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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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에 강타된 포근한 대한민국

2019년 12월, 대한민국에는 디즈니 발(發) 막강 한파가 몰아닥쳤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는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 전작 ‘겨울왕국’을 뛰어넘어 어마어마한 흥행기록을 세웠다. 극장 성수기 겨울방학이 이제 시작인데 아직도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많은 여성관객은 소위 ‘N차관람(반복관람)’을 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눈 내리고 얼어붙은 혹독한 추위의 겨울왕국 배경. 사랑과 감성이 어우러진 판타지와 아름다운 선율의 주제곡. 안나, 엘사, 올라프 등. 등장 캐릭터의 맛깔나는 조화가 어린 동심을 넘어 어른 관객의 마음마저 강타한 작품이다. 디즈니의 문화권력이 실로 부럽고 경이로울 뿐이다. 따듯한 극장 스크린에서 시원한 겨울을 감상하는 색다른 즐거움도 있다.

올겨울은 유달리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이른 아침 코끝을 찡하게 할만한 맹렬한 한파는 오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한반도를 둘러싼 겨울철 냉기가 주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다. 옛말에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적당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려줘야 이듬해 천지 자연섭생이 원활해지고 농사도 풍년이 든다고 했다.

온화한 날씨는 추위가 버거운 이들, 그리고 도시 서민들의 겨우살이에는 다행이지만, 마음은 예전보다 더 혹한이다. 꽁꽁 얼어버린 겨울의 풍광이 온통 우리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는듯하다. 해가 갈수록 외면받는 연말연시 구세군 자선냄비의 공허한 외침과 얼어붙은 정치 현실, 팍팍한 경제, 살림살이. 우리 도시민의 삶은 시베리아 벌판 한 군데에 와 있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도시의 연말 풍경에 크리스마스 시즌의 들뜬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알록달록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예전만 못하고 흥겨운 캐럴도 도심 번화가에 들리지 않는다. 대형 백화점이나 커피숍, 카페, 점포 등에서 맘껏 틀어대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저작권료 장벽’을 만났다. 경제 불황에 비용 부담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과거처럼 연말연시를 즐기기 위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탓일까?

연말 분위기가 침체되자 일부 정부 부처와 단체, 기업 등이 나서 캐럴 무료 저작권 사용에 대한 홍보를 띄우고, 한시적 저작권 프리(Free)를 선언한 콘텐츠가 등장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도시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풀기엔 아직 역부족인가 보다. 그나마 펑펑 눈이라도 한두 번쯤 내려 겨울왕국의 귀여운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를 우리 어린이들이 마음껏 만들어보게 하면 좋으련만. 아직 남은 겨울을 기다려본다. 

 

초(招) 비상 걸린 겨울축제들

따듯한 겨울은 한해 먹거리가 달린 도시에겐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겨울’을 테마로 한 축제도시들이 모두 잔뜩 긴장하며 하루하루 기상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축제 개막일은 대부분 1주일 이상 연기됐다.

눈, 얼음, 낚시축제로 대표되는 화천, 인제, 평창, 태백, 홍천, 가평 등은 지역 특화 겨울축제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도시의 활력과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됐다. 눈이 많이 내리고 강물이 얼어야만 가능한 축제. 따듯한 기후는 겨울축제의 최대 적이다. 

이미 대한민국 대표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명성이 자자한 화천산천어축제는 연인원 150만 명, 외국인 15만 명 이상이 찾는, 도시 경제를 상당 부분 책임지는 축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날씨 탓에 올해는 개장을 1주일 늦췄다. 기준 안전을 위한 얼음두께가 아직 목표치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전체 행사기간이 줄어들면 입장객 수와 축제 매출수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축제스타일이 유사한 평창 송어축제, 홍천강꽁꽁축제, 가평씽씽송어축제, 인제빙어축제도 사정은 비슷하다. 각기 개막일을 늦추고 동시입장 인원수도 줄여 안전대책 마련에 나섰다. 얼음낚시는 아니지만 태백산눈축제, 포천동장군축제도 올해에는 역시나 개막일을 연기하며 매일 눈과 추위가 찾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물론 한시적인 겨울축제를 준비하는 도시 이외에 겨우내 수개월을 운영하는 스키장, 야외 스케이트장, 눈썰매장도 적당한 추위와 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인공장치로 얼마든지 눈과 빙판을 만들 수 있기에 이와 비견할 수는 없다. 자연 속 겨울축제를 표방하는 곳에 눈과 빙판을 만들어내는 장비가 충분하겠는가?

상상해보자. 눈폭풍과 얼음 기둥을 마법의 힘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가 올 겨울 축제를 준비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나타난다면? 꿈같은 얘기지만 올겨울엔 로망일수도 있겠다. 이쯤이면 현실과 동화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2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2017~2018년 겨울엔 오히려 유난히 한반도에 맹렬한 한파가 몰아쳤다. 영화 10~15도 이상의 냉기온이 장기간 지속돼 한강이 역대 급으로 얼어붙고, 세계적인 올림픽 개막식 당일, 강추위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만의 추위로 온 국민이 고생했지만 자랑스러운 올림픽 개최와 역사적인 남북 간의 훈풍이 날아와 마음만은 한결 따듯한 겨울이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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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나름, 겨울축제의 역발상

겨울이 꼭 추워야만 겨울일까?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연일 폭염이다. 크리스마스엔 해변에서 어울리지 않게 수영복 팬티 차림의 산타가 등장하고 비키니 입은 매력적인 관광객들이 환호하며 즐긴다. 매년 시드니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근처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새해맞이 불꽃축제가 열리는데 올해에는 안타깝게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최근에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산불이 발생해 전국에 피해가 막대한 상황이다 보니 그렇다.

경상북도 봉화군에는 하루 10여 명 남짓 방문하던 작은 간이역 분천역 일대에 산타마을이 조성됐다. 서양의 산타와 하등 관계가 없는 작은 오지마을에서 생뚱맞게 한겨울이면 산타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촌(村) 마을 중 하나인 이 마을은 유명한 핀란드 산타마을인 로바니에미를 본떴는데 산골마을에 산타 썰매도 다니고 주민들은 산타복장을 하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2014년 시작된 이 축제는 현재 매년 10만여 명이 찾는 인기 축제로 자리 잡았다. 

최근 충청북도 제천시의 겨울벚꽂축제가 주목받고 있다. 봄철 벚꽃도 아닌 겨울벚꽃이라니. 제천이 전국에서 벚꽃이 제일 늦게 개화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콘셉트를 따왔다. 물론 한겨울에 실제 벚꽃이 필 수는 없지만 거리의 조명으로 벚꽃을 만들고 얼음으로 축제를 꾸몄다. 다른 겨울축제와 내용은 크게 다르진 않더라도 발상의 전환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겨울에도 연인들이 자주 찾는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은 명실공히 사계절 인기 관광지다. 봄부터 가을까지 성수기엔 발 디딜 틈 없는 대호황을 누렸지만 겨울철엔 어쩔 수 없이 유령마을처럼 공치는 신세였다. 

겨울철 텅 빈 정원이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된 ‘꽃 없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거듭나면서 명성을 날렸다. 아마도 지금은 흔해진 전국 대부분의 불꽃(등)축제의 원조 격이라고 할까. 별빛축제, 빛축제, 오색등불축제 등 수많은 축제가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은 평년이면 한 겨우내 눈을 구경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싸라기눈이라도 올라치면 반가울 정도로 눈과 얼음이 귀한 지역이라 겨울엔 마땅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하지만 독특하고 색다른 트렌드를 찾는 현대인들 덕분에 해운대 북극곰축제는 해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북극도 아닌 해운대에서 있지도 않은 북극곰이 캐릭터로 살아났다. 남녀노소 매서운 날씨에 바닷물에 ‘풍덩’ 들어가는 짜릿한 희열과 함께 이색 겨울축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겨울도 생각하기 나름, 언제까지 하늘과 자연을 탓할 것인가? 눈과 얼음이 있다면 있는 대로 없으면 그 자리에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채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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