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실업 한파로 고조되는 생계 불안

공정한 노동은 공정한 임금을 의미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인한 셧다운과 봉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가 역대급 경제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산, 소비,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가 하나같이 마이너스 일색인데 충격은 이제 시작이다.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위태롭다. 취업자 수는 이미 3월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실업자, ‘쉬었음’, 구직 단념자, 일시 휴직자 등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이 540만 명에 이르렀다. 직원을 줄여야 하는 사업주도 애가 타기는 매한가지, 비상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4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위기극복 대책’ 중 고용안정패키지는 10조 1천억 원 규모로, 고용 유지(52만 명), 근로자 생활 안정(93만 명), 긴급 일자리 창출(55만 명), 실업자 지원(86만 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경쟁적으로 대책을 쏟아내서 4월 29일 기준 ‘코로나19 긴급지원정책’은 무려 350개(재정지원 322개, 심리지원 28개)에 달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혹자는 ‘올바른 방향, 부족한 규모’라 하는데, 단기 재정지원 일색의 백화점식 대책으로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의 기저 질환을 야기했던 정책의 수정은 없고, 디지털 전환과 연결한 미래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 위기 극복과 소득보장체계의 재구축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인 충격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이 생존의 기본조건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고 있다. 기업이 일자리이고 ‘밥’인 세상.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소득보장과 임금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고용보험 전면 확대와 취업부조제 도입

가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면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가구당 최대 100만 원에 불과한 긴급재난지원금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지급 대상이나 선별 환수 논란은 제쳐 두더라도 한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금액도 최저임금(월 환산액 1,795,310원)이나 실업급여(2019년 1월 이후 이직자 상한액 기준 월 198만 원)에 비해 턱없이 작다. 휴업수당(임금의 70%)을 지급하며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주에게 휴업수당의 90%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역시 실업급여에 비해 유리할 것이 없다. 영세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무급휴직자에게 월 50만 원씩 3개월 동안 지원하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도 생계 안정책으로는 미흡하다.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해법은 고용보험 적용 전면 확대와 한국형 취업부조제 도입이다. 무급휴직자 지원을 강화해 한국형 일시해고(lay-off)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있다.

국제통화기금(이하 IMF) 외환위기 때 고용보험제도와 고용센터를 중심으로 한 안전망 구축이 위기 극복의 발판이 됐듯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고용 안전망 완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을 고용보험의 틀 안으로 포섭해야 한다. 보험료 부담과 도덕적 해이 문제는 배분적 정의의 원칙에 따라 정부와 당사자가 분담하면 될 것이다.

실업급여 만료자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취업 활성화(activation)와 상호의무(mutual obligation) 원리에 입각한 한국형 취업부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고용 안전망 확충은 포퓰리즘에 젖은 현금 살포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고용 친화적인 사회적 투자다.

지난해 말 1조 7,217억 원(34만 5,000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체불임금 대책도 시급하다. 유의할 것은 임금체불 원인을 보면 사업장 도산이나 일시적 경영 악화로 인한 것이 80%를 상회한다는 점이다.

사업주 처벌보다 자금 지원, 경제적 제재, 그리고 근로자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 구제가 효과적인 처방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IMF 외환위기 때 도입한 임금채권보장제도를 임금보험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생계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응분의 몫’을 보상받는 공정한 임금체계로의 전환


공정임금(fair wage)

일찍이 플라톤은 정의(justice)란 각 사람에게 ‘응분의 몫’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능과 업적에 따라 대우하는 ‘형평성’, 배분적 정의의 관점에서 ‘공정성’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임금수준과 더불어 임금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임금체계다.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임금결정기준은 호봉제가 가미된 연공급이고, 임금구조는 낮은 기본급 수준과 복잡한 수당체계가 문제적 특징이다. 이는 고도성장기의 장기근속, 장시간 노동 체제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일하는 방식과 고용구조가 급변한 지금은 공정한 보상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평균 근속기간은 71개월(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은 상여금도 없다. 과도한 연공급은 부문 간, 세대 간 임금격차 확대와 고착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최고 스펙을 갖추고도 취업난을 겪는 청년에게 호봉제는 정의롭지 못하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올해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 절차가 진행 중인 통상임금분쟁도 임금체계의 구조적 난맥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효과적인 방법은 인건비 손비처리와 임금 구성 항목별 과세체계를 조정해 직무와 역할, 성과 중심으로 임금 개편을 촉진하고, 노사는 자신의 일터에 적합한 임금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최저임금(minimum wage)

내년도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IMF 외환위기를 반영한 1998년 인상률은 2.7%,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인사이트2010년 2.8%에서 보듯이 위기 시에도 최저임금이 감액된 사례는 없었다는 점에서 2020년(2.9%)과 유사한 수준을 전망해볼 수 있다.

인상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징 속에서 나타나는 최저임금의 영향이다. 개별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는 것이지 가구 소득을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최저임금 노동자의 70% 이상이 100인 미만 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 최저임금 인상은 한계기업과 일자리 생태계에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빈곤가구 구성원의 상당수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임금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소득 격차 완화는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가구단위 정책이 정수라고 하겠다.

최고임금(maximum wage) 입법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정당의 공약으로 나오게 된 배경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디즈니 상속녀가 임원들에게는 천문학적 단위의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직원 10만 명을 일시 해고한 디즈니사에 분노의 트윗을 날려 주목을 받았다.

사실 국내에서도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거액 연봉과 퇴직금에 대한 비판이 고조돼 왔다. 문제는 과연 이들의 고액 연봉이 근로의 대가를 적정하게 반영하는가 여부다. 또한, 총수의 퇴직금 산정 시 4~6배의 배수를 적용한다면 이는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한 일반 근로자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보수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소속기업의 종업원 평균임금 대비 적정 배율을 설정하는 등 경제단체가 자율규제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노사 모두 사회적 합의를 통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회적 합의, 거대한 공멸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노사 모두 사회적 합의를 통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재정 중독에 빠져서 고통 분담을 외면하거나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기성세대의 야합이 되면 안 되겠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과 파괴적 혁신,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건널 수 있는 연대(solidarity)의 다리가 돼야 한다. 위기일수록 드러나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은 공정한 노동은 공정한 임금이라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임금과 소득보장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역대급 경제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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