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분쟁의 숨은 의미

국가 간에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가능할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무역마찰로까지 비화되고, 중국과도 사드 배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로, 불과 10여 년 전 경제협력이 활발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무역 분쟁이나 미사일 문제 등으로 이웃의 도움이 절실할 때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를 선뜻 도와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국빈 방문 등 외교 행사 때면 ‘우방 국가’나 ‘혈맹’이라는 미사여구로, 국가 간 우정과 선의를 과시하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철없는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해줬다고 은혜의 나라로 떠받들던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를 때, 천자의 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고 외침을 자초한 병자호란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이제는 모두가 그 당시 선비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있다. 6.25전쟁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경제와 안보에서 최고 우방국이었던 미국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중국, 일본과의 관계가 언제 또 나빠질지 알 수 없다.

유사 이래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좋았던 시기보다는 불편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치렀던 기억이 많다. 외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민족끼리 남북 간에 70년을 넘게 철천지원수로 으르렁대며 지내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될까? 이렇다 보니 ‘과연 이웃 국가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가족, 이웃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도 잘 지내는 것이 미덕이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왜 국가 관계에 이르면 사이 좋게 지내기가 이렇게 힘들까? 모든 지도자가 악한 것도, 탐욕스러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국가 관계의 기본 원리


필자 생각에는 국가는 개인이나 가족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원리로 조직되고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가족과 친구는 좋은 관계를 형성해서 서로 돕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문의 명예, 체면, 화합을 위해서 특정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웃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하겠다.

모든 훌륭한 종교에서도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 불변의 가르침이다. 더 나아가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의 공동 이익을 극대화하고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 나라에 손해가 되면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까지도 서슴지 않게 된다. 개인적 차원으로 말하자면 국가 간의 기본 관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국가의 구성원들에게도 나라를 위하는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최고 목표’라고 까지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국가들의 관계가,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들이 사이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기대난망(期待 難望•기대하기 어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생존을 위한 지혜


지구상에 국경 분쟁이 없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한다. 태초부터 자기 영토로 정해진 땅이 없기 때문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빼앗아 살기도 하고, 아무도 살지 않던 땅에 정착해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조상의 과거 기록들을 들이밀며 다투기도 한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개인 간의 재산 분쟁도 판단하기 어려운데, 힘의 근간이 되는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야 오죽하겠는가. 또한, 이웃 국가와의 분쟁은 특히 내부 결속을 위한 통치술로도 자주 쓰여왔다.

요즘 뉴스에서도 국가 간 분쟁을 보도할 때 당사국 선거 일정까지 분석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북한처럼 상대 민주국가의 선거 전략까지 꿰뚫는 노련한 협상가들은 이런 상황을 늘 역이용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력이 강대해지면서 이웃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있었겠는가?

오늘날 강대국 중 식민지 지배를 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남의 나라의 주장에는 귀를 닫고 오로지 자기 논리만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관철해야 훌륭한 외교관으로 인정받는다. 자기 나라를 위해 필요하면 전쟁, 테러, 보복을 서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를 선한 나라, 악한 나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이웃 나라와 아주 친해지다 보면 자연스레 한 나라로 합쳐졌을 것이니, 세상에는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만 이웃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모든 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자기보다 강한 이웃과 맞닥뜨릴 때까지 영토를 확장해 왔을 수도 있다. 이웃 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멀리 있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생존의 지혜가 됐을 것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뤄서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의 선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애국과 충성은 아주 훌륭하고 바람직한 자세다. 또한, 외국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서 자주와 독립을 지키는 것이 정의롭고 당연한 태도이기도 하다.

국가는 국민의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기가 속한 나라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각종 분쟁과 전쟁을 유발시켜 지구촌 전체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얼마나 많은 약소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전쟁 노예를 만들었던가?

인간이 국가라는 단위로 사고의 틀을 가지고 행동하다 보니 살인도 애국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아주 선한 사람도 애국이라는 프레임을 가지면 비인도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행동은 자기 동포를 위한다는 이타적인 목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스스로는 어떤 잔인한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살 테러와 같이 짐승도 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1•2차 세계대전 때 죽은 그 많은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상대방이 부당하게 침략하고 공격하니 나도 싸운다고 하면 그동안 키워온 인류의 문명과 이성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생각에 이르면 국가 간에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국가 간에는 긴장과 갈등이 기본이고, 필요하면 언제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정글 속에 사는 짐승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이익이면 잘 지내고, 싸우는 것이 이익이면 싸운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개인적 차원에서나 기대해야 하는 것인가.

김규옥 (사)한국M&A협회 회장
김규옥 (사)한국M&A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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