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의 선출원주의와 선사용주의

유명 유튜버인 펭수의 상표권을 제3자가 먼저 출원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출처 EBS)
유명 유튜버인 펭수의 상표권을 제3자가 먼저 출원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출처: EBS)

유명 유튜버인 펭수의 상표권을 제3자가 먼저 출원해서 난리다. 상표 브로커의 도덕적 이슈를 차치하고, EBS 또한 상표 논란이 벌어질 때까지 상표출원을 하지 않았다. 권리자의 출원 또한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펭수는 이미 일반인들에게 너무 유명하다. 과연 펭수는 이름을 바꿔야 할까? 상표의 선출원주의와 선사용주의에 관한 얘기다.


선출원주의와 선사용주의


선출원주의란 먼저 상표를 출원(신청)한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고, 선사용주의는 상표를 먼저 사용한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다. 얼핏 선사용주의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등록된 상표들이 선사용 상표에 의해 언제든지 무효가 될 수 있다면 권리가 지나치게 불안정해진다는 문제 또한 작지 않다.

한국은 절차의 안정성을 중시함으로써 선출원주의를 채택한 바 있다. 상표법 35조 제1항, 34조 제1항 제7호에 따르면, 선출원 또는 선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게 규정돼 있다.

따라서 먼저 사용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먼저 출원해서 권리를 획득한 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선출원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쓰지도 않을 상표를 먼저 출원해두고 경고장을 보내는 상표브로커, 상표사냥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상표를 먼저 사용한 자에게 소정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선사용주의를 일부 채택하고 있다.

1. 선사용권

선사용권은 상표법 제99조에 규정된 권리로, 먼저 사용해 소비자들에게 인식된 상표는 먼저 출원돼 등록된 상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용할 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다.

2. 상표 부등록사유

상표 부등록사유란 상표법 제34조에 규정돼 있다. 먼저 사용해 소비자들에게 인식된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과 유사한 상표를 거절하고, 등록될 경우 무효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사용상표를 보호하는 거절사유는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6호, 제9호, 제10호, 제11호 및 제13호에 규정돼 있다.

(출처 필자본인)
출처: 필자 본인

6호와 11호는 전국의 수요자에게 저명하거나 현저한 인식 정도를 요구한다. 9호와 12호는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돼 있을 정도를 요구한다. 13호는 선사용상표의 인식의 정도는 수요자들에게 인식되기만 하면 돼 인식의 정도는 높지 않으나 출원인이 부정한 목적이 있어야 본 조문이 적용될 수 있다. 실무적으로 13호를 이유로 다툴 때 부정한 목적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가장 주요한 쟁점이 된다.

선사용주의의 한계

선사용권은 사용한 상품에 그대로 사용, 확대 변경이 어렵다. 또한, 선사용권은 소송에서 인정되는 항변권이다. 즉, 변호사 선임비용이 들어가며 항상 인정되지 않는다. 또 출원된 상표에 선사용상표로 인한 거절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심사관이 먼저 사용된 상표를 모두 알기는 어려워 이를 간과해 등록될 수 있다. 그 경우 무효심판이라는 행정심판제도를 통해서 구제받을 수 있지만, 역시 변리사 선임비용이 들어가며 항상 이길 수는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제3자가 출원한 펭수 상표, 등록될 수 있을까?


‘펭수, 펭하, 자이언트펭, 펭바’ 등을 키워드로 펭수를 검색한 결과 14건이 검색됐다. 당초 브로커로 문제가 됐던 출원인뿐 아니라 이미 여러 출원인이 2019년 후반부터 펭수와 관련된 출원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펭수의 경우 크게 논란이 됐기에, 특허청에서 이례적으로 이들의 펭수 관련 상표 출원을 '상표 선점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득하려는 부정한 목적이 있는 출원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아직 심사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심사관들이 이들의 상표 출원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상표를 먼저 출원한다고 모든 상표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정인의 상표라고 이미 인식된 상표라면 거절될 수도 있고, 등록됐다 하더라도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유튜브 채널명인 자이언트펭 tv는 상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시리즈물의 제목은 상표로서 기능한다는 판례에 따르면 펭수 역시 일단 상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이언트펭 tv’ 나 펭수 모두 유사한 상표를 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펭수의 유행어인 ‘펭하’나 ‘펭바’는 어떨까? 상표법적으로 살펴봤을 때, ‘펭하’와 ‘펭바’의 경우 상표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유행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과 유사하다고 해서 바로 거절사유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허청에서는 펭수의 인기에 힘입어 ‘펭하’와 ‘펭바’를 모두 상표로서 알려졌다 판단한 후, 이들과 유사한 상표를 모두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므로 지켜봐야 한다.

(출처 특허청 보도자료 일부 수정)
출처: 특허청 보도자료 일부 수정

특허청에서는 2020년 1월 13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무임승차, 가로채기 상표출원에 대해 상표심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표 트렌드 분석 사업 등을 통해 이슈가 되는 용어 캐릭터에 대해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분쟁의 소지가 있는 용어를 사전에 선별해 심사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펭수의 경우 캐릭터의 명칭에 불과하며 특정인의 상표로 알려졌다고 보기에 조금 어색한 감은 있다. 하지만 워낙 인기가 전국적이라 이를 가로채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상표심사관들은 상표 심사를 위해 네이버, 구글 등에 검색을 하기 때문에 아마 별다른 조치가 없었더라도 거절됐을 가능성이 높다.

펭수와 같이 유명한 상표는 보호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상표는 상표법상 거절이유로 거절하거나 무효사유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선사용권도 어느 경우에나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표를 변경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등 제약이 따른다.

50만 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1~2천만 원을 더 들이거나 지금까지 쏟아온 브랜드 가치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상표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번 펭수 사건은 사업주들에게 상표를 서둘러 취득하라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의미가 있다. 즉, 잘나가는 펭수 걱정 말고 자기 상표는 잘 보호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경민 변리사
정경민 변리사

정경민 변리사

도울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chungkm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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