런데 50대 중반의 나이에 창업하자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우선,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년들과 어떻게 하면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젊은 창업가 7명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 창업가들도 나와 어울리면서 직간접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고, 이렇게 매달 모이다 보니,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됐고, 고벤처포럼이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고벤처포럼 초기,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가 발표자로 나와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엔젤투자 규모를 10배 이상 성장시키기까지

고 회장은 2012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제안을 받아 한국엔젤투자협회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당시 국내 투자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엔젤투자자들을 성장시키고, 활발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협회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협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고 회장은 협회 설립 초기에는 엔젤투자자는 5백 명, 엔젤투자 규모는 5백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제는 엔젤투자자는 5천 명, 엔젤투자 금액은 5천억 원에 이른다. 고 회장은 협회 설립 초기와 비교하면, 규모가 10배 이상 성장했기 때문에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향후 엔젤투자자는 2만 명까지, 엔젤투자 규모는 2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청년창업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출처: 스타트업투데이)
팁스 서밋 2019에서의 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출처: 강남구청)

스타트업 올림픽 대표 육성하는 팁스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는 엔젤투자자 육성 및 기업성장 지원 외에도 미래유망 창업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팁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 회장은 “현재 한국경제가 슬럼프에 빠져있는 이유는 우리가 기존에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철강, 조선, 자동차, 스마트폰 등의 경쟁력이 중국의 추격 때문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낸다”면서 “혁신을 주도해 나가는 그룹 역시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분야의 혁신적인 기업으로는 딥마인드, 전기자동차에서는 테슬라, 우주항공에서는 스페이스엑스, 모빌리티에서는 우버, 드론에는 디제이아이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 스타트업이지만, 현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팁스를 통해 스타트업 올림픽 대표 팀을 육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 회장은 팁스를 통해 1년에 300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밝혔다. 고 회장은 향후 1년 동안 2천 개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0년이면 2만 개가 되고, 이 중 5%인 1,000개만 유니콘이 되도 우리나라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씨앗을 뿌려놔야 10~20년 후에도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팁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국 스타트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2020년의 시작을 알리는 1월, 고 회장에게 2019년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2019년,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배달의민족이 요기요 운영사인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 6천억 원에 M&A 된 것입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실력을 인정받은 유의미한 사례라고 봅니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계에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반면, 고 회장은 ‘타다’ 논란으로 대표되는 규제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의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규제로 인해 스타트업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습니다. 규제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전 세계 100대 스타트업 업종 중, 50%는 한국에서 영업이 불가능합니다. 이 상태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 나갈 수 없습니다.”

 

창업,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고 회장은 2020년 현재, 청년 창업가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자금이라고 봤다. 고 회장이 꼽은 청년창업가들의 또 다른 고민은 규제에 둘러싸인 환경이다. “실패했을 때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투자 환경이 개선돼야 합니다.”

고 회장은 창업에 나서지 않는 젊은이들에게는 직장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현재 직업의 60%가 미래에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지 않으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다가 10~20년 후, 직장이 없어지고 난 후에는 살 길이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월급쟁이로만 살라고 한다면, 직장이 사라진 뒤에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어요. 젊은이들에게 수동적인 인생을 살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두 발로 꼿꼿이 서서 능동적인 삶을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면, 어떤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막이 없어진 후, 허허벌판으로 나가게 되면, 그때는 정말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창업입니다. 실패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전거도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혼자 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영하 회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중퇴했다. 1999년 셀런TV를 공동 창업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하나로미디어 회장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1년간 SK브로드밴드미디어 회장을 지냈고, 2007년 고벤처포럼을 창립했다. 2011년부터 고벤처 파트너스 대표와 고벤처 엔젤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스타트업투데이=임효정 기자] hj@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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