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바뀐다. 겉으로는 집단의 통념에 따라 세상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념은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은 맞지 않다. 지도자에 따라 국민의 의식도 달라진다. 

인류의 역사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도자는 국민이 만드는 게 아니다.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도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지도자는 위기 속에서 탄생한다. 

인류 역사상 많은 지도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중에는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인류에게 해악을 크게 끼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지도자도 많다. 슬기로운 지도자는 듣는 귀가 있었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듣지 않아 망했다.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지도자를 모시고 산다. 국가의 지도자든 개인의 스승이든 지도자는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다. 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이 달라진다.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지만 나중에는 선택된 지도자가 국민을 좌지우지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서아시아 국가들의 지난 역사는 종교와 정치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유럽도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과연 어떤 지도자가 나타나 그 나라를 이끌었느냐로 귀결된다. 

물론 주변 열강국들의 영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각 나라의 지도자들의 역량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다시금 지도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독재자들은 당연히 남의 말을 절대 듣지 않았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흔히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평소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보면 된다고 한다. 개인이 멘토를 모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지면 멘토를 모실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역량을 더욱 키우기 위해 멘토를 모시려는 간절함이 있으면 성숙하고 발전한다. 우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책이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 지나간 역사적 인물이 멘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재 자신의 가까운 거리에 멘토를 모시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멘토라고 해서 전 인격적으로 그에게 배울 이유는 없다. 어느 특정 분야에 국한해서 멘토를 모시면 상대적으로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 멘토를 모시는 이유는 한 가지다. 겸허하게 듣기 위함이다. 

국민이 국가의 지도자를 선택하듯 개인도 멘토를 지정해서 모시는 것이 유익하다. 개인이 모시는 멘토에게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분야를 지정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리는 취사선택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분의 멘토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날에는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오판해서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은 분야별로 멘토를 모시고 있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배울 점이 있으면 멘토로 모신다. 

요즘은 신세대 멘토도 모신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젊은 멘토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나이 들어 멘토를 모시기로 작정한 것이 무척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서 듣는 것이 항상 즐겁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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