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건너자

스타트업은 배급업자나 수혜자와의 합동 사업으로 데스밸리를 극복할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데스벨리’에 빠지다


모든 스타트업은 초기에 자금 조달이나 시장 진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업계에서는 이를 '데스밸리(Death Valley)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데스밸리'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중부 모하비 사막의 북쪽에 위치한 척박한 분지다. 여행 가능 지역이 전체 면적의 5%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덥고 건조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악명이 높다.

도산 위기에 빠진 스타트업 창업자를 '데스밸리'에 들어선 상황에 비유한 것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수익보다 투자가 많아 현금 흐름이 하향 곡선을 그린다. 그러다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창업 초기 자본이 소진돼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변곡점을 지나고 가파르게 성장하는 그래프 형태를 ‘J커브’라고 하는데, '데스밸리'는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스타트업은 1~3년 차에 1차 '데스밸리'를 겪는다. 상품 개발, 매출 부진, 엔젤 펀더(Angel funder)의 투자금 고갈 등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신규 투자 유치에 실패해 도산 위기에 놓인다. 어렵게 연구 개발(R&D)에 성공했지만, 자금이 부족해 사업화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60% 이상의 기업이 '데스밸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1차 '데스밸리'를 잘 넘겼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2차 '데스밸리'가 기다리고 있다. 스타트업은 3~7년 차에 사업화 과정에서 자금 조달, 시장 진입 등의 어려움으로 2차 '데스밸리'를 만난다.

시리즈A(시제품 개발부터 시장 공략 전까지 받는 투자) 투자 유치 실패로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시기로, 살아남는 기업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이 시기 스타트업은 연구 개발에 자본을 투자하느라 적자가 누적되고, 금융권 대출도 받기 어렵다.

단기간에 기업공개(IPO)를 할 가능성이 희박해 벤처캐피탈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많은 스타트업의 여정이 끝이 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야심 차게 준비한 사업들이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다.

 


‘데스밸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스타트업 대표들은 마이너스 통장이나 대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 유동성 확보에 나선다. 그러나 대부분은 죽음의 계곡을 빠져나오는 데 실패한다. 금융권 대출은 1~4등급의 고(高)신용 중소기업만 가능하고 담보 대출은 문턱이 높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8.5%에 불과했다. 창업의 승패가 '데스밸리'에서 갈리고 있는 것이다. '데스밸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타트업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버틴다. 외주 프로젝트나 정부 연구 과제를 수주해 자금을 융통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엔 대표가 직접 2~3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생존율이 낮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상 버티는 창업 기업이 38%(2013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조사 대상 26개국 가운데 25위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창업지원 사업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창업지원기업 이력•성과 조사’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53.1%로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28.5%)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기업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 자본 투자 효율은 33.33%로 대기업(15.46%)보다 2배 더 높았고, 연평균 20% 이상 성장한 고성장 기업도 422곳이나 됐다.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이 전반적인 부분에서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정부는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어젠다로 ‘창업 국가’를 언급했다.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창업 지원 사업 규모는 11조 4,51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부의 통계(2015년, 전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7.5%밖에 되지 않는다. 10곳 중 7곳이 5년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 생존율이 40.9%임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이는 아직 국내 스타트업이 '데스밸리'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임을 보여준다.

또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사(2019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케일업(고성장) 기업 비율은 6.5%로 영국•이스라엘등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경제와 일자리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스케일업 지원책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데스밸리'를 극복하기 위한 스타트업의 자체적인 해결 방안도 필요할 것이다.

와디즈,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데스밸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미지는 ‘전국투표전도 2020’프로젝트 진행 상황. (출처: 텀블벅)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데스밸리' 극복 방안 첫 번째는 창업 시작 전 충분한 자금 및 자원을 축적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 잡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전까지 필요한 재원을 측정하고, 자체 자금 또는 부트스트랩을 준비하는 일은 사업의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업 아이템이 높은 시장성을 지닌다면, 아이디어나 계획서 등을 토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금을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공모전 및 지원 사업을 통해 사업 보조를 받는 것이다.기술 연구 등 프로젝트가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정부 공모전이나 사업에 지원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또는 스타트업에 현금, 사무 공간,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정부나 민간 산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 가입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배급업자나 수혜자와 합동으로 사업하는 것이다. 사업에 연관되거나 전략적으로 관심을 보인 기업이나 개인에게 이른 시기에 투자를 받고 추후 수익이 발생할 시 상환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서비스 및 제품 교환이다.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를 돈 대신 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계 관련 스타트업은 부동산 소유주의 자산 관리를 해주면서 무료 사무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은 스타트업 간의 협력을 통해 네트워크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기업이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상대 기업에 제공하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현재


'데스밸리'의 위험은 존재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20년 전만 해도 이커머스 사이트 하나를 만드는 데 100만 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100달러로 가능하다. 10명이 매달려야 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은 이제 2명이 한 달의 기간이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스타트업이 이러한 기회 요소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미국의 액셀러레이터 ERA는 좋은 창업가의 기준으로 10가지를 제시한다. ▲냉정한가 ▲능력이 있는가 ▲열정적인가 ▲데이터에 기반하는가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가 ▲도메인 전문가인가 ▲고객을 이해하는가 ▲검소한가 ▲긍정적인가 ▲끈질긴가 등이다. ERA는 더 많은 항목을 갖춘 창업가일수록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도 올라간다고 말한다. 창업가라면 생각해 볼 만한 덕목이다.

'데스밸리'는 스타트업이라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피할 수 없는 위기를 현명하게 헤쳐나가려면, 한정된 자원과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 속에서도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넘어 스케일업으로 도약하려면, 위기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풍부한 자금 확보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성진 에피치오 대표(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경영컨설팅학과 특임교수)

성균관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 과정 중이며, 스타트업 에피치오를 운영하고 있다. 2019 중앙우수제안 경진대회 국무총리 표창, 아시아 오픈데이터 챌린지 아이디어 공모전 행정안전부 장관상, 2019 자체우수제안 경진대회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등 국내외에서 60여 차례 수상했다. 올해 청년창업사관학교 10기로 선발돼 ‘발광다이오드(LED)와 센서를 활용한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의 포켓볼 당구대’를 개발 및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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