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엉뚱해 보이는 생각도 자꾸 발전시키다 보면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이 하늘을 날겠다고 이런저런 기구를 만들다 보니 몇십년도 지나지 않아 제대로 된 비행기가 나온 것처럼 그런 노력들이 쌓이면서 사회는 진보해왔다.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모든 사람이 전면 무상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0여 년 전 무상 급식이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낙인효과를 방지하는 교육적 효과가 강조됐지만, 사실은 젊은 학부형 세대에 대한 소득 재분배 목적도 컸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대한 논쟁을 거치면서 지금은 보편적 복지가 대세가 됐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과 청년들에게 각종 현금성 수당을 지급하면서 포퓰리즘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필자는 이렇게 여러 지원을 할 바에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교통 복지'라고 해서 수익성이 나지 않는 노선이나 지하철에 보조금을 주고 있고, 시내버스는 준공영제를 실시하며 부가세, 유류세 등 각종 세금을 감면하고 그린벨트에 주차장을 허용하는 특혜도 부여하는 등 국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수급자에게 교통비를 감안한 생계비 지원, 노인, 장애인, 보훈대상자에게 할인 또는 무료 이용 혜택을 주고 있다. 이제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모든 사람이 전면 무상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검표를 하지 않는 나라들을 여행하게 됐다. 아예 돈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고, 관광객은 하루, 현지 주민들은 1년 치 패스를 사는 방식으로, 불시에 검표를 해서 단속되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차를 타고 내릴 때 혹은 지하철에 들어갈 때 굉장히 편리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카드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승강구로 가다가 비틀거릴 염려도 없고, 오르내릴 때 시간이 지체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편리함을 경험하고 나니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다니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생각의 발단은 이러하지만, 다른 무상복지 지원을 보면서 무상 대중교통이 오히려 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상 대중교통의 이점


첫째, 대중교통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므로 직접적인 소득지원으로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다. 둘째, 승용차와 택시 운행이 감소해 교통 체증과 유류 소비를 줄이며,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등 환경오염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출퇴근시간에 서울로 오가는 고속도로는 거의 주차장 수준이다. 그것도 나 홀로 차량이 대부분이라 버스 한 대로 승용차 30~40대를 줄일 수 있다면, 승용차도 시간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자율주행차와 차량 공유가 더해지면 장기적으로 도로 건설 비용이 줄어들고, 빌딩과 아파트, 도심의 주차장 공간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된다.

셋째로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면 연간 4천 명씩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자와 30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크게 줄어들어 사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완전 공영제를 활용하면 대중교통의 안전성과 편리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검표를 하지 않아 이용이 편리해질 뿐만 아니라, 국가가 시설과 운영을 책임짐으로써 현대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교통수단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면 품질이나 효율이 떨어질 것으로 걱정할 수도 있으나, 필자는 수익자 부담 방식의 요금제를 기반으로 하는 현행 제도가 오히려 충분한 투자를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서민 부담을 고려해 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제하고, 손실분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하는 현재의 방식은 필요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재정 당국은 재정 자립과 운영 효율화를 독려하기 위해 지원 예산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노선별 독점력을 가진 사업자는 투자와 서비스 향상에 노력하지 않게 된다.

시민들도 원가 이하의 싼값으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고품질의 충분한 서비스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가 시내버스를 완전 공영화해서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지하철도 차량을 대폭 확충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 유럽처럼 약 1분 간격으로 운행해 혼잡을 줄일 수 있다. 초중등학교를 사실상 무상으로 하면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콩나물 교실은 없어지고, 시설도 선진국 수준이 됐다.

.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퇴근 시간의 수도권 광역버스는 40년 전의 통학버스를 연상케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대중교통의 현실


출퇴근 시간에 수도권 광역버스나 서울 지하철을 타보면 40년 전의 통학버스가 연상된다. 당시에는 여자 차장이 학생들을 버스 안에 밀어 넣었지만, 요즘은 차에 올라타지 못해 버스를 그냥 보내거나 버스 종점으로 거꾸로 올라가서 타고 오는 정도로 바뀌었다.

지하철에서는 다음 열차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매일 들린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가장 낙후된 부문 중의 하나가 대중교통이다. 일제 강점기의 택시 사납금제도가 아직도 있고, 차량공유 서비스가 불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정말 어려운 서민들이, 특히 공부 혹은 일하러 나가는 젊은이들이 힘들지 않게 다니도록 국가가 대중교통을 책임지고 과감하게 투자해서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국민에게 제대로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차 막힌다고 고속도로를 확장해서 더 큰 주차장으로 만들지 말고, 대중교통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데 돈을 써야 한다.

한편으로는 정책결정자들이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소외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공직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이렇게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걷어서 어려운 사람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하지 않을까? 대중교통 무상화는 소위 말하는 '일하는 복지' 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다


무상 대중교통의 과제


무상 대중교통을 실시하려면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는 재원 조달의 문제다. 통계청의 2018년 운수업 조사 통계에 따르면 시내버스와 지하철의 매출액이 약 10조 원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을 우리나라 인구 수로 나누면 일인당 19만 원 정도다. 택시, 기차, 비행기값은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예산에 따르면 국세 292조 원과 지방세 96조 원을 합해서 388조 원을 세금으로 걷어서 일인당 조세부담액은 약 750만 원이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은 제외돼 있다. 국민의 조세부담액에 비하면 일인당 20만 원 수준인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하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수요 증가와 혼잡 해소를 위한 투자 소요를 감안하더라도 일인당 30~40만 원, 전체적으로 20조 원을 넘지 않는 수준일 것이다. 재원은 소득세나 유류세, 승용차 개별소비세뿐만 아니라 저소득층도 부담하는 주민세 등을 망라해서 가급적 많은 국민이 부담하도록 잘 설계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일부 재원은 도로 건설과 교통비 보조 등 기존 예산에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고소득층이라도 가족 중 학생 또는 친척이 이용할 것이고, 승용차 운행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조세저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문제는 대중교통 수요가 급증하면 차량과 주차장, 운영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선투자가 필요한 부분이고, 출퇴근 시간 이외에는 유휴 시설이 발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우리의 기술과 경제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관련 인력의 신규 고용이나 생산 유발효과는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

세번째 문제는 택시 등 대체 교통수단의 수요 감소다.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공짜가 되면 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택시 요금을 적절히 인하하고 수요 변화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준공영제 형태로 가야 한다. 아울러 승용차 판매가 감소하고 휘발유 소비가 감소해서 관련 업계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외부효과를 감안하면 이런 문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민간기업이 운영해오던 버스운송을 공영으로 전환할 때 생기는 사유재산 문제와 국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권을 교육, 주거와 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 국가의 적극적 책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각종 인허가와 요금 규제, 보조금 등으로 시장의 경쟁과 자율, 창의를 극도로 제한한 결과,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수익자 부담 원칙하에 수지 균형을 강조하며 과소 투자를 유발해온 기존 체제를 바꾼다면 국가 직영 대신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공영제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사회복지기관처럼 민간에게 위탁 운영해 창의와 경쟁 요소를 도입할 수도 있다.

한편, 대중교통이 '공짜'가 된다면 과소비로 인해 지나친 혼잡과 낭비가 생길 것으로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 이용에는 소비자의 육체적 활동과 시간이 직접 소요되기 때문에 과소비 문제는 크지 않을 것이다.

박물관, 미술관,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 무상 급식이 실시돼도 과소비가 생기거나 질이 저하되지 않았다.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과소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무상 대중교통을 세계적 혁신사례로


무상 대중교통이 되면 국민들이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어 오히려 경제도 활성화되고, 특히 외국 관광객에게 아주 편리함을 제공할 것이다. 대중교통은 국민이 직접 피부로 접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편리한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납세자가 감시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처럼 일부 대상자에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요금을 세금으로 대체하여 모든 국민이 부담하고 이용하는 것이므로 시민의 권리로서 요구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행정 서비스 중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것이 많이 있다. 

대법원, 국세청, 주민센터 등의 전자정부 서비스는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대중교통 환승 서비스도 나름 성공한 사례인 점을 감안할 때, 국가가 직접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시스템도 세계적인 혁신사례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단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따뜻한 봄날이 오기 전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소통하다 보면 머지않아 이루어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한국M&amp;A협회 김규옥 회장<br>
한국M&A협회 김규옥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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