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출세 코스가 중국에서 부활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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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대표적 관료임용제도로는 과거제도가 있다. 관료에 임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보통 3년마다 각 지방에서 개최되는 향시(鄕試)에 합격한 이들을 거인(擧人)이라 하고, 향시가 개최된 다음 해에 수도에서 회시(會試)를 개최해 합격한 이들을 공사(貢士)라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황제가 개최하는 전시(殿試)에 참여해 1등은 장원, 2등은 방안, 3등은 탐화, 그 외는 진사로 불리며 각 순위를 가려 관직에 임용됐다. 한 지방의 응시자만 해도 수만 명인 만큼, 향시에만 합격해도 그 지역에서 지식인으로 대우받는 등 과거시험은 대다수 중국인의 출세 코스였다.

과거제도는 없어진 지 오래지만 중국의 스타트업 경진대회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타트업 대국을 꿈꾸는 중국은 피칭데이, 창업대회, 데모데이 등의 수가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규모가 크고 유명한 대회를 뽑으라 하면 중국창업창신대회가 있다. 

보통의 피칭데이가 정부기관, 기업, 대학, 지방정부에서 소규모로 주최하는 것에 비해 창업창신대회는 중국 중앙정부의 많은 부서들이 함께 참가해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과학기술부, 교육부, 재정부, 국가IT판공실과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공청단 등 주요기관들이 합동으로 ‘과기창신, 성과대업(科技创新,成就大业)’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국 규모의 창업대회를 주최한다.

한편, 7월에 열리는 지방예선을 통과한 기업에만 11월 전국 본선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참가 기준도 높지 않다. 공평한 수상기회를 위해 예비창업 기업(创业组, 창업리그)과 기존의 사업을 벌이던 기성기업(成长组, 기성리그)으로 나뉜다. 

다만, 참가 스타트업은 위치해 있는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성급대회)에 참가해 우수기업상 이상의 수상을 해야 한다. 지방예선은 보통 7, 8월에 진행되고 지방정부가 주관한다. 전국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예선이지만, 지방정부가 주는 상금 및 입상혜택이 있다. 

지방 상금 규모는 어떨까. 저장성에서 책정한 작년도 지방예선 상금 총액은 1,670만 위안(약 28억 원)이었고, 션젼시 예선에서는 기성리그에 1등 상 50만 위안, 2등 상 40만 위안, 3등 상 20만 위안, 우수상 10만 위안을 수여했고, 창업리그에도 등수별로 30만, 20만, 10만, 5만 위안의 상금을 수여했다.

전국대회 참여자격과 우승상금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폰서기업과 지방정부마다 다르지만 우수기업은 은행 융자, 인큐베이팅 등의 서비스 혹은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로컬 인터넷신문사 더 페이퍼(The paper)에 의하면 광저우 지역예선 참가 225개 기업은 총 11.4억 위안(한화 약 2,0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 중 최대 규모는 Xielu(广州携旅信息科技有限公司)사가 받은 지원으로 1,000만 위안의 여신금융이다. 이뿐만 아니라 투자회사로부터 1억 위안의 투자도 받았다. 해당 회사는 호텔업 운영 관련 정보기술(이하 IT)을 가지고 기성리그로 IT 종목에 출전해 전국대회에서 우수기업상을 받았다.

실제로 중국 바이두에 스타트업을 검색하면 중국의 적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몇 년도 대회의 무슨 종목 지방대회 입상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걸어놓는다. 이는 기업의 지명도 상승과 투자 유치를 위한 좋은 발판이 돼 준다. 

전국대회 상금도 적지 않다. 2019년 대회의 경우, 기성·예비창업 리그별로 1등 상은 200만·100만 위안, 2등 상 150만·60만 위안, 3등 상 100만·30만 위안 등으로 책정됐다. 지방예선의 상금까지 포함하면 상당하다. 상금 외에도 스폰서인 초상은행의 융자지원액만 해도 266억 위안(한화 약 4조 5천억 원)에 달한다. 

 

37개 지역예선 구, 총 3만 개 스타트업 참여, 1,400개 기업만 본선 진출

많은 지원으로 인해 참가기업 규모도 적지 않다. 중국신문망(中国新闻网) 보도에 의하면 2012년 최초로 개최돼 2019년 제8회를 맞는 중국창업창신대회 전국대회가 광둥성 광저우시에서 10월에 개최돼 12월에 종료됐다. 

37개의 지방예선 참가기업을 포함해 총 30,287개 스타트업이 참가했다. 참여 종목도 다양한데 바이오 항목을 시작으로 IT, 제조업, 신소재, 인터넷, 신재생에너지 항목으로 차례로 진행됐다. 이 외에도 지역예선 없이 별도로 진행되는 차세대반도체, 홍콩마카오타이완특별대회, 중소기업융자대회 등도 있다.

대회에 출품된 지식재산권 항목만 해도 작년에 비해 2.5만 항목이 증가한 약 18만여 항목에 달한다. 연구 개발(R&D) 인력만 해도 약 32만 명으로 참가기업 직원 총 수의 35%에 달한다. 이 중 지방대회를 통과한 1,400개 기업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종목별 참가기업도 다양하다. 바이오 종목에만 참가한 3,700개 기업 중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178개의 기성기업과 55개의 창업기업만이 참가 기회를 얻는다. 본선에서 8분의 투자설명회(IR) 피칭과 7분의 질의응답 시간만으로 99개의 수상기업이 선정된다. 이 중 9개의 기업만이 입상하고 나머지 90개 기업은 우수기업상을 받는다.

바이오 항목 창업리그 1위는 치디엔(Qidian)제약회사(奇点医药科技有限公司)로 이식용 신체기관의 기능을 24시간 동안 보전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또 다른 기성리그 1위는 더치(Deqi·德琪医药科技有限公司)제약회사로 신종항암제를 출품했다. 

1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2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2019년 11월 28일 열린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3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 중소벤처기업부)
1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2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2019년 11월 28일 열린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3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 중소벤처기업부)

로컬 스타트업 육성 성과 보여주는 성적표로 활용

지방정부도 대회 결과에 큰 관심을 가진다. 장쑤성에서는 총 54개의 수상기업 중 10개가 짱쑤성의 기업이라며 수상기업 수 1위를 차지한 사실을 자랑한다. 상하이는 IT 분야에 참여한 기업이 2,500여 개로 타 지역의 총합보다 많다고 자랑하고, 심천은 인터넷 분야 참여기업 수가 1위라고 자랑한다. 이처럼 각 지방정부에서는 스타트업 정책의 성적표로도 활용한다. 지방정부들은 결과를 토대로 경쟁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로컬 스타트업 육성 토양을 만들어간다.

현 중국 지도부는 “국가 번영은 국민의 창조력 발휘에 달려 있고, 경제 활력 또한 취업과 창업, 소비의 다양성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창업과 혁신을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2014년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대중창업 만인창신(大众创业 万众创新·모두가 창업하고 모두가 혁신하자)”의 슬로건 아래 정부 각 부처는 창업과 혁신을 국가발전의 주요 이념으로 삼고 대대적인 정책적 지원을 쏟고 있다.

이처럼 대회는 중국 중앙정부의 큰 관심 속에 진행된다. 중앙정부인 국무원이 각 지방정부와 중앙부처를 상대로 2018년 9월 발표한 ‘창신창업 질적 발전을 통한 창신창업 업그레이드에 대한 의견(国务院关于推动创新创业高质量发展打造“双创”升级版的意见)’에 이러한 문구가 있다.

“각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부처, 각 직속기관에게. 혁신(创新)은 발전의 제1동력으로, 현대화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략적인 발판이다. 최근 ‘대중창업 만인창신’은 더욱 크고, 높은 차원에서 심도 깊게 진행되고 있다. 혁신창업은 경제사회발전과 깊이 융합돼 새로운 성장동력의 전환, 경제구조의 질적인 향상, 취업률 증가, 민생경제 개선, 기회의 공평과 사회의 흐름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창업의 질적 발전과 창신창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이러한 문구를 시작으로 국무원은 총 32개의 조치와 조치별 담당부처를 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의 일환 중 하나가 바로 중국창업창신대회다. 이러한 정책들을 통해 중국정부의 창업대국에 대한 큰 관심을 엿볼 수 있으며, 중국의 혁신경제성장 행보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스타트업으로 중국을 뛰어넘으려면

국내에는 전국 규모의 스타트업 경진대회가 없을까? 국내에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고,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방부가 합동으로 진행하는 ‘도전! K-스타트업’이 있다. 올해 4회째를 맞이하는 이 대회에는 약 3,900여 팀이 참가해 최종 20개 팀이 수상했다. 수상기업에는 총 13억 5천만 원의 상금과 창업패키지사업 지원, 연구개발 융자 등의 사업혜택 등이 제공된다.

물론 한국의 시장규모, 인구수, 창업기업, 기술 수준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질적인 면에서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스타트업 대국을 위해 이미 8회째 대규모로 창업대회를 진행하고, 지방마다 경쟁을 통해 로컬 기업들을 성장시키는 것을 보면 한국이 스타트업으로 중국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쯤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정부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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