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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냥대다 닮는다?


무보수 명예직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결혼 수당 남녀 각 5천만 원 총 1억 원 지원하고 주택자금 2억 원 평생 무이자 지원, 출산 시마다 5천만 원 출산수당 지급, 전업주부수당 100만 원 지급,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70만 원씩 부부 140만 원 지급, 1,300조 가계 부채 무이자 융자로 전액 전환, 국가 1년 예산 400조 원을 50% 절약해 국민 전체(20세 이상의 기혼자, 만 30세 이상의 미혼자)의 통장으로 월 150만 원씩 나눠주는 국민배당금 제도 실시, 중고교 때 본인이 잘하는 한 과목만 시험 보게 하고 수능시험 폐지, 국제연합(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매월 급여 200만 원 모병제 직업군인으로 대체, 대통령이 전 국민의 생일에 금일봉으로 10만 원과 케이크,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선물 배달, 가족 사망 시 금일봉 1,000만 원과 대통령의 조화 배달 등.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의 주요 공약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물가를 감안할 때, 당시로써는 막대한 현금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현 가능하다고 믿기보다는 황당하다는 국민 여론이 많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거리로도 자주 등장했다. 

기성 정치권에서도 당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심지어 ‘아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기성 정치권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해당 후보를 애써 무시하거나 심지어 비아냥댔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뜻밖이었다. TV 정책토론에 꾸준히 참석했던 모 후보가 0.68%를 득표한 데 비해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허경영 후보는 0.4%나 득표했다. 심지어 상당한 지역에서 모 후보를 앞섰고, 일부 지역에서는 그 후보의 두 배를 득표하기도 했다. 그런 결과에 대해 거대 정당에 대한 불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냉소적 표심이 표현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예상 밖의 득표를 거둠으로써, 다소 허황돼 보이는 공약을 내세운 허경영 후보를 조롱하고 무시했던 기성 정당 후보들을 보란 듯이 한 방 먹인 셈이다. 그 후 그는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실형을 살게 되면서 잠시 국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2019년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고 이번 총선에서 여성 후보를 기준보다 한 명 더 공천함으로써 8억 원의 국고 지원을 따냈다. 

선거에서 결과론만큼 부질없는 행위도 없겠으나, 만일 그가 '공중부양에 축지법을 할 줄 알고, 지능지수(IQ)가 430이고, 눈빛만으로도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세계 유명인사들이 죽기 3일 전에 영혼 형태로 나를 찾아온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국민들에게 또 다른 이미지를 심어줬더라면 득표 수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평론가들의 조심스러운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17대 대선 당시로써는 황당해 보였던, 풍자의 대상이 되거나 세간의 화제 거리에 머물렀던 그 공약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숫자만 다를 뿐 선거 때마다 다른 후보의 공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인수당과 출산장려금 등은 이미 시행된 지 오래다. 국회의원 숫자 축소는 선거마다 단골 이슈가 되고 있다. ‘아무나’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다소 위헌적 발언이 나오게 된 대상을 기존 정치권이 흉내 내고 있다는 역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 형국인 셈이다. 

 


나라 살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거 승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과 맞물려 현금 지원에 대한 공약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그 끝판을 보이는 듯하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비롯해 경제에까지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미시, 거시, 실물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국민을 구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정부는 적기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본은 현실과 미래가 상호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 관리재정수지가 지난해 54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10여조 원이었던 적자액이 한 해 사이 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2019년 국가 채무는 729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이 역대 정부의 정서적 마지노선인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물론 외환위기 등의 특별한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결과라는 점을 더 경계해야 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제 기반으로 비춰보면 매우 우려스럽고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살길이 막막해진 자영업자 등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이른바 ‘긴급재난지원금’이란 불씨가 돼 총선 바람을 타고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려 번지고 있다.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을 두고 정부와 여당의 이견 속에서 급기야 기획재정부에서는 ‘소득 하위 50% 가구에 1백만 원 지급’ 방침을 밝혔다가 여당의 요구에 ‘하위 70%’로 확대했다. 이에 야당이 ‘전 국민 50만 원 지급’을 밝히자 여당은 ‘전 가구에 1백만 원’으로 다시 받았다. 

뒤주는 비어있는데 잔치를 벌여야 하는 형국이다.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고 보자는 표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5천만 국민에게 1인당 50만 원씩 지급하려면 현금 25조 원이 필요하다. 

나라 예산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닐 터, 결국 다시 국민 세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코로나 사태가 한두 달 사이에 사라진다면 모를까, 당분간 이어진다면 그 여파가 내년 가계살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년 예산을 위한 세입은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라는 말이 있다. 당장 살림살이가 어려운 입장에서 보면 얼마라도 현금을 지원한다는 정책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현금 지급은 실질적 부채와 다르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얼마를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나눠준다는 식의 공약은 결국 또 다른 어려움을 양산한다. 어쩌면 여야 정치권은 국민 세금을 판돈으로 총선이라는 포커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만이 이를 막아낼 수 있다. 그 힘 또한 국민만이 가지고 있다. 총선은 바로 그런 힘을 발휘하는 날이다.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사용하는 날인 것이다. 국민이 종을 울릴, 바로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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