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용관 대표는 창업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20년 전 기술 기반 기업인 플라즈마트를 창업해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인 엠케이엠케이에스(MKS)에 300억 원에 매각하며 투자회수(Exit·엑시트)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액셀러레이터로 탄탄하게 뿌리 내린 이 대표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만났다. 

 


지원 사각지대 놓인 기술 창업자


“플라즈마트를 매각한 뒤,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2년을 보냈어요. 창업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결국 창업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플라즈마트를 창업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창업환경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기술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양질의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고, 기술 실행을 위한 네트워크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기술 창업가들이 경험한 유산이 아래로 다운로드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경험이 이제 막 창업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정제된 콘텐츠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험자본인 벤처캐피탈도 시장에 진입하고 성과가 난 후에야 관심을 갖기 때문에 창업부터 시장 진입 전까지의 구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업환경의 변화


이 대표에게 20년 전과 현재 창업환경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자 그는 달라진 점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직업에 대한 대안으로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중요한 선택지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 모수가 많아지고, 양질의 창업 역시 늘고 있으며, 투자 자본이 다양해졌습니다.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주체는 엔젤투자자, 제도권 벤처캐피탈이 전부였는데, 액셀레레이터, 마이크로 벤처캐피탈,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등으로 다양해졌습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창업에 관심 있는 주체들,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주체들이 다양해진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같은 맥락에서 산업 지형 역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산업 수익 구조가 취약해지면서 전통산업을 고수하던 대기업, 중견기업들의 새로운 사업모델과 성장엔진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것.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M&A를 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습니다. 이는 10년 전만 해도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액셀러레이터의 역할


그렇다면 달라진 창업 환경 속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액셀러레이터는 자본을 투자하기보다는 초기 창업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액셀러레이터는 실행력을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조직 갈등, 자본 조달, 사업 실행 등의 문제들이 중요합니다. 성숙기 혹은 중기 벤처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은 특별한 전문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 특화된 경험과 지식, 그리고 해결에 도움이 될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액셀러레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함께 한 130여 개 스타트업들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체의 점에 레이저를 쏘면 점 표면에서 플라즈마가 생겨서 빛이 나오는데, 이 빛의 성분을 분석해서 점과 피부암을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스페클립스는 중견기업에 M&A 됐다. 

최근에도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화장품 용기는 끈적한 화장품을 세정하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리사이클이 되지 않고, 대부분 버려지고 있는데, 이너보틀에서는 화장품 용기를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용기를 제작했다. 이너셀과 바깥 압력을 견디는 아우터셀을 분리해서 용기를 만들기 때문에 사용자는 화장품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쓸 수 있다. 

또한, 소가 아닌 고기의 세포만 길러서 배양육을 만들고 있는 씨위드, 악성 바이러스·포르노·마약 등을 다루고 있는 다크웹 중심 멀티도메인을 분석하는 에스투더블유랩 등을 액셀러레이팅하고 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에서 이용관 대표가 강연하고 있다. (출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에서 이용관 대표가 강연하고 있다. (출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스타트업의 답답함 풀어줄 데모데이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는 액셀러레이팅의 일환으로 개최 시마다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블루포인트 데모데이'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표는 '블루포인트 데모데이'가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선함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데모데이는 회사의 비용 관점에서 보면 효율적이지는 않습니다. 예산이 많이 들고, 오프라인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달라고 요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데모데이를 개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비스 관련 스타트업들은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공유가 많이 돼 있어서 배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은 반면, 기술 창업자들이 배울 수 있는 사례나 콘텐츠는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창업 당시 많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술 스타트업들에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기술 창업은 회수까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모험자본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벤처캐피탈들에게 투자 가치가 높은 기술 관련 스타트업들을 소개해서 투자 유치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2019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2019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스타트업이 주인공 돼야”


이 대표는 국내 데모데이 혹은 투자설명회(IR) 피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데모데이 기획 자체가 잘못되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행사에 동원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데모데이가 스타트업 사업의 목적과 방향에 맞아야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동원된다는 느낌이 들면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재는 민이든 관이든 이런 행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행사 주최 측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서 행사 준비를 하고, 행사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하지 않도록 절제 있게 행사를 개최해야 합니다.”

 


이용관 대표는···

카이스트(KAIST) 물리학 박사 출신인 이용관 대표는 2000년, 반도체 장비 핵심 기술인 플라즈마의 발생·검사 및 측정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플라즈마트를 창업했다. 2012년 7월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 엠케이에스에 회사를 매각했고, 매각 회수 자금으로 2014년 7월,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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