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걸린 모래밭의 풍경

숨 막히는 실제적 환영을 재현하는 전업작가 윤위동

2017-07-18     임수빈(윤승 대표)


자취 55 140cm × 140cm 캔버스, 모래 위에 아크릴물감, 2017
 

미술계에서 작업만 해서 살아가는 직업을 전업 작가라 부른다. 전업 작가는 말 그대로 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가로서 창작한 결과물을 통해 수입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많은 이들이 선 망하지만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건 정말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여기,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극사실주의 화풍을 통해 일찍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며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윤위동 작 가를 소개한다.

 


윤위동 전업작가
 

사진기의 발명은 그동안 사실적 재현을 목적으로 했던 미술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었다. 회화의 종언을 언급할 만큼 파장이 컸고, 실제적으로 초상화 분야는 사진에게 그 역할을 넘 겨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종말을 고할 것 같은 사실적 화풍의 그림은 사진을 능가하 는 숨 막힐 정도의 실제적 재현을 통해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화풍을 성립하며 오늘 날 당당히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을 능가하는 극사실주의 회화를 통해 30대 중 반인 나이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작가 윤위동은 작업만 하고, 작품 판매를 통해 먹고사는 전업 작가이다. 전업 작가라는 직업은 말 그대로 창작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가를 일컫는 말이다. 작업만 해서 먹고 살기를 꿈꾸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그는 이미 선망의 대상이다.

올해 서른 다섯(35)살 그는, 어려서부터 벽이나 바닥, 종이 등 보이는 곳곳마다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특히 위로 누나가 셋인 막내아들의 재주를 부모님들은 귀히 여겨, 5 살 때 이미 동네 미술학원을 다니도록 배려해주셨기에 그는 화가라는 꿈을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유난함 때문인지 그는 그림을 통해서는 줄곧 발군의 실력을 인정 받으며 성장했다,

중대 서양화과를 다녔던 그는 일찍 두각을 드러냈는데, 2006년 졸업전시 때부터 이스라엘 아트링크 갤러리스트에 의해  발탁되면서, 졸업 직후 이스라엘 현지에서 전시를 통해 작품 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큰 기회를 얻게 되었다. 졸업 이후 2008년 ‘아시아프’를 통한 국내 에 데뷔 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점점 견고한 입지를 다 져가던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2011년 그해 많은 공을 쏟아 처음으로 경매에 제출한 작품이 유찰되면서 그는 적잖이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큰 기대를 했던 어리석음을 탓해야지 그리 충격을 받을 일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큰 충 격이었다고 한다.  경매 유찰로 낙담하던 차에, 장흥에 위치 한 가나아트 아뜰리에(레지던스)에 입주하게 되었고 더욱더 창작에 집중했다. 이후, 그의 노력은 전시와 함께 금전적으 로는 소위 대박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2012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서 3천만원이라는 작품가격 에 낙찰되고, 연이어 2013년 전시에서는 4천만원에 대형 작 품판매가 이루어지면서 그는 소위 뜨는 작가로 주변의 인정 을 받았었다. 그의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꽃길 만 걷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2012~2013년 작품제작에서 마감제로 사용했던 바 니시가 문제를 일으켜서 작품 완결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약속했던 전시에 문제가 생기면서, 작가 윤위동은 그 간 이루었던 명성과 작가에 대한 신뢰까지 의심받게 되면서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더욱이 이 후 새로운 작품제작에 금 채색을 도입하였는데, 작업 욕심에 금을 대량 구입하면서 큰 채무를 앉게 되면서 급기야 2016년에는 은행 빚 도촉에 끔 찍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롤러코스트 인생이라는 것을 드 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겪게 된 것이다.

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대학원에도 갔었지만 홀로 철저히 작 업하는 작가이기에,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 로 돈이 없어서 중태하게 되었다. 그는 이 때, 다른 직업활 동 없이 오직 작업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철저히 자 신과의 전쟁임을 깨달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런 냉혹한 현실과의 투쟁에서, 천만다행으로 10년간 꾸준히 작품에 관 심을 갖고 많은 조언과 작품 매입을 해주는 든든한 지원자도 만나게 되었고, 소수지만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동료들도 갖 게 되었다고 이제까지 전업작가로서 걸어온 삶을 덤덤히 이야기했다.

이런 위기감일까? 작가 윤위동이 근자에 작업하는 ‘자취’ 시 리즈는 그의 인생을 꼭 담고 있는듯하다. 평평한 모래밭에 쭉 밀려 모래표면을 훑고 지나온 흔적을 남긴 커다란 돌덩이 를 그린 이 작업들은 짧지만 큰 존재감을 가진 원래 위치에 서 이동하여, 다시 위치를 잡고 있는 그의 현재 모습과 너무 나도 일치한다. 왜 모래밭에 돌을 그리냐는 질문에 “많은 모래알갱이들과 커다란 돌덩이가 원류는 하나잖아요. 이 많은 모래알갱이들이 저 돌맹이에서 나온 것이고, 이 모래알갱이가 다시 열과 압력에 의해 또 다시 돌이 되는 것처 럼 윤회라는 삶의 순환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자취 53 모래 위에 아크릴물감 117.5cm × 65.5cm  2017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자취’시리즈 작업을 통해 작가는 다 시 주목받고 있다. 2017 ‘아트부산’ 페어에 그의 작품이 걸 리자마자 관람객들은 작업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누 르느라 북적였다. 사람들의 많은 관심은 그만큼 그의 존재감 이 커지는 것과 더불어 작품의 판매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이 다. 예술이라는 전공을 직업으로 삼아 그림만 그리며 살고 있는 그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에 다시 사 람들의 관심이 좋다고 한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1달 정도가 걸리는 그의 작업 속도 는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는 문제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자 신의 작업을 수익성만 쫓아서 대충대충 할 수 없는 것 아니 겠냐며 프로다운 작가정신을 보여주었다. 전업 작가로서 삶 은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매 순간순간 최선을 요구하고 있 고, 냉철한 자기 관리가 필수적임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한 ‘자취’ 시리즈 작업들을 통해 윤회라 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업처럼 잠시 모래알처럼 흩어졌 던 중심을 회복하고 단단한 돌맹이처럼 존재감으로 성장하 길 기대해본다. 전업작가로서 모든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호 명할 수 있는....