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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송의 레이버인사이트] 노사자치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
[임무송의 레이버인사이트] 노사자치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
자율과 책임의 노사문화 바로 세워야
  •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
  • 승인 2020.03.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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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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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노사합의보다 개인 동의가 우선한다는 대법원

진영대립과 정쟁으로 뜨거웠던 2019년 11월 14일, 대법원은 노사관계의 기본인 ‘노사자치’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조의 동의를 받았더라도,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개별적 근로계약이 우선한다고 한 것이다. 

문제가 된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근로자인 갑(甲)은 골프장, 스키장 등을 운영하는 을(乙) 주식회사의 직원으로 2003년부터 2016년경까지 근무했는데, 2014년 3월경 기본 연봉을 ‘70,900,000원’으로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을은 소속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2014년 6월 25일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임금피크제 운용세칙’을 제정했다. 이 운영세칙에 따르면, 정년이 2년 미만으로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기준연봉(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연봉)의 60%를, 정년이 1년 미만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기준연봉의 40%를 지급하게 된다. 

을이 2014년 9월 23일, 갑에게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라 삭감된 임금 내역을 통지하자, 갑은 임금피크제의 적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이후 삭감된 임금을 지급받자 기존 연봉계약에 따른 임금과 을이 지급한 임금 사이의 차액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제1심(수원지방법원안양지원)과 제2심(수원지방법원)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며 갑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으나, 대법원(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이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하므로 근로계약에 따른 연봉이 적용된다고 판단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 판결, 왜 무엇이 문제인가? 

근로기준법 제5조는 “근로자와 사용자는 각자가 단체협약,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을 지키고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조건에 관해 상위규범과 하위규범이 충돌할 경우에는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법령>단체협약>취업규칙>근로계약의 순으로 적용되고, 같은 순위의 규범 간에 충돌이 있으면 ‘특별법 우선의 원칙’과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처리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근로계약과 취업규칙 사이에 충돌이 있는 경우 하위규범이라도 근로자에게 유리한 것이 우선한다는 것이어서 뜨거운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데, 학계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실상 같은 사안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었다는 점이다. 기존 판례는 개별 근로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하더라도 ‘취업규칙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약칭하면 ‘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즉, ‘집단적 동의’)를 거쳐 적법하게 변경됐다면, 변경된 취업규칙은 근로자 개개인의 동의를 얻을 필요 없이 유효하며, 따라서 새 취업규칙은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동의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즉, 그 근로자가 반대했더라도) 해당 근로자에게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는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합법적으로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근로계약이 더 우선적으로 적용된다고 봤다. 

둘째, 이번 판결은 집단적 동의가 있으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94조의 취지에도 반한다. 근로기준법의 집단적 동의 절차는 근로자 개인, 다수의 근로자집단, 그리고 사용자 사이의 이해갈등 조정장치로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 시 도입됐다. 일본법에서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법은 더 까다로운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에 더해 근로자에게 두터운 보호막을 추가로 쳐 주었다. 

셋째, 집단적 노사자치의 핵심인 단체협약과 개별적 근로계약의 우선 순위에 있어서도 불확실성이 생겼다. 이번 판결 사건의 경우 사용자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했는데, 이는 사실상 과반수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3조 제1항에 따르면 단체협약에 위반하는 근로계약은 무효이고, 대법원도 단체협약으로 기존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해 왔다. 

이는 개별 근로자는 종속적 지위에 있으므로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단결권을 보장하고,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법률에 준하는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는 협약 자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례대로 한다면 단체협약으로 정한 근로조건이 근로계약보다 불리한 경우에도 근로계약이 우선한다는 것인지가 불확실하다. 자칫하면 노동조합과 집단적 노사자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근로계약을 우선할 것이라면 근로기준법의 집단적 동의 제도나 노동조합법의 단체협약 우선 조항도 굳이 둘 필요가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넷째, 취업규칙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 즉, 일부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금제도를 적용할 수 없다면, 다수의 근로자가 소속돼 있는 일터에서 통일적인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절차와 함께 개별 근로계약의 변경(개별적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 노무관리 비용이 증가하고, 노사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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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사법화(司法化)와 사법의 정치화(政治化)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줄줄이 수사기관과 법원으로 가져가는 ‘노동의 사법화’가 심화되면서 ‘노사자치’는 설 자리를 잃고, 정권과 판사 성향에 따라 판결이 오락가락하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결 수용 여부가 달라지는 ‘사법의 정치화’가 이슈가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노동 관련 소송은 2018년보다 21.8% 증가한 580건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많았고, 특히 현 정부 출범 2년 차인 2018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9년 판례 가운데 학계와 노사의 주목을 받았던 몇 가지 사례를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낳고 있는 최근의 흐름과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먼저 통상임금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한 합의체 판결로 사전에 확정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노사간에는 신의성실원칙이 적용된다는 통상임금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데 2019년 대법원은 신의성실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서울고등법원은 재직자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산입시키는 등 기준을 바꾸고 있다. 불법파견의 인정 범위도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세이브존, SK텔레콤, 한국도로공사 등의 사건을 통해 제조업에서 공공·정보기술(IT)·유통서비스 등 비제조업으로 넓혀 사실상 모든 하청근로자의 업무가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학습지 교사, 우정사업본부와 도급계약을 맺은 재택위탁 집배원,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계약을 맺은 상수도 계량기 검침원, 사찰에 기거하며 청소와 정리를 돕는 처사, 아이 돌봄 서비스 기관에 소속된 아이 돌보미, 철도역사 매점운영자, 자동차 판매위탁계약을 맺은 카마스터 등이 근로기준법 또는 노동조합법의 근로자로 인정됐다. 

육체근로자의 정년을 60세에서 연장한 것이나, 발레오만도, 유성기업, 삼성에버랜드 등의 사건에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판결은 위의 사례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지만, 과거에 비해 노동계에 전향적인 판례로 분류된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산업별, 기업별, 직무별로 상이한 특성과 다양성, 그리고 노사의 자율권을 제약하는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규제적 개입 확대는 채용절차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고용규제 강화,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상한제, 최근 바뀐 판례법리를 적용한 근로감독 강화 등 고용, 임금, 근로시간으로 이어지는 노동관계의 전 영역에 걸쳐 입법, 사법, 행정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노사합의에 의한 자치를 부정하는 획일적 강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우려되는 것은 정치와 밀접한 국회나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마저 농단과 적폐 시비의 대상이 됨에 따라 법원의 판결이 유불리와 진영논리의 프리즘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도 수용하지 않고, 정치권이 가세한 정치적 압력을 통해 요구를 관철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사법제도가 분쟁의 종국적 해결방안으로 기능하지 못한 법치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잉 규제는 절제하고, 노사자치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어떤 명판결보다 화해가 낫다’는 법언이 있듯 갈등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지만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려면 승패를 가르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이 우선돼야 한다.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진 선진국들이 노사문제에 대한 국가의 직접 개입을 자제하고 ‘노사자치주의(voluntarism)’ 전통을 유지하며 협약 자치를 보장하는 이유다. 대립과 갈등의 첨병 역할을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노사관계가 상생과 협력, 창의와 혁신의 운동장으로 변화하려면 그 출발점은 노사 자치가 돼야 한다. 

우선 법관은 사회정의 실현을 명분으로 주관적 소신이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왜곡된 엘리트 의식과 사법 적극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치인과 행정공무원 역시 공정한 게임의 룰 설정과 균형된 집행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적 개입은 진영 갈등을 야기하고, 자유와 민주를 제약하는 전체주의의 맹아가 될 수 있다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책은 선의로 포장된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사 스스로 노동의 사법화는 자치주권의 방기와 자기부정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자율과 책임의 노사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하겠다.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

1988년 제3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조정담당), 경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선임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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