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중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 전국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가 지난 5월 21일에서 28일까지 개최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인해 회의 일정이 2개월여 연기되고 기간도 단축된 올해 양회에서는 목표 경제 성장률(GDP)을 내놓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목표치 제시를 포기한 것이다.

이번 양회의 이슈 중에서 국제사회의 가장 큰 시선을 끈 것은 단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문제였다. 홍콩에 관한 법률을 중국 중앙정부에서 직접 제정했기 때문이다. 홍콩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 가장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중계무역항・국제금융 중심지 홍콩은 작년에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개정 문제로 한바탕 큰 홍역을 치르더니 이제는 홍콩보안법 제정 문제로 장래를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홍콩과 내정불간섭 원칙


2020년 5월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보안법’ 초안을 공개하며 제정 방침을 밝히자 미국은 법 제정 시 강력 대응을 경고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을 맹비난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홍콩은 중국의 내정이며, 어떠한 외부 간섭도 허용할 수 없고, 법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내정불간섭 원칙’으로 방어막을 치는 경향이 있다. 일단 국내문제 혹은 핵심이익이라고 규정한 다음, 다른 나라가 절대로 개입하면 안 되고 따라야 한다고 선언하고, 그렇지 않으면 ‘후과(後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반적으로 내정불간섭 원칙은 작은 나라가 강대국의 완력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책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중국은 G2로 일컬어질 정도로 국력이 상승했지만 아직도 1949년 10월 1일 신중국 성립 이래 주장해 온 내정불간섭 원칙을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홍콩 문제는 중국이 완전히 자의적으로 처리해도 되는 내정불간섭 사항일까?

중국과 영국 간의 홍콩반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덩샤오핑은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를 제시하였다. 결국 일국양제에 따른 '항인치항(港人治港, Rule by Hong Kong People)', ‘고도자치(高度自治)'라는 중국 측의 유연한 입장이 바탕이 돼 1984년 홍콩반환협정(홍콩문제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영국의 공동선언 : 중영공동선언)이 체결되고 1997년 7일 1일 반환되었다.

이로써 역사상 최초의 ‘1국가 2체제’가 성립되었는데, 홍콩에서의 ‘1국가 2체제’ 이행은 중국이 홍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특히, 중영공동선언 제3조 12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에 대한 기본방침 정책이 50년 내에 변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도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최소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1987년 4월 16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기초위원회 위원들을 접견할 때 한 연설에서 “홍콩이 1997년에 조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다음의 50년 동안에는 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1990년 2월 17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기초위원회 9차 전체회의에 출석했던 위원들을 접견하면서, “역사적 의의와 국제적 의의를 지닌 법률을 만들어냈다.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고 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만이 아니라 앞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국제적 의의를 지녔다고 하는 것은 제3세계뿐만 아니라, 전 인류 모두에게 장구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홍콩보안법 제정의 문제점


국제사회는 홍콩에서의 ‘일국양제’ 실시에 대한 덩샤오핑의 확언이 지켜질 것으로 신뢰해 왔고, 이에 따라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US-Hong Kong Policy Act)」을 제정해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대우를 보장해 왔다. 그 후 중국의 부상 등에 따라 국제정치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홍콩의 일국양제는 중국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간주돼 왔다.

그런데, 홍콩반환 50년이 되는 시점은 2047년으로 아직도 27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중국의 홍콩보안법 직접 제정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크다.

첫째, 중국이 직접 홍콩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홍콩 자신이 법률을 제정하고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고도자치(高度自治)'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당초 외교와 국방 문제를 제외하고는 홍콩은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이번에 선례가 생겨 둑이 터졌기 때문에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법률을 직접 제정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홍콩 자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 중영공동선언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의해 보장된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시민적 자유가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크게 제약을 받을 우려가 있다.

홍콩보안법에는 “홍콩 내의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외부 세력이 홍콩 문제에 간섭하는 활동을 금지, 처벌”한다는 내용과 함께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국가안보 교육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의 국가 안보 관련 기구가 홍콩에 직무를 이행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반정부 집회를 하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되고, 이 법에 따라 설치되는 안보 관련 기구가 반중국 인물 색출에 나서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려온 홍콩 시민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홍콩보안법 제정 배경과 동기


그러면 중국이 이 시점에서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구체적인 배경과 동기는 무엇일까?

첫째, 홍콩보안법 제정 기회를 보고 있던 차에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처리한 것이다. 홍콩보안법 제정을 처음 추진한 것은 2003년 퉁치화(董建華) 행정장관 집권 때였다. 당시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홍콩정부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자신했지만,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도심으로 쏟아져 나와 ‘국가보안법 반대’를 외치면서 사태는 급반전해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해 송환법 개정이 대규모 시위로 인해 무산되자 중국은 이때부터 ‘홍콩보안법 직접 제정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번 전인대를 적기로 잡은 것이다.

둘째,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홍콩의 중국화’ 전략 일환이다. 2012년 말 지도자가 된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 부흥의 위대한 꿈, 중국몽”을 기치로 내걸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하에 ‘홍콩의 중국화’를 급속히 진행해 왔다.

그런데, 송환법이 대규모 반대시위로 무산되고, 시위 와중에 실시된 홍콩 구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함으로써 오는 9월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에서도 범민주파가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입법회에서 중국 입맛에 맞는 법안 통과는 어렵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함으로써 그동안 성공하지 못한 홍콩보안법도 통과시키고, 입법회 우회의 선례를 만듦으로써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홍콩보안법 제정에 따른 홍콩시민들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분노를 예상하면서도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셋째,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의 강경 대응방침이 표출된 것이다.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미·중간 갈등과 충돌은 패권경쟁 양상을 띠면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한층 강화하고 상원은 지난 5월 14일 위구르인권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중국은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비교적 약한 고리라고 인식되는 홍콩을 타깃으로 공격을 가한 것이다.

넷째, 대만문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의 송환법 반대 시위 영향으로 지지율을 회복해 재선을 하고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은 ‘일국양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등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차이잉원 대만총통 취임 축하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는 무기 판매를 허가함으로써 대만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홍콩을 '일국양제' 시행의 모범 사례로 만들어 대만 통일까지 이어가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데, 상황은 중국에게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중무역전쟁 영향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받아 경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대만문제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무리를 해 가면서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보안법 제정의 홍콩에 대한 영향


홍콩보안법 제정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첫째, 홍콩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홍콩사회 불안이 커질 것이다. 주민자치가 존중돼 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이고 국제적인 추세다.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총 452석 중 388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자 일부에서는 중국정부가 '유화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으나, 오히려 홍콩보안법 직접 제정이라는 ‘강경책’으로 나왔다. 민의를 살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통제본능’이 발동된 것이다.

중국은 홍콩시민들의 반발은 진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겠지만, 절망에 빠진 홍콩 시민들이 극렬히 저항하게 되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홍콩인들의 대탈출을 불러 일으켜 중계무역항・국제 금융허브의 역량이 약화될 것이다. 홍콩인들은 중국 사회주의체제에 의해 민주체제가 대체될 것이라는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이다.

당장에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자본은 싱가포르로 가고 인력은 대만으로 갈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여기에 영국 정부는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진 30여만 명의 홍콩 주민에게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기회를 부여할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홍콩보안법 제정의 중국에 대한 영향


셋째, 홍콩 사태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다. 과거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발전해나가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반대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으로 반중국 정서가 커지고 있는데, 홍콩사태는 중국의 이미지를 더 떨어뜨릴 것이다.

왜 ‘위대한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홍콩체제 50년 불변’이라는 약속을 내놓았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 전인대에서 5월 28일 홍콩보안법 초안이 통과되자 프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29일(미국 워싱턴 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은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홍콩이 더는 우리가 제공한 특별대우를 보장할 정도로 충분히 자치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약속한 '일국양제' 원칙을 '일국일제'로 대체했다며 “따라서 홍콩의 특별대우를 제공하는 정책적 면제 제거를 위한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미국의 조치가 어떻게 시행될지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홍콩이 특별지위를 잃게 되면 결국 허브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통한 수출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고 홍콩을 통해 자본을 조달해 와 홍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일컬어졌는데, 홍콩 사태는 중국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은 홍콩의 경제적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고,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역할을 상하이나 선전으로 이동시켜갈 수 있기 때문에 손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나, 홍콩은 중계무역항・국제 금융허브로서 다른 지역이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상하이나 선전이 오리가 아닌 거위인지는 판단하기 어렵고, 더구나 황금알을 낳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홍콩사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


홍콩은 총수입 가운데 89%를 재수출하는 중계무역 거점이다. 홍콩은 한국에 4위 수출 대상으로 수출액은 연 300억 달러 규모로서, 대부분이 중국으로 재수출되고 있다. 낮은 법인세와 안정된 환율제도, 항만, 공항 등 국제금융·무역·물류 허브로서 이점을 갖춰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해온 것이다.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 품목은 중국의 통관·검역이 까다로워 홍콩을 활용한 측면도 있다.

홍콩의 허브기능이 약화되면 한국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콩을 거치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플라스틱 등의 품목을 중심으로 중국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 대미수출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이 약화되면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서울도 대체 역할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경쟁력을 끌어올려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한 방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방침이 알려지자 미국은 외교단을 대상으로 홍콩보안법 설명회를 개최해 중국에 대한 공동 대응을 주문하였다. 물론 중국도 자국 입장 지지 교섭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영국·호주·캐나다 3국 외무장관은 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으며, 유럽연합(EU)은 조셉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명의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5월 28일 전인대에서 홍콩보안법 초안이 통과되자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홍콩보안법 초안 통과가 발표될 때까지 별다를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구조를 지닌 한국으로서는 입장표명이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로서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반드시 입장 표명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6월 2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기자 질문에 “홍콩은 우리에게 밀접한 인적·경제적 교류관계를 갖고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일국양제와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 이 성명은 그다음 해 1985년에 유엔에 등록된 조약입니다. 그 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합니다.”라고 답했다. 다른 기자 질문에도 “일국양제 하에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저희로서는 중요하고, 1984년 중영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하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라고 밝혔다.

 


신 냉전 도래에 따른 한국의 선택


미중 갈등은 이제 ‘공급체인(supply chain )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경제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을 배제한 민주주의 국가 간 공급망 확대를 전제로 한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 EPN)를 구상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미중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신 냉전 상황에서는 안이하게 대응하면 국익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고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기업, 국민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아무리 기업들이 알아서 잘 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어렵고 엄중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중심이 돼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한 것이 정도이고 국익에 부합한다. 국제정세 흐름에 실용적으로 대응하되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동맹’을 중심에 둬야 한다.

미중패권 경쟁이라는 신 냉전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홍콩은 신 냉전의 ‘최전선’이 되고 있고, 제2전선은 대만해협에서 형성될 것이며, 제3전선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는 자체 역량이 약화되고 세력 균형이 깨져 힘의 공백이 생겼을 때 큰 위기에 처했다.

구한 말 국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이 급속히 부상하고 세력 균형이 깨지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1949년 미군이 철수해 힘의 공백이 생기자 북한은 소련과 중국(구 중공) 등 공산권의 지원을 업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침을 감행했다.

중국은 신 냉전이 진행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키워나갈 것이고, 한반도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한국은 한류로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IT분야에서 발군의 역할을 발휘하고 있는 중견국이자 민주주의 국가이다.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한국은 단순한 객체적 존재가 아니다. 힘이 부족하면 우호국을 확보해 균형을 맞추어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 원칙이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지렛대다. 문제는 우리가 주체적 존재로서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를 위해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때마침 한국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9월 미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기존 7개 회원국 외에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국의 참여는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긍정적인 외교적 쾌거가 되고, 우리의 레버리지(지렛대)를 확대할 수 있다.

홍콩은 우리에게 멀지 않다. 신 냉전 파도는 우리에게도 곧 들이닥칠 것이다. 중국은 우리와 이념과 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냉철한 전략을 마련한 가운데, 이러한 국제회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결집시켜 신 냉전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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